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니체가 예상했던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여기서 니체의 예언가적 기질이 돋보인다. 그가 보았던 현대 사회의 모습은 적어도 내가 느끼고 있는 사회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종교 감정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들이 먼저 종교에 등을 돌릴 것이며 더 이상 국가에게 종교는 더 이상 썩 좋은 패는 아니게 될 것이란 사실은 자명했다.
과거 종교와 국가를 거의 동일시하며 국가를 종교적 숭배의 감정으로 몰고 갔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종교의 권위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제외하고는 무너졌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에 대한 ‘감격’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전 편에서 말했듯이 종교와 국가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귀속되어 있다. 니체는 이 곳에서 많은 여러 종파들이 여러 종교 갈등이 생기고 종교 감각이 강화되어 나가고 결과적으로 반국가적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면 사이비로까지 여겨지는 무수히 많은 종파들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종교 갈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명동 거리만 가더라도 괜시리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나중에는 종교가 종파들로 뒤덮이게 되고 종교가 개인적인 문제가 된 그 순간에 용의 이빨이 뿌려졌다는 많은 사실이 입증된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곧 과거에는 국가를 반쯤 또는 완전히 신성한 그 무엇으로 우러러보았던, 여전히 종교적으로 감동되어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는 결정적으로 반국가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무신론자, 무종교인의 수는 가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결국 몇 세대의 걸친 교육 혹은 힘을 이용하여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결국에는 매장시킬 것이다. 더 이상 국가에 대한 신비적인 감정은 남아 있지 않게 되며 개인은 오로지 국가에서 이익을 얻기만을 원할 뿐이다. 니체는 이러한 부분에서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 간다고 했다. 대중을 꿰뚫어버린 대목이다.
[앞으로 개인들은 오직 국가가 그들에게 유익하거나 해로울 수 있는 측면만을 보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얻기 위하여 몰려든다. 그러나 이 경쟁은 곧 너무나 치열해지고 사람들과 당파들이 너무 빨리 교체되어서 그들이 거의 위에 이르기도 전에 서로를 너무 난폭하게 산에서 다시 밑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정부가 관철하는 모든 조치에는 영속성의 보증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들은 익은 과일들을 얻기 위해 몇십 년, 몇백 년 동안 조용하게 성장해야 하는 그러한 시도들을 꺼린다.]
정치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주기적으로 집권하는 당이 바뀌는 건 물론이고 어느 순간에나 대중의 목소리에 정책이 바뀔 수도 있으며, 어떤 정책은 채 실현되기도 전에 엎어져 버리는 일도 다반사이다. 철저하게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시대에서 국가, 정부를 어느 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에는 지나치게 분열된 사회가 아닌가 싶다. 각 개인의 문제로 보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의 삶의 방향보다는 현재의 쾌락 혹은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젊은 세대의 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오늘의 즐거움’을 지독하게 쫓는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인내심 그리고 영속성의 결여가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흘러가는 사회를 막을 수도 없고 단지 사회가 변해가는 한 과정이다. 옳은 삶이란 없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취사선택을 잘 내리는 삶이 현명한 삶일 뿐.
국가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신비의 베일이 모두 벗겨져 버린 근대 민주주의의 모습을 ‘국가 붕괴의 역사적 형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그러나 역시 그는 붕괴되어 가고 사라져 가는 국가를 허무하게 바라보자는 입장은 아니었다. 인간의 이기심은 무섭다. 그리고 인간은 놀랍도록 영리하다. 그것이 인류를 존속하게 한다. 인내심의 결여를 지적했던 니체였지만 인간의 이익에 대한 이기심과 그것을 얻기 위한 영리함, 이 두 가지로 인해 혼돈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 이기심 때문에 인류가 과거보다 더 합리적인 사회로의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익이 거의 유일한 동기가 되어 돌아가는 사회지만 그 안에서의 긍정적인 결과물을 창출해 낼 수 있다고 보았던 걸까.
국가라는 것이 결국에는 사라져 버릴 개념이라면 우리의 대처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직 아무도 갈라진 땅에 나중에 뿌려질 씨들을 보여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국가가 아직 어느 정도 오랫동안 존속하도록 그리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성급한 얼치기 학자들의 파괴적인 시도들이 물리쳐질 수 있도록 ‘인간의 영리함과 이기심’을 신뢰하자.]
대중과는 너무 달랐던 니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을 믿고 사랑한다. 그가 보는 미래는 긍정적이었다. 그렇게 해보잔다.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