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취향

[Day 2]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 스리랑카 여행

by Sun

새벽에 우다다다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 층짜리 호텔이라 위층이 없는데 이건 무슨 소리지? 새벽 5시도 안 되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장에 쥐가 있나? 아니면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정신이 들고 낮에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지붕으로, 지붕 위를 달려 다시 다른 나무로 뛰어다니던 게 생각이 났다. 자다가 쥐가 얼굴로 떨어지는 일은 없겠구나! 안심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깊이 잠들지는 못하고 일찍 일어났다. 챗지피티가 라이언락이 6시 반에 연다고 해서 좀 더 누워있다가 여섯 시 반쯤 방을 나갔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훨씬 일찍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입구(인줄 알았던 출구)는 해자를 둘러 다시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이어졌다. 이미 해는 떴고, 아직은 사람이 없는 고요한 길을 걷는 게 좋았다. 한참을 걸어 입구에 도착했는데, 또 매표소는 500m가 더 떨어있단다.검색해 봤을 땐 외국인 표는 5,000루피라더니 매표소에서는 35 USD 혹은 10,600루피라고 했다.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표를 샀다. 여느 유적지처럼 호객을 하는 가이드분들이 계셨다. “가이드가 없이 들어가면 뭘 봐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만 할걸?”이라고 외쳤다. 아닌 게 아니라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더 제대로 보려면 가이드가 있어도 좋을 것 같지만 이미 표에 돈을 많이 써서 그냥 챗지피티 가이드를 쓰기로 했다. 푯값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걸 보면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알려줄지도 몰랐지만, 그 나름 추억이 될 테다.

시기리야는 5세기 후반 카샤파(Kashyapa) 왕에 의해 수도로 개발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 보복을 피해 도망을 와 방어하기 좋은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카샤파왕이 몰락한 이후 이곳은 한동안 불교 수도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문으로 입장하면 정원 구역이 나온다. 5세기에 만들어진 수로와 연못이 보이는 이 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분수처럼 물을 뿜어내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나는 보지 못했다. 놀라운 건 중력과 자연 수압만 이용해 이 시스템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작동한다는 거다. 고대인들은 정말 대단해.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정원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었지만,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벌써 해가 뜨거웠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라이언락에 올라가다 더위를 먹을지도 몰랐다. 열심히 챗지피티의 설명을 들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원을 가로질러 200미터에 달하는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계단을 오르며 그 시대 이곳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을 상상했다. 과연 왕이 여기 궁전을 짓고 나서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번거로운 일들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열심히 올라가 사자의 발(Lion’s paws)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잠시 쉴 수 있는 광장 같은 곳 앉아 마지막으로 올라가기 전 구간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마치 사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듯 앞발 두 개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원래는 사자 얼굴상도 있었는데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뒤쪽에는 사자가 지키고 있었을 봉우리(?)가 있다. 철제 계단이 위태롭게 달려 있었는데, 그 아래로 계단인 듯 아닌 듯 아주 오래된 흔적이 보였다. 과거에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목숨을 내놓고 올라가야 하는 곳을 그래도 편하게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에 갔을 땐 마추픽추가 (잠시) 부럽지 않았다. 360도 아무것도 가리는 것 없이 쫙 깔린 숲이 펼쳐졌다. 방금 올라온 쪽에서는 피두랑갈라 산이, 반대쪽으로는 내가 묵는 숙소와 어제 노을을 보러 올라갔던 마파갈라 언덕이 보였다. 벽돌 타만 남았지만 경이로웠다. 그늘이 거의 없어 햇살이 따가웠다.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나무가 만든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은 따갑지만, 그에 비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새소리를 들었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숲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스리랑카와 달리 여기선 훨씬 녹색을 많이 보게 된다. 위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조식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에 반대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던 사람이 물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내 앞에 내려가고 있던 스리랑카 소녀와 나는 동시에 대답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러자 그 사람은 “하아, 너무 다행이네요. 포기하기 직전이었어요.” 하고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올라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해줬다. 그 소녀와 대화하며 같이 내려가게 되었다. 영어를 꽤 잘하는 그의 이름은 아트나고 대학생이다. 아트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양손으로 난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내려갔다. 마침, 스리랑카 신년 휴일이라 온 일가친척이 다 함께 스리랑카를 도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북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내려왔고, 남쪽으로 가는 중이라고.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갈 도시들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여행에 대해서 수다도 떨고, 내려오는 길에 봐야 하는 거울의 벽(Mirror Wall)과 동굴 속 프레스코 벽화도 함께 구경했다.

거울의 벽은 과거에는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광을 낸 석회벽이었다고 하는데, 여기 과거 방문객들이 쓴 시나 낙서 같은 것들이 남아있었다. 물론 나는 알아볼 수 없지만 8세기 기록도 남아있어 고대 시나 문학을 연구하는 데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프레스코 벽화는 동굴 벽에 21명의 여자를 그려놓은 것인데, 왕의 여자라는 해석과 종교적 여신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했다. 사진은 찍을 수 없다! 거의 다 내려올 무렵 아트나의 이모님과 마주쳐 이모님 셀카 요구에 응해드렸다 ㅋㅋㅋ 내가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고 했다. 내려오자 신기한 퍼즐상자 같은 것을 파는 분들이 계셨다. 쓱쓱 어떤 부분을 누르고 밀면 새로운 서랍이 튀어나오고 뚜껑이 열리는 신기한 광경을 잠시 구경을 했지만 무거워서 사지 않았다. 아, 물론 아트나가 비싸다는 신호를 주기도 했다. 출구 쪽에 도착해서 아트나와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헤어졌다. 출구로 나가기 직전 엽서를 파는 곳이 있었다. 엽서가 특별히 예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기리야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사고 싶었다. 주로 시기리야 락 사진이 담긴 엽서였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걸로 세 개를 골랐다. 새해 첫 손님이 나라고 해서 깎지 않았다. 깎을 맘도 없었다. 근데 한 개 200루피를 부르던 엽서를 세 개 500루피에 주셨다. 아, 이번엔 누구에게 엽서를 보낼까? 잠시 즐거운 생각도 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딱 9시 반이었다. 조식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혹시 못 먹나 걱정했는데, 호텔 스태프분들이 아직 먹을 수 있다고 안내해 줬다. 수영장 근처에 스리랑카 현지식과 서양식이 뷔페식으로 세팅되어 있었고, 새해 전통 음식들도 함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식사하고 방에서 조금 쉬었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잠시 수영을 하러 나갔다.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물어 들어가서 잠시 수영을 하며 몸을 식히고 나왔다. 여전히 원숭이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고 있다. 다시 의자에 누워 책을 펼쳤다. 아무 계획도 없이 여유롭게 수영하고, 책을 읽고, 하늘을 보는 게 좋다.

여행의 종류는 다양하고, 또 그 시간을 즐기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어떤 건지, 그리고 지금 필요한 여행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지 않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하는 것도 없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새로운 곳에 와서 아주 느리게 시간을 보내고 처음인 것들을 경험하기, 그게 지금 필요한 여행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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