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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Apr 05. 2018

남미에서 만난 최고의 행운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여행을 얻는다

혼자 하는 여행의 최대 단점은 외로움이 아닐까. 그것은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적응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즐거운 일이 있어도 잠시 모습을 숨길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려고도 해보고 외로움을 떨치려 발버둥을 쳐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 외로움이란 녀석은 내 오랜 친구처럼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바로 옆에서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늘 외로움이란 친구와 함께 하던 나의 여행이 안쓰러웠을까. 남미 대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첫 나라, 콜롬비아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로 인해 내 남미 여행의 상당 부분이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먼저, 스페인어 능력자 H.  쿠바로부터 나의 태블릿을 가지고 오면서 이어진 인연이 계속되었다. 남미 대륙에서 떠나고자 하는 날짜가 비슷해 같이 다녀보면 어떨까 살짝 얘기해본 적은 있었지만 장담은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콜롬비아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다니기로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일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마음대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고, 남미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다니는 것에 약간은 꺼려해 같이 다닐 사람을 찾고 있기도 했다. 


H는 스페인어를 상당히 잘 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원어민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한국에서 어설프게 배워와 떠듬떠듬 말하고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하던 나의 스페인어는 이 친구를 만나면서 봉인되었다. 가끔은 가이드처럼, 때로는 통역사처럼 H는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대부분 해소해주었다. 


그리고 요리 능력자 T. 콜롬비아에 도착 한 날부터 택시에서 잘못 내리는 바람에 무서운 경험을 할 뻔했던 이 친구는 먼저 와 있던 나와 H를 보자마자 같이 다니자고 했다. 혼자 다닐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 이 친구의 콜롬비아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결국 T는 정해져 있던 일정까지 변경하면서 목적지인 페루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T는 요리를 잘한다. 취사병 출신으로 전역 후에는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도 그의 요리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제한된 재료만으로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주었던 그 덕분에 살이 빠지기 십상인 여행에서, 그것도 맛있는 음식 찾기가 쉽지 않았던 남미에서 날이 갈수록 살이 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저 오래 살기만 한 나이 능력자 '나'. 그저 한 사람 더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고 믿는다). 어쨌든 별로 겁이 없는 타입이었기에 그들을 이곳저곳 끌고 다녔다. 


T까지 함께 한 여행은 한 달이 조금 안 됐지만 그 시간들은 나에게 있어 남미에서 얻은 최고의 행운이라 볼 수 있다. 그래. 내게도 한 번쯤은 이런 행운이 필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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