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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13. 2020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

  “간(肝)이 배 밖으로 나온 여자들!” 며칠 전 단체 카카오 톡 방에 내가 속한 단체 중앙회장이 그의 아내가 보내온 여행사진에 단 설명 문구다. 14명의 여성이 베트남엘 갔단다. 이 와중에 겁 없이 베트남 여행이라니……. 작년 연말부터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온 세계에 공포감이 퍼졌다. 발원지로 지목되는 중국에는 감염증 확진자가 수만 명, 사망자가 수천 명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이탈리아, 이란과 함께 베트남도 위험지역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럴 때 베트남엘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번 여성들의 여행은 작년에 계획을 세워 31명이 가기로 했다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19명으로 줄었다더니 최종 14명이 여행을 갔다 한다. 배 밖으로 나간 간이 제자리로 들어 가 부디 무사 생환하기를 바란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본 몇 차례와 유럽 몇 나라를 가 본 것이 전부다. 직장에서 여러 날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여행을 가기 위해 작년과 재작년, 2년간 여름휴가를 찾아 쓰지 않았다. 몇 년째 계획을 세웠지만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개인 사정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속한 단체모임 사정이거나 올해처럼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해서 그랬다.


  2년 전에는 가까운 일본을 가기로 일정과 코스까지 정했다가 취소했다. 작년에는 가족끼리라도 나설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것도 때를 놓치고 말았다. 다시 금년에는 큰 맘먹고 여섯 가정 12명이 베트남을 가려고 회비를 준비했다.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내가 실무를 맡아 백두산을 여행할 58명의 회원으로부터 회비를 모았다. 3월과 5월에 갈 두 곳 모두 날자와 여행코스를 정하고 항공 티켓도 구입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일인가. 작년 연말부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불길한 소식이 날이 갈수록 점점 퍼지더니 급기야 ‘심각’ 단계까지 이르렀다. 백두산을 가야 하는데 다른 곳도 아닌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여행이 취소되고 항공료를 환불받아 회원 58명에게 일일이 되돌려 주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겨우 송금작업을 끝내고 단체 카카오 톡 방도 문을 닫았다.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여행도 문제다. 처음에는 여행을 취소하면 1인당 6만 원씩의 배상금을 내야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항공사에서 운항을 하지 않는단다. 이미 구입한 12명분 항공 티켓 요금도 환불받았다.


  역사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해 무시무시한 일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감기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1918년부터 약 3년간 당시 세계 인구 19억 명중 약 5억 명(26.3%)이 스페인 독감(사실은 스페인과 무관하게 누명 쓴 이름이라 함)에 감염되어 약 5천만 명(전체 인구의 2.6%)이 사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퍼져 당시 인구 1,670만 명 중 742만 명(44.4%)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 한다.


  근래에는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조류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 등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시달렸다. 이번에 발생한 코로나 19 사태는 공포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인간이란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연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30~200nm(나노미터) 정도로 크기가 세균보다 훨씬 작아 세균을 걸러내는 여과기를 그대로 통과한다. 나노미터(nm)는 10억 분의 1m를 가리키는 단위로 고대 그리스어의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됐다한다. 1 나노미터는 대략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에 해당된다. 이 미물에 대해 “지구에서 생명체들이 전쟁을 벌인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은 바이러스다.”라고 한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방어해도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라고도 한다.


  나는 여행 운이라고는 아예 없나 보다. 지금은 여행 운운할 때가 아니다. 처음에는 대구 경북지역에 퍼졌다가 수도권을 비롯해 거의 전국에 퍼져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평소라면 가까이에서 죽음을 당하는 이가 있어도 내 일이 아닌 듯,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살았다. 그러나 멀쩡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공기 한번 잘못 마시고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어가는 것을 보면 나도 쉽게 죽을 수 있겠다, 내 코앞에 죽음이 닥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시름에 더 잠기게 한다. 어서 이 고통의 날이 지구 상에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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