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S2 #2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던 시절, 김중혁 작가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 대해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는 장편소설은 인물이 겪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면, 단편소설은 사건을 겪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이 벌어지다 마는 것 같은 단편소설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시절 이 이야기를 듣고 단편소설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최은영, 정세랑, 천선란, 김초엽 같은 멋진 한국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사람에 집중한 단편 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그 리스트에 또 새로운 책 하나가 추가됐다.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은 동명의 소설을 포함해 8편의 단편을 담았다. 모든 소설의 주인공은 2~30대의 직장인이다.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도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편이라 단숨에 읽어내렸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너무 찌질한(?) 생각이라 남들이 알지 못했으면 했던 생각이 내 의식의 흐름대로 적혀있다거나, 내게 후회로 남아있는 상황을 소설 속 인물이 그대로 겪고 있기도 해서 공감하면서도 그들은 다른 선택을 내리기를 바랐다. 작가의 말에는 등장하는 인물들 --주인공뿐만 아니라 대립하는 인물들조차-- 어느 한구석은 본인을 조금씩 닮아 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 인물들은 본인보다 씩씩하고 멀리 간다고 말한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탐페레 공항>이었다. 얼마 전 홍콩 필하모닉의 시즌 피날레 공연에 조성진이 와 급히 표를 구해둔 뒤 이 책을 읽었는데, 안나가 조성진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는 장면을 보고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지금 읽을 운명이었나. 안나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더더욱 공감했다. <탐페레 공항>에는 여행에서 만난 인연과 주인공의 꿈(장래 희망)과 현실이 적절히 섞여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법한 마음들, 그리고 후회가 담겨있지만, 안도와 만족도 함께 느껴져 더 마음에 남았다.
인아영 평론가의 해설도 너무 좋았다. 각각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흩어진 감상을 하나로 모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글 읽기의 내공이 낮은 내게 이 해설이 이 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인아영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밀리의 서재에 연재되는 장류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글을 찾아 읽고 싶은 작가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