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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수 Dec 30. 2021

목요 영화 - 엘리노어 릭비 : 그 남자, 그 여자

사랑의 두 얼굴

 



 가수 이소라의 대표곡 <바람이 분다>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비극이 될 때, 궁극적인 원인은 ‘그대는 내가 아니다’에 있다. 영화 <엘리노어 릭비>(2015)의 엘리와 코너도 이 비극을 피해 가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도 서로 다른 ‘여자’와 ‘남자’였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 같던 이 연인은 사랑의 결실로 낳은 아이를 잃고 깊은 수렁에 떨어진다. 아무리 가까운 연인일지라도, 남자와 여자는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없다.


 세상 모든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이래 넘지 못한 가장 높고 견고한 벽은 우리라는 이름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너와 나의 다름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을 견디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견뎌내고, 누군가는 마주하고, 누군가는 회피한다.

 

 이는 엘리와 코너가 아이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엘리는 아이와 보낸 추억 속에서도 덤덤하게 배달음식을 시키는 코너에게 할 말을 잃는다. 코너 또한 일방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엘리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 했던 여자와 어떻게든 그녀를 쫓아가 돌려세우려는 남자의 이야기는, 긴 상영시간 내내 교차되고, 해피엔딩은 없을 것처럼 흘러간다.

극적이지 않지만, 순조롭지도 않다.


이 사랑의 서사는 누군가와 사랑을 해보았거나, 지금 하고 있거나, 언젠가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사랑을 만들 수는 있어도, 결코 한 사람이 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사랑은 ‘비극’이 되고,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이 하얀 밧줄로 어려운 매듭을 묶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매듭을 누구보다 쉽게 풀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도 밧줄 전문가도 아닌, 그것을 묶었던 당신이다.


 엘리와 코너도 자신들이 꼬아 놓은 매듭을 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기 시작한다.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고, 미루던 꿈을 실천에 옮긴다. 사랑의 진가는 두 사람이 완벽한 하나가 될 때가 아니라, 두 사람이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시작과 끝엔 어둠이 내려앉은 공원이 등장한다. 처음 그들은 이 공원에서 행복한 데이트를 했었지만, 마지막엔 간발의 차로 엇갈리고 말았다.


 무심하게 올라간 엔딩 크레디트 이후, 엘리와 코너는 마주칠 수도 있고 지나칠 수도 있다. 길 위에서 그 남자 그 여자는 다시 ‘우리’가 되었을까? 이제는 그 속에서 ‘따로 또 같이’ 온전할 수 있을까?


 밤이 깊었다.

 저기, 하나의 사랑과 두 사람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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