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 스리랑카 여행
어제 늦게 도착한 데 비해 아침에 생각보다 일찍 깼다. 어제 빨아둔 양말이 다행히 잘 말랐다. 미니멀리스트가 된다는 건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속옷도, 양말도, 티셔츠나 바지도 잘 빨아서 입어야 한다는 것. 가지고 온 물건을 모두 꺼내보았다. 내가 앞으로 8일간 짊어지고 다닐 나의 모든 것.
짧게 묵은 호텔이지만 조식이 포함이라고 해서 내려갔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식당에는 직원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에 있던 직원들이 밝게 웃으며 맞아줬다. 아직 만난 사람이 많지 않지만, 스리랑카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모두 밝게 웃어준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조식은 뷔페가 아니라 스리랑카식/서양식을 선택하면 테이블로 다 가져다주는 형식이었다. 스리랑카 음식은 메운 편이라고 들어 아침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서양식을 선택했다.
우선 엄청난 양의 과일이 나왔다. 파인애플과 바나나, 파파야 같은 것들이 한 접시 가득 있었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 이미 배가 불렀다. 구워지지 않은 식빵에 맛있는 버터, 마멀레이드가 나왔고, 소시지와 써니사이드업 계란까지 나왔다.
음식이 나오는 도중 픽미로 시기리야 Sigiriya에 가는 차를 예약했다. 작은 차를 예약했는데 3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곧 차량이 배정되었고 기사님이 전화가 왔다.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를 확인했다. 한 사람이냐, 시기리야에 가는 거냐 등등. 10시까지 오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하는데 기사님이 도착했다. 차는 스즈키의 하얀색 차였다. 이름은 듀란Dulan이라고 했다. 활짝 웃으며 Hello Ma’am이라고 외쳤다. 내 배낭을 내 옆자리에 싣고 벨트까지 매주며 “두 사람이네!”라고 외쳤다. 유쾌한 기사님을 만나 즐겁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차는 빠르게 달렸다. 기사님은 원래 담불라Dambulla 출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설명해 줬다. 오늘과 내일은 스리랑카의 전통 새해(Singhala and Tamil New Year) 명절이라고 한다. 국도를 한참 달려야 했는데 기사님은 중간중간 자꾸 멈춰서 뭘 샀다. 웃으며 어머니께 가져다드릴 물건이라고 한다.
한 시간 반쯤 갔을 때 듀란은 어머니 집에 들렸다 간다고 한다. 소통이 완벽하게 됐던건 아니라 잠시 물건을 전해주고 간다는건지 아님 이제 무슨 상황인지 알수가 없다. 갑자기 골목을 차가 들어섰을 때는 잠시 긴장했다. 집 앞에는 어머니가 나와계셨다. 듀란은 어머니 발을 한 번 만지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며 나도 들어오라고 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집은 마치 빠니보틀 영상에 나왔던 에랑카형님 집(보다 조금 더 좋은) 같았다. 거실에는 티비에서 오래된 미국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밝고 넓은 거실 한쪽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듀란의 누나도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아마 명절이라 다 모여있었나 보다. 커피와 차 중에 뭘 마시고 싶냐고 묻더니 밀크커피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명절에 먹는 비스킷과 디저트를 같이 내어주셨다.
누나는 영어를 조금 더 잘했다. 콜롬보 공항에서 Janitor로 일한다고 했다. 나는 내 스리랑카 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듀란은 아주 오래된 (2013년이라고 적혀있었다) 한국어 능력 시험 책을 가지고 나와 보여줬다. 자기도 잠시 공부한 적이 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스리랑카에는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어 능력 시험을 통과해야 갈 수 있다고 한다.
뒤뜰도 구경하고 코코넛, 망고나무도 봤다. 뒷마당에서 보이는 너른 논 풍경이 멋있었다. 가족들과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듀란은 다시 어머니께 존경을 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거기서 조금 더 달리면 고속도로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서 듀란은 최선을 다해 주변 경관을 소개해 줬다.
다시 고속도로에서 나와 가로수가 멋지게 드리워진 국도를 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유턴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무슨 일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듀란은 코코넛을 샀다. 길거리에서 파는 코코넛은 많이 봤는데 동남아에서 먹는 코코넛과 약간 다르게 생겼다. 그 자리에서 바로 뚜껑을 따고(?) 작은 구멍을 만들어 빨대를 꽂아주었다. 그리고 뒷자리 문을 열어 나에게 코코넛을 쥐여줬다. 알고 보니 담배를 필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ㅋㅋㅋ 안에 코코넛 주스를 다 마시고 나면 그걸 반으로 나눠주면서 속살을 퍼먹을 수 있게 껍질로 숟가락을 만들어준다. 이런 색다른 경험이라니. 이게 여행의 맛이다.
아 그리고 군데군데 숨어있는 교통경찰도 많았다. 구글맵에서 경고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에 듀란이 과속으로 걸렸다. 그래서 1,500루피 정도를 벌금으로 냈다. 벌금을 내고 출발할 때 듀란은 구글맵에 경찰이 있다는 표시를 업데이트했다. 그 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앞질러 갔는데 뒤에 탄 분이 귤(오렌지?)을 꺼내서 까 드시더라. ㅋㅋ 신선한 풍경.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듀란은 내가 시기리야에서 다음 도시로 넘어갈 때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호텔 바로 앞이 시기리야 라이언락이다. 멋진 풍경에 먼 길을 온 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차 타고 편하게 왔다).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뜨겁고 푸른 땅에 순수한 사람들.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