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 스리랑카 여행
어제 시기리야에 도착해 오늘, 내일 이틀을 꼬박 여기서 보내고 그다음 날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매일 도시를 옮겨 다니고 싶지 않아서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캔디(Kandy)도 건너뛰고 여기서 사흘을 묵기로 했다. 시기리야는 오전에 갔던 시기리야 라이언락, 피두랑갈라 정도를 제외하면 달리 유명한 관광지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캔디 같은 큰 도시를 거점으로 삼고 하루 정도 시기리야에 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작은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담불라(Dambulla)와 가깝고 주변에 갈 만한 사파리도 있어서 여유롭게 있으면서 할 일을 찾으면 또 불편할 건 없다는 이야기다. 수영장에 한참 누워서 쉬다가 오후에 할만한 일을 찾아보았다. 쿠킹 클래스를 들어볼까? 아니면 담불라 동굴사원을 가볼까?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사파리였다. 스리랑카에는 큼지막한 국립공원이 여럿 있는데, 표범으로 유명한 윌파투(Wilpattu) 국립공원이나 제일 많이 들어본 얄라(Yala) 국립공원은 일정상 가기가 어려웠다. 시기리야 근처에도 국립공원이 있다고 해서 예약했다. 당일 예약이고 한 사람이라 예약이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바로 확인을 받았다.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치즈꼬뚜를 먹고 1시에 가이드 카말을 호텔 앞에서 만났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카말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했다. 보통 외국인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데, 조금 생소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카말도 10년 전 한국에 일을 하러 가려고 한국어 시험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시험에서 떨어져 갈 수 없었다고. 스리랑카에서 만난 사람들 여럿이 이렇게 인사했던 걸로 보아, 아마 한국어 시험에 ”안녕하십니까“라고 나와 있었던 게 아닐까?
카말의 사파리 지프는 조금 낡았지만 딱 사파리에서 타기 좋은 모양이었다. 해가 머리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에 갈 수 있는 공원은 민네리야(Minneriya) 국립공원과 후룰루 에코 공원(Hurulu Eco Park)이 있는데, 우기라서 한쪽은 갈 수 없고, 코끼리들이 후룰루 쪽으로 넘어가 있다고 말했다. 대략 40분 정도를 달려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여러 사파리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뒷자리에서 일어나서 볼 수 있도록 지붕을 걷어낸 사파리 차량에서는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렸지만 팔과 다리에 따갑게 쏟아지는 햇빛까지 피하지 못했다. 그냥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공원에서 코끼리들을 쉽게 찾는 방법은 따로 없었다. 가이드의 능력과, 또 네트워크에 달려 있었다. 카말의 오래된 노키아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현지어로 소통하고는 다시 차를 몰아 장소를 옮겼다. 길이 닦여 있는 게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또 가끔은 풀숲을 헤치며 달렸다. 처음 마주친 코끼리는 혼자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이미 차가 서너 대 정도 있었다. 엔진을 끄고 조용한 상태로 만든 차들이 코끼리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이게 코끼리에게 너무 스트레스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는데, 코끼리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면 큰 소리를 내거나 공격하기도 한다고 한다.
카말은 코끼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이 코끼리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인데, 수컷들은 어느 정도 자라면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지낸다고 했다. 코끼리는 코로 풀을 말아서 뜯어낸 후, 그네를 태우듯 앞뒤로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풀이 둥글게 말려 조금 더 먹기 좋은 크기가 됐다. 그렇게 모양을 만든 풀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몇 입을 먹고서는 옆에 있는 물웅덩이로 갔다. 코로 물을 빨아들여 물을 어깨너머로, 또 머리 위로 뿌렸다. 밥을 먹으면서 목욕도 한다니, 이 친구… 하긴 날이 너무 더워서 물을 뿌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만 같았다.
사파리에서 코끼리를 볼 수 있는 것도 운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날 우리는 운이 좋았다. 이 소년 코끼리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차 바로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물웅덩이에서 흙 목욕을 하는 모습이나, 호수 안에 들어가서 제대로 반신욕을 하는 모습, 그리고 아직은 자기 코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기 코끼리와 함께 있는 가족도 보았다. 어느 언덕 위에 전망대로 만들어둔 오두막 같은 곳이 있었다. 360도로 공원이 보였는데 여기저기 퍼져있는 코끼리가 보였다.
코끼리는 스리랑카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스리랑카에만 6천여 마리가 있다고 하는데,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다. 야생 코끼리가 논이나 밭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길에서 코끼리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종종 보인다.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또 코끼리 고아원이 있고, 코끼리 목욕을 시키는 체험 같은 것도 유튜브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렇게 ‘구경’을 하러 왔지만, 코끼리가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들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공원을 돌아다니며 코끼리를 봤다. 이제 돌아가자며 공원을 빠져나오려던 길에 수풀 속에 있는 공작새를 보았다. 와, 공작새도 야생에서 정말 이런 모습이구나.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공작새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어 고속도로에 ”위험 공작새 출몰“같은 표지판도 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아까와 다른 길이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아주 너른 논이 나왔고, 또 그 풍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나무 위에 지어진 집은 코끼리가 논에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는 장소라고 했다. 맑던 하늘에 점점 잿빛 구름이 드리우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카말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 지붕과 사이드 덮개를 씌우기 시작했다. 쏴-내리는 비가 더위를 식혀주었다. 공원 안에서 비가 내렸다면 길에 바퀴가 빠지거나, 미끄러지거나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너무 운이 좋았다. 비를 뚫고 숙소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카말에게 투어 값을 내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카말은 이 투어가 마음에 들었다면 자기 이름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아마도 내가 연락했던 여행사의 트립 어드바이저 페이지에 후기를 남겨달라고 한 뜻일텐데, 자꾸 카말의 흑백 노키아 휴대폰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정말 만족했기 때문에 좋은 후기를 남겼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이 명절 당일이라 그런지 어제 갔던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다. 다른 식당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그래서 호텔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 중 문을 연 곳으로 갔다. 여기도 2층에 있는 곳인데, 비가 그친 후라 그런지 해가 예쁘게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기리야 피자 맛집이라는 이곳에서 스리랑카의 기운이 살짝 들어간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는 꽤 맛있었다.
남은 피자를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일시적) 미니멀리스트의 숙명, 빨래를 열심히 하고 10시도 안 돼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