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무 데에도 쓸데없다고 여기거나, 오히려 귀찮은 것이 존재한다. 그게 바로 여름철 모기라 할 것이다. 한여름 무더울 때면 잠을 설치게 되는데 더위뿐만 아니라 극성스러운 그 모기 때문이다.
2017년 여름은 모기로 인해 잠 설친 사람이 많지 않은 듯했다. 기상관측 이래 그해 여름이 111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 때문에 모기 유충이 죽어서 그렇다고 했다. 기온이 40°C를 넘나들며 30°C가 넘는 열대야가 이어지다 보니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강원도 강릉 어느 집 발코니에 둔 달걀에서 병아리가 스스로 부화하는 이변이 생기는가 하면, 야적장 폐기물과 라텍스 소재 방석이 햇볕에 열을 받아 자연 발화했다 한다. 온열질환으로 30여 명이 숨졌다고도 한다. 아프리카의 더위를 능가한다 하여 대프리카(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니, 서프리카(서울과 아프리카의 합성어)니 하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약수터에 물 뜨러 가면 모기가 많다. 거기만 가면 어릴 적 생각이 꼬리를 문다. 형이 밭 위 산자락에 수박을 심곤 했다. 약수터 모기는 원두막에서 엄청나게 뜯긴 그 까만 모기다. 까만 산(山) 모기는 집모기보다 훨씬 지독하다. 밤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 위에 둘러앉아 더위를 이겨냈다. 담배 잎 수확 때는 호롱불 밑에서 낮에 따 온 잎을 크기와 색깔별로 골라 엮는다. 그럴 때도 모깃불은 꼭 피운다. 바랭이 풀, 쇠비름 등 잡초를 모으고 보리 겨를 섞어 피운 모깃불에 물을 자주 뿌려야 오래 타고 연기가 많이 난다. 눈이 매워 눈물을 짜더라도 모기한테 뜯기는 것보다는 낫다.
그해에는 모기가 줄어든 대신 말벌이 기승을 부렸다. 기온이 높을수록 말벌 유충이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모기로 인해 소방대원이 출동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말벌 떼 출현으로 한 달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2천 여 회 출동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기가 잠을 설치게 하거나 가렵게 하는 정도에 그친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는 뇌염, 말라리아 등 감염 질환을 퍼뜨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이놈이 그곳에서는 사자나 호랑이, 악어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한다. 세계 보건기구(WHO)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2014년 발표한 ‘지구 상에서 사람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동물’ 1위가 모기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살인 등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는 인간, 사람을 물어 죽게 하는 뱀, 그리고 개 등 2~4위를 앞지른다. 모기로 인해 한 해 사망자가 무려 75만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모기는 뚱뚱한 사람, 땀 냄새나는 사람, 그리고 O형인 사람이나, 열이 많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 또 우리가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것처럼 모기도 혈중 지방 농도가 높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 아내와 내가 방에 같이 있어도 꼭 나에게만 달려든다. 나는 깡마른 체격이다. 땀도 그다지 많이 나지 않는다. 공중목욕탕 속에 들어가도 한참을 지나야 이마에 땀방울이 조금 맺히는 정도이다. O형도 아니고, 콜레스테롤 수치 높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열이 많은 것은 인정한다. 몸에 좋다는 인삼도 열이 많아 가리는 정도이다. 아내는 덥다고 내가 곁에 가는 걸 싫어한다. 내 피가 그래서 맛있나 보다. 모기는 피 맛을 보지 않고도 아는 것 같다. 2017년같이 모기가 별로 없는데도 잠들기 전 스프레이 살충제를 뿌리거나 훈증기 또는 모기향을 피워야 안심이 됐다. 머리맡에 물파스도 꼭 챙긴다. 자다가 가려우면 발라야 하니까.
모기는 10~20m 밖에 있는 사람도 찾아낸단다. 모기는 방충망 사이 2mm의 작은 구멍도 통과한다. 암컷 모기들만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빤다. 산란기가 되면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다. 모기는 여름보다 가을이 활동하기 적합하기 때문에 처서가 지나서도 극성을 부린다. 실제 질병 관리본부에 따르면 모기매개 감염병인 일본뇌염은 9~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모기에 덜 물리기 위해서라도 평소 피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흘린 땀은 빨리 물로 씻는 게 좋다. 실내 곳곳에 물기를 제거하고, 야외에서는 밝은 색 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야외에서는 옛날처럼 모깃불을 피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럼 모기가 이로운 점은 없을까? 모기가 인간에 위험한 질병을 옮기기도 하지만 생태계에 꼭 필요한 생물체로, 모기가 사라지면 식물 개체수가 줄거나 멸종될 수 있다 한다. 열대작물의 수분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이로 하는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질 수 있어서다. 대체먹이를 찾지 못한 많은 생물들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게 아니다. 한 동물을 전멸시키면 그 동물을 먹이로 삼는 다른 생물 및 생태계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인류가 단순한 생각으로 한 생물을 해충이라고 멸종을 시도하려다가 더 많은 생물이 타격을 받고 인류도 덩달아 피해를 겪을 것이라고 한다.
첨단기술을 이용한 수사기법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이 많은데 모기를 이용한 기법이 화두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 해변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어 경찰이 찾아낸 증거는 바로 살인자의 방안에 있던 모기였다. 모기 속에 들어있던 피를 채취해 검사를 해봤더니 숨진 그녀의 DNA가 검출되어 범인을 붙잡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모텔 폭행 살인사건에 적용이 됐다. 문틀에 남은 모기 핏자국으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투숙객을 확인한 것이다.
모기는 과연 멸종시켜야 할 존재인가? 모기도 조물주가 만든 피조물임에 틀림없다. 조물주께서 아무 작에도 쓸데없는 것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