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S2 #7
소설책을 덮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에 읽은 작가 노트였다.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하게 믿어 왔다. p.304
양귀자 작가님의 희망사항에 따라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독후감이나 서평을 읽지 않고 소설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패, 함께 할 수 없지만 또 존재하는 모순.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이 모순이다. 참 진(眞)을 두 번이나 쓴 주인공의 이름 ‘진진‘. 그의 성은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릴 수 있는 ‘안‘.
진진은 사춘기 시절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랬지만, 특히 인생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데는 그녀의 어머니 영향이 컸다.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 어머니의 삶은 이모의 삶과 너무도 달랐다. 세상의 불행은 모두 짊어진 그의 어머니와 그 대신 근심걱정 없이 행복할 것만 같은 이모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왜 이다지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만 삶에 대한 다른 호기심까지도 다 거두어버렸다. p.20
안진진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결심을 한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겠다고,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라고, 삶에 부피를 더하겠다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p.15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p.17
그렇게 스물다섯의 안진진은 결혼을 생각하게 되고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한다. 요즘이라면 ESTJ로 판별 났을 나영규와 그와는 정반대인 INFP 김장우 두 사람 사이에서 모든 순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아주 계획적이고 불행의 그림자는 들어올 자리도 남겨두지 않은 것 같은 남자 나영규에게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가족사나 어두운 면들을 보여줄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김장우에게는 모든 것을 감추게 된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p.268
소설 속 안진진, 그의 어머니와 이모가 하는 선택들은 모두 의외의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체득한 어머니의 선택이, 단조로운 삶이 가져다주는 단조로운 행복으로는 버티지 못한 이모의 선택이, 그리고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안진진의 선택이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296
결국 안진진이 자신의 인생관을 뒤집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마도 인생은 그런 걸 거다. 절대적인 행복도 불행도 없다. 누군가의 불행은 어떤 이에게는 행복이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종류의 행복과 불행을 선택해 나갈 것인가.
https://youtu.be/5CMBNIAki88?si=steD4nQtE83Cl8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