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영철 아저씨

by 문용대

영원한 영철 아저씨


고려대 정문 앞에는 밤이 깊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찾으며 메뉴보다 먼저 시간을 골랐다. 늦은 밤이거나, 새벽이거나, 하루가 잘 버텨지지 않은 날이거나. 가게는 늘 열려 있었고, 계산대 위에는 단출한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천 원.


그 숫자는 가격이라기보다 약속에 가까워 보였다. 학생들은 그 가게를 ‘영철버거’라 불렀고, 주인 이영철은 어느새 ‘영철 아저씨’가 되었다. 이름보다 호칭으로 더 오래 남을 사람의 삶은 그렇게 불렸다.


그의 시작은 가난이었다. 전남 해남의 소작농 집안, 여섯 남매 중 둘째. 집에는 늘 쌀이 모자랐고, 아이들에게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학교는 자주 미뤄졌고, 그는 초등학교조차 온전히 마치지 못했다. 배움은 언제나 다음의 일이었다.


열 살 무렵,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가족은 흩어졌다. 누구는 친척집으로, 누구는 일터로 흘러갔다. 그는 형의 손을 잡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가진 것이라곤 작은 보따리 하나와, 막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감각뿐이었다.


서울의 시간은 곧 노동으로 채워졌다. 중식당의 뒷일, 군복 공장의 반복 작업, 밤을 넘기는 스탠드바와 새벽의 포장마차. 그는 일자리를 가리지 않았고, 오래 머문 곳도 없었다. 청소년기의 기억은 꿈보다 배고픔으로 남았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기대 설 자리의 부재였다.


1990년대 초, 그는 막노동판에서 조적공으로 일했다. 벽돌을 쌓는 일은 고됐지만 하루가 끝나면 벽은 남았다. 그 벽처럼 그는 버텼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는 그마저도 무너뜨렸다. 회사는 부도났고, 그는 하루아침에 일터와 신용을 함께 잃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이 노점상이었다. 2000년, 고려대 앞. 리어카 하나를 끌고 나와 햄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훗날 그는 그곳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고플 때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는 햄버거 값을 천 원으로 정해 종이에 적어 붙였다. 누구 눈에도 오래 버틸 수 없는 값이었지만 그 종이는 좀처럼 내려지지 않았다. 그 숫자는 계산보다 기억에 가까웠다. 배고픔 앞에서 작아졌던 열 살의 자신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줬으면 했을 것이다. 괜찮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영철버거는 천천히 알려졌다.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험 기간이면 불이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고, 돈이 모자란 학생에게는 “다음에 줘.”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 “아저씨 덕분에 버텼어요.”라고 말하면,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다 네가 잘해서 그런 거야.”


한때 그는 전국에 80여 개 가맹점을 둔 사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서민 신화’라 불렀다. 그러나 영철버거의 방식은 늘 위태로웠다. 박리다매, 장시간 노동, 창업자의 몸에 기대어 돌아가는 구조. 결국 가맹점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2015년 본점마저 문을 내렸다.


그 무렵부터 그는 말수가 줄었다고 한다. 실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안함이었을까. 누구를 탓하지 않았지만,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야지.”


말년의 그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학생 이야기를 했다. 장학금을 기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렇게 답했다.


“의지할 데가 없었는데, 학생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많이 버텼어요.”


누군가에게는 장사의 자리였지만, 그에게는 삶을 붙들어 준 공간이었다. 아마 그는 좀 더 오래 그곳에 서 있고 싶었을 것이다.

천 원짜리 약속을 지키며, 또 다른 누군가의 배고픔이 그냥 흘러가도록.


2025년 12월 13일, 그는 폐암 투병 끝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도 고려대 앞을 지나는 누군가는 말한다.

“여기 예전에 영철버거 있었잖아.”


가게는 사라졌지만,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 이름이 아직도 그렇게 불리는 한,

영철 아저씨는 그 자리를 떠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ㅡㅡㅡ

서울 성북구 안암동 영철버거 매장 앞에 대표 이영철 씨를 추모하는 편지와 꽃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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