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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연 Apr 11. 2016

one job and one passion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아카데미도 등록하고, 실기 스터디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외모도 그다지. 목소리 콤플렉스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매번 떨어지는 면접… 결국, 아나운서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방송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기자는 아무나 되나^^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무모했나 싶다. 나에겐 플랜 B였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서류 문턱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한 매체의 인턴기자로 지원해 합격했고, 인턴 10개월 차에 편집기자로 지금 회사에 취업했다.


사실 지금 나의 직업은, 플랜 A도, 플랜 B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생각하지도 못한 직업이다. 언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왔지만,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나운서와, 방송기자들이 가득한 보도국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었다. 그 선은 너무도 명확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래서 더 힘들고, 서글펐다.

입사 1년이 되어가던 무렵이다. 난 내 일이 싫었고, 회사에 가는 것도 싫었다. 괜한 질투심이 매일매일 샘솟았다. 그러던 중 주말근무에 지쳐 잠시 커피를 사러 덕수궁에 나왔다. 그러다 색소폰을 연주하던 이 남자를 보게 됐다.


사진속 여성은 제가 아닙니다^^


그의 발 밑에는 금문교 사진을 배경으로 한 종이가 있었다.


“이 사진을 보고 내가 어디서 왔을지 맞춰보세요!"


연주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샌프란시스코 맞죠?"
"오~ 맞았어. 난 프랭크 야."

"반가워요. 나도 샌프란시스코 가봤어요."
"오 정말? 샌프란시스코 어땠어?"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해요. 한국에는 여행 온 거예요?"
"아니.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

"오~ 그럼 지금 투잡 하는 거예요?"
"음, 아니  one  job and  one passion. the bigger one."


순간 내 얼굴은 빨개졌다. 볼이 뜨끈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잔뜩 때 묻은 내 단어 선택과 생각이 너무 부끄러웠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얼마나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질투하며 혼자 괴로워하거나,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을 거야'라며 안주하는 건 둘 다 내가 원하는 건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한 외국인의 말을 통해 일상에 불만을 품기보단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기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입사 4년차.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나는 왜 아나운서가 하고 싶었을까? 그럴듯한 이유도 많겠지만, 결국 나는 주목받고 싶었다. 언제나 단정하고 우아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 난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그렇게 내가 선망하는 대상이 곧 나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더 본질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통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게 지금은 바로 '글'이다.


지금, 꿈을향해 매진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할 수 있을때 최선을 다하길, 그리고 꼭 꿈을 이루길 응원한다. 다만, 다른 길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에 대한 창피함도, 죄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반대로, 나처럼 다른 길을 택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따금 생각나는 과거의 꿈이 있다면, 숨기고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속이는 것이 바로 아직도 그 꿈에 얽매여 있다는 반증일테니까.


이제는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과거의 꿈이 바라봤던 방향 속에 더 '본질적인' 것을 찾아 새로운 꿈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혹은, 여행을 다니거나 좋은 취미를 찾아 소소한 행복을 영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해야할 이유는 없다. 우린 노력했고, 현실에 충실했으니,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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