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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혁 Aug 07. 2020

무책임한 사랑에 대하여

영화 <풀잎들>


대화 중간중간 약간은 어색한 간격의 침묵이 존재하는 홍상수 감독 특유의 분위기. 나는 그 분위기가 좋다. 긴장감과 어색함 그리고 편안함 사이의 그 어중간함. 그 불편하리만치 어색하게 느껴지는 대화 속에서 김민희가 맡는 여자 역은 종종 갑작스레 또 열정적으로 화를 낸다. '별것도 아닌 것들'에게. 그녀는 사랑의 대변자로서 화를 낸다. 그들과 그들의 사랑에 대해 느끼는 경멸과 사랑에 대한 자신의 열정 또한 듬뿍 담아.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몸이 움찔거릴 만큼 불편한 감정이 든다. 당연하게도 '별것도 아닌 것들'은 당최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되려 화를 낸다. 그저 왜 저러나 싶을 것이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불쾌감을 일으킨다. 그들이 외면해 왔던 곳, 아픈 곳을 쿡쿡 찌르니까.




홍상수 영화에서 김민희는 너무나도 잘 그 역을 소화해 낸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별것 아닌 사람들에게 '사랑할 자격도 없다며' 소리치지 않았나.

그녀가 이리도 격정적으로 변호했던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 그게 뭐길래


"사랑해"

"나도 사랑해"



쉽다. 가볍다. 또 어렵고 무겁다.

너무나 무책임하게 감정을 내뱉으며 그것을 사랑이라 칭하고 혹자는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냄에도 그 어떠한 거부감도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고 치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될까? 30%? 50%? 80%?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정말 그 사람을 알고 있는 걸까. 꽤나 확신이 드는 순간에도 두려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모르는 사람과 한 평생 같이 살게 된다면 그 끝은 별것 아닌 것들의 엉망진창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너무나도 힘이 있어 우리의 무책임한 모습들과 감정들 쯤은 뒷전으로 제쳐 두고 눈앞의 즐거움만이, 아름다움만이 남게 한다. 그리고 "사랑해"란 말속에서 우리는 안도할 수 있다.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감춰두고 있는 불안함 감정들을. 그렇게 외면했던 내 진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무책임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허무함만을 남길 것이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들의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 서로 완전하게 연결되는 사랑. 마음과 마음이 정말로 이어지는 그런 사랑.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 조심스럽게 사랑과 결혼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꺼내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과의 감정에 있어 설렘 혹은 사랑의 감정이 느껴질 때면 누구나 자신들의 사랑이 가장 특별한 것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참된 사랑에 빠진 것만 같다. 이런 감정들. 어떤 이의 사랑은 고상하고 또 어떤 이의 사랑은 싸구려고 하는 것들을 누가 판단할 것이며 누가 알까. 내 눈에는 저렇게 싸구려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저들에게는 큰 세계겠지. 그래도 무책임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모두 다 진심이면 정말 좋을 텐데, 더 행복할 텐데, 더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감정들은 다 귀하고 값진데. 살아감에 있어 사실 전부가 아닐까.



별것도 아닌 쟤들이 웃고 떠들며 술잔을 부딪히는 일.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욕하던 그녀가 결국에는 같이 뒤엉키는 일. 

그 별것들 아닌 것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일.

이렇게 감정이 뒤섞이는 일.

사람은 감정이니까. 니들이 별것도 아닌 것들이면 뭐 어쩌겠어.

나도 어쩔 수 없는 별 것 없는 사람인 걸.



"사람들이 만나는구나 서로 감정이 부닥치고

감정으로 힘을 내고 

아무 상관도 없던 삶이 엮어지고

서로 같이 서서 익게 되는구나.

왜 저렇게 친하게 구는 걸까

저게 정말일까? 정말이면 정말 좋겠다.

결국에 사람은 감정이고, 감정은 너무 쉽고, 너무 힘 있고, 너무 귀하고, 너무 싸구려고, 너무 그립다".


- <풀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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