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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r 16. 2018

아직 만나지 않은 위험

남미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누구는 부러워했고, 누구는 걱정했다. 걱정의 이유도 다양했지만 그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위험'이었다. 남미의 치안에 대해서 걱정했고, 에콰도르의 지진, 베네수엘라의 장마 등 자연재해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남미를 가고 있었고, 나는, 아마도, 차라리 죽어버린다면(크게 다쳐서 불구가 되지 않는 한) 여행 중에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콜롬비아에 도착해 짐을 푼 다음 날, 쿠바로부터 내 물건을 가지고 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의 호스텔로 갔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저녁을 함께 먹었고 이어진 술자리도 길어졌다. 내 호스텔에서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가 됐다. 준비해둔 술이 다 떨어졌고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생겨 자리를 정리하고 나는 내 호스텔로 돌아가려고 했다. 


말렸다. 이곳에 며칠 먼저 머물렀던 여행자들이 말렸고, 호스텔 스탶도 말렸다.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그럴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고 했다. 정말 가고 싶다면 택시를 이용하라고 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괜한 반발심도 생겼다. 내 호스텔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 어제도 밤중에 발발거리며 혼자 돌아다녔단 말이다.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으니 함께 하던 여행자들이 그러면 내 호스텔까지 에스코트해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맘에 안 들었다. 

결국 그곳에서 자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여권과 막 건네받은 태블릿. 혹시 무슨 일이 생겨 그 둘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고 만다. 나의 귀차니즘은 신체의 안위에 대한 걱정보다 강하다. 그날 밤은 다행히 - 이동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해가 뜨고 나서야 나는 내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렇게 사고가 빈번한 곳이라면 내 호스텔에서는 내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하며. 혹시 신고라도 한 건 아닐까 생각하며. 리셉션에서 만난 스탶은 아침 일찍 어디 갔다 오는지 물어보며 빨리 조식을 먹으라고 했다. 젠장, 지난밤에 내가 돌아오지 않은 것도 모른다. 하긴, 호스텔은 그런 곳이다. 


위험에 대한 얘기, 언론에서 듣는 얘기,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듣는 얘기 모두가 나에게는 먼 얘기들이다. 그런 위험을 겪어보지 못했다. 목격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태평한 것인가? 꼭 무슨 일을 당해야만 그때부터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일까? 지나친 안전 불감증인가? 아직도 나는 그날 밤, 그 호스텔 스탶이 어차피 비어 있는 침대, 하룻밤 숙박료라도 받아볼까 하고 지나친 과장으로 겁을 준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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