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잡이’ 누나

by 문용대

나의 ‘글잡이’ 누나


아침에 걸어서 출근하는 40분 길 발걸음은 늘 가볍다. 이어폰을 꽂지 않고 홀가분하게 걷는 이 시간은 나에게 명상에 가까운 사색의 시간이다. 정신이 맑아질수록 겨울의 찬 공기는 오히려 반갑다. 마스크와 모자를 겹쳐 쓰고 방한복 후드까지 뒤집어쓰니 귀 시릴 일이 없다. 토요일인 오늘, 나는 고요한 직장 사무실을 지킨다. 새해 첫날에도 이곳에서 신문을 읽으며 한 해를 설계했다.


여러 일간지를 훑다 보면 유독 눈에 꽂히는 글귀가 있다. 대체로 긴 호흡의 글은 신문을 통째로 찢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정성스레 오리기도 한다. 오늘은 그동안 모아 두었던 신문 조각들을 가방에 넣어 와 하나하나 다시 읽는다. 그러던 중, 휴대전화 진동이 정적을 깨뜨린다. 여주의 옥기 누나다. 새해 들어 처음 듣는, 여전히 맑고 반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내게 ‘누나’라는 호칭은 형제뿐인 집안에서 자라 누나에 대한 동경이 컸던 탓인지 언제 들어도 가슴 한구석을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단어다. 옥기 누나는 내게 포근함과 든든함을 주는 존재다. 누나와 나의 인연은 무려 50년도 더 지난, 우리들의 파릇했던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누나는 영문 잡지 ‘The Way of the World’를 만드는 열정 넘치는 편집자였고, 나는 신문사 공무국에서 그 잡지의 조판과 정판을 맡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단아하고 곱지만, 스무 살 갓 지났을 적 누나는 참으로 예뻤다. 납 활자의 묵직한 무게와 잉크 냄새가 진동하던 그 거친 현장에서, 누나는 나보다 세 살 위라는 차이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고 명확한 눈을 가진 조언자였다.


누나는 이후 미주 한인신문 문화국장과 편집인을 지내는 등 외길을 걸어온 서슬 퍼런 언론인이 되었다. 날카로운 이성으로 이민 사회의 명암을 기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람이 부는가》, 《수평선 그 너머에는》 같은 수필집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고독을 유려하게 담아낸 중견 문인이기도 하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갤러리 마음’을 운영하며 수많은 예술가를 품어주던 그 넉넉한 심성은, 이제 여주 남한강 강가에 자리 잡은 단아한 안식처로 옮겨와 머물고 있다.


미국 생활을 하던 누나와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세월도 있었다. 하지만 귀국 후 우리는 기적처럼 다시 연결되었다. 10여 년 전, 내가 처음 수필 쓰기에 도전하며 붓을 잡았을 때도 누나는 기꺼이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야, 칼럼을 자주 쓰다 보면 순수 문학의 결에 소홀해질 수 있어. 너무 세태에만 민감한 글에 빠져들지 마라.”


오늘 전화도 누나가 어디선가 내 칼럼 기사를 읽고 나서다. 사실 나 역시 정치적이고 날카로운 사회 비평 글에 재미를 붙이며 나도 모르게 그 자극적인 맛에 빠져들고 있던 참이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었다. 스스로 자성(自省)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마음의 브레이크를 누나가 확실하게 잡아준 셈이다. 본연의 문학인으로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관리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누나로부터 얻은 그 귀한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다.


내 나이 일흔 중반을 넘겼다. 그런데도 그 누나 앞에만 서면 마음은 스무 살 언저리로 되돌아간다. 어쩌면 아직도 어리광 한 번 부리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누나의 집을 방문했던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리 넓지는 않아도 주인 닮아 단아했던 그 집 주변 풍경이 눈에 선하다. 남한강 강가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물줄기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에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 엊그제만 같다. 누나는 늘 전화를 걸 때면 “왜 먼저 연락 안 하니?”며 서운함 섞인 다정한 투정을 건넨다. 서울에서 여주까지, 마음만 먹으면 닿을 거리인데 무엇이 그리 바빠 먼저 연락 한 번 못 했는지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온다. 전화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로 맺는다.


올해는 자주 만나야겠다. 20대 그 시절, 뜨겁던 인쇄기 소음 속에서 함께 나누던 열정만큼이나 따뜻한 밥 한 끼를 누나와 나누고 싶다. 나를 다잡아주는 영원한 ‘글잡이’ 누나가 저 강 너머에 건재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새해 문장은 다시 맑고 깊어질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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