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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연 Dec 23. 2015

난 '금수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간 태어날 내 아기에게

"난 결혼해도 애는 낳지 않을 거야"


친구의 말에 나는 놀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 그리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유를 들어봤다. 자신의 2세에게 물려줄 이 세상이 너무 험하고, 곧 망할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지구 멸종을 말하는 건지,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대충은 알겠더라.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며칠 전 한 서울대 생은 "생존 결정하는 건 '수저 색깔'"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래의 내 아이에게 어떤 수저를 물려줄 것인가.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아이를 갖고 키우는 것의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의사결정의 새로운 패턴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책임 있는 선택: 아이 갖지 않기로 알려져 있는데, 말하자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줄어들수록 더욱 아이들 하나하나가 소중해지고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진다. 아이가 더 중요해지고 비용이 들수록, 사람들은 이 거대한 과업에서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아이 없이 지내기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책 '사랑은 지독한 혼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 갖기가 망설여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를 낳지 않겠다던 친구의 말이 더 깊이 와닿는 현실이다. 나의 걱정은 이렇다. 먼저, 아이에게 충만한 사랑을 줄 만큼 나는 정서적으로 완전한 사람일까라는 생각과,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과연 국가의 시스템은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 개인의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임신-출산-육아까지 회사로부터 어떤 눈치도, 스트레스도 없이 국가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복지혜택 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내년쯤 아이를 갖길 원한다. 이왕 낳을 거라  마음먹었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으라는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라. 그런데, 나는 왜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까. 나와 닮은 생명을 보고 싶어서? 어떤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결혼을 했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그 원초적인 질문에 멈칫하게 된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책  '사랑은 지독한  혼란'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어떠한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정은 정반대이다. …실제로 남겨지는 보상은 정서적 가치이다. 그것은 책임져야 하는, 뭔가 맡겨져 있으며 정서적으로 없어서는 안된다는 소중한 느낌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 속에 구현되고 인간의 형상으로 다시 표상되는 자기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아이를 계획했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아기를 갖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최상의 건강상 태일 때만 임신을 계획할 것을…더 나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평범한 아이를 갖겠는가?

예전과는 달리 부모에게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요구되며 그들의 과업에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쥐게 되었고, 여기에는 그들 자식의 운명도 포함되었다. 이제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충고하는 것은 아이에게 최상의 출발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아이가 부모와 닮고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용인될 수 없다. 그는 더 잘나고, 잘살아야 하며, 더 많이 알고, 더 잘  차려입어야 한다.


더 잘나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기를 낳아야 하는 의무까지 더해졌다. 낳으면 저절로 자란다는 말은 이제 입밖에 꺼내서도 안 되는 옛말이다. 1999년도에 출판된 책이라는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5년의 현재의 부모들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내 아이에게 어떤 수저를 물려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 금수저 흙 수저라는 그런 단어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다. 출발선상이 조금은 다를 수 있어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에서 자라길 바란다. 결국, 이 문제는 나 혼자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시대의 부모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할 '과업'이다.


개인적인 측면에선,  내적으로 조금 더 단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결국은 완벽한 정답은 없는 푸념에 가까운 혼잣말이다. 하지만, 이런 잡스러운 고민은 엄마가 되는 첫걸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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