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을 알아본 정조와 설리번

by 문용대

거목을 알아본 정조와 설리번


남양주 조안면, 한강의 물줄기가 유순하게 휘어지는 마재마을에서 다산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을 거닐었다. 낮은 처마 아래를 지나며 문득 한 인간의 완성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본인의 천재성만이 아니다. 그 천재성을 알아보고 길을 내어준 ‘위대한 만남’이 비로소 한 인생을 매듭짓는다.

지도자가 인재를 알아보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를 등용하여 끝까지 지켜내는 일은 처절한 투쟁이다. 조선에 정조와 정약용이 있었다면, 서구에는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가 있었다. 시공간을 달리하는 이 두 쌍의 만남은 ‘될 사람을 알아보는 눈’과 ‘그를 귀하게 부릴 줄 아는 지도력’이 한 인간의 운명을 넘어 시대를 어떻게 바꾸는지 증명한다.


정조가 다산을 중용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가시밭길이었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에게 다산은 제거해야 할 정적이었고, 그의 천주교 이력은 공격하기 가장 좋은 빌미였다. 정조는 다산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그를 외직으로 내보내며 소나기를 피하게 해야 했다. 지도자가 인재를 아낀다는 것은 이처럼 반대파의 화살을 대신 맞는 고독을 감내하는 일이다.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한 후 다산에게 닥친 18년의 유배는 지도자를 잃은 인재가 겪어야 할 난관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다산은 그 지옥 같은 고독 속에서 정조가 남긴 ‘치세의 꿈’을 500여 권의 책으로 피워냈다. 자신을 알아준 단 한 사람을 향한 고결한 의지가 유배지의 찬 바닥을 견디게 한 것이다.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지도하는 과정 또한 한 인간의 인내를 극한까지 시험하는 현장이었다. 당시 헬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암흑 속에 갇혀 거친 야성을 분출하던, 사실상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 설리번은 헬렌의 발길질에 얼굴을 맞고 온몸에 멍이 들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과 격리된 오두막에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헬렌과 사투를 벌였다. 지문자 한 글자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수만 번을 반복하며, 설리번은 자신의 시력이 다시 나빠지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헬렌의 손바닥에 세상의 이름을 새겼다. 설리번에게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한 영혼을 암흑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목숨 건 전쟁이었다.


두 사례는 중요한 통찰을 남긴다. 진정한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결핍을 연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결핍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헬렌은 설리번의 헌신을 바탕으로 장애인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다산은 정조가 열어준 길 위에서 조선 실학의 정점을 찍었다.

유적지에는 젊은이들이 더러 보였다. 취업과 미래, 각자만의 무거운 짐을 진 채 다산의 흔적을 좇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현 시국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산 같은 인재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험난한 성장의 과정을 함께 견뎌줄 정조나 설리번 같은 지도자가 없는 것인가.


인재는 고통 속에서 단련되고, 지도자는 그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인재를 잘 만나야 뜻을 이루고, 사람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남양주의 찬 바람은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한 명의 인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난관을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는, 사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고 완성한다’는 가장 숭고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남양주에서 담아 온 이 깨달음이 내 삶의 문장 속에서도 깊게 향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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