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재의 하루 2020년 11월 6일
이번 챕터의 시작은 2018년 1월이었다.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고 유튜브로 불어 알파벳을 처음 배웠던 서울 미아동에서의 겨울. 그리고 그 해 8월 나는 파리에 왔다. 오늘은 내가 2년 동안 가장 오래, 자주 머물렀던 학교 공간에 마지막으로 간 날이었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더라면 벌써 졸업을 했을 텐데 미뤄지고 미뤄지다 결국 이제야 마무리를 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다음 주 월요일에 졸업장을 받게 되니 아직 완전히 끝은 아니고 거의 끝자락에 와있다고 말해야겠다.
2018년 10월 1일. 두려움 가득했던 학교 첫날이 떠오른다. 온몸이 얼어붙었고 아주 쉬운 발표조차 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것만 보다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온 날. 바보냐며, 이렇게 나약할 거면 왜 유학 왔냐며 나 스스로를 질책했던 그날 밤. 이틀 째는 좀 나아졌으려나 했더니 전혀 아니었다. 첫 3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밤 울며 잠들었다. 불어로, 영어로, 바디랭귀지로 외국인들과 연극을 만들고 연기를 하고 선생님들의 모진 평가를 받고 학급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이 모든 걸 매일 겪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되는 이 세상이 정말 신기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 괴롭지만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는 걸 느꼈다. 연극 학교라고 연기 테크닉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 책으로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오랫동안 내 몸으로 반복하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한 순간,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이 이해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30년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이 연극 학교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학교 덕분에 불어를 배웠고 파리에 살게 되어 프랑스와 유럽 문화를 알게 되었다.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 예술가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연극학교인데 연기를 배웠다기보다는 나 답게 살아가는 힘을 배웠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연기를 안 배운 건 아니지. 연기, 연극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얻었다.
원하던 학교에서 후회 없이 배우고 그저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물론 이 챕터를 마무리해야 하니 당연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떤 때보다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연극을 업으로 살아가야 하니 어쩌면 더 위태롭고 힘들 수도 있겠다. 아니 무조건 더 힘들 거다. 하지만 뭔가.... 뭔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