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나의 선택과 훈련에 달려 있다

by 문용대

금강 스님의 글 「행복은 의무입니다」를 읽었다. 정적 속에서 마주한 그 문장은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 소리 같았다. ‘살아갈 날은 정해져 있으나 삶의 모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은 희망인 동시에 준엄한 경계다.

우리는 매일 '팔풍(八風)'이라는 여덟 가지 바람 속을 걷는다. 이익과 손실, 비난과 칭찬 같은 이 바람들은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생계를 흔들고 마음을 베는 날카로운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은 의무"라는 선언은 때로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무게를 피하지 않고 감당할 용기가 있느냐고 스님은 묻는다.

행복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도가 과도한 물질 중심주의와 빈약한 관계의 질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놀랍게도 한국인의 물질 집착도는 최빈국 짐바브웨보다 높았다. 풍요를 얻었지만,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가두는 ‘비교의 감옥’을 지은 셈이다. 그는 행복의 가장 큰 요인을 '사회적 관계'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동료를 경쟁자로 여겨야 하고, 연봉과 아파트 평수가 인격을 대신하는 곳에서 "내면을 돌보라"는 조언은 때로 공허하다. 물질이 없으면 존중도 사라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끝없이 외부로 밀려나며 마음의 자리를 잃어간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론』에서 행복을 운이 아닌 훈련(Discipline)의 결과라고 단언했다. 마음도 근육처럼 단련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강조하는 '자비'는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는 '공감의 능력'이다. 타인을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사는 존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불안은 잦아든다. 진정한 평온은 외부 자극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의 힘줄'에서 나온다. 흔들림을 고통으로 남길지, 성찰의 기회로 바꿀지는 오직 훈련된 마음만이 결정한다. 산중에서 명상할 수 없는 우리에게 "행복은 의무다"라는 말은 나를 돌보고 타인에게 상처를 옮기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내가 불행에 잠식되어 주변에 부정적인 기운을 퍼뜨리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 방기다.

고통은 외부 현실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나의 시선에서 증폭된다. 물질주의의 덫을 벗어나 마음을 훈련하는 일은 소박하다. 퇴근길 지하철 소음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는 일, 남의 성공에 기꺼이 축하를 건네는 일,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일. 이런 사소한 행위가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번뇌의 뿌리가 뽑힌 '최상의 행복'은 멀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삶의 결은 달라진다. 일상이라는 숫돌 위에서 우리는 날마다 마음을 갈고 닦는다.

세상은 앞으로도 불친절할 것이다. 끊임없이 비난하고, 빼앗고, 흔들어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꺼내 들어야 할 무기는 '단련된 마음'이다. 관계의 가치를 지키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꾸준함이 곧 행복의 훈련이다.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자세와 관계에서 시작된다. 현실의 벽이 높을수록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품으며 내 안의 고요를 지키는 일. 결국, 행복은 나의 선택과 훈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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