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이>, 바로 그 길

산티아고 순례길

by Sun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다. 언덕을 오르고, 개울을 건너고, 마을을 거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걷는다고 했다. 나는 그저 내 한계만이 보일 뿐이다. 이렇게 걸어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내 인생의 무게는 고작 6kg이었고, 순례길을 걷는 여정은 5일 남짓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몇 달 전, 부모님께서 가까운 신부님의 추천으로 더 웨이(The Way)라는 영화를 보셨다고 한다. 영화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사망한 아들의 유해를 안고 아들 대신 그 여정을 마무리하는 아버지가 순례길을 걸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걷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마틴 쉰 주연의 영화 <더 웨이> 사진출처: imdb

주인공처럼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 했던 우리 부모님도 주인공 톰처럼 아들을 마음속에 품고 그 길을 걷고 싶었던 것일까. 아빠는 전체 800km가 아닌 짧은 여정으로라도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직장생활 만 1년, 연휴에 휴가를 붙여 10일 정도 시간을 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그 길을 걷기로 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마드리드로, 나는 홍콩에서 두바이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 만나기로 했다. 이동시간을 고려해 우리는 사리아(Sarria)라는 도시에서 시작해 110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과 전화로, 또 이메일로 계획을 주고받았다. 여정을 확정 지은 후 나는 영화를 보았다.

톰은 아주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을 가지고 생장 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역에 내린다. 다른 여행자들은 큰 배낭과 지팡이나 등산스틱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구두를 신고 재킷을 입었다.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 없는 그는 아들 다니엘의 시신을 확인하고, 유품을 확인하던 중 과거 아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들 대신, 아니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화장한 유해를 아들의 가방과 함께 짊어지고서.


(전체 여정에 비하면) 짧은 110km의 거리를 걷는 것이지만 준비해야 할 것은 많았다. 이동하기 편리하게 35L짜리 배낭에 옷가지 및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담아야 했다. 배낭을 메고 5일 이상 걷기 위해서는 가방의 무게가 몸무게의 1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상 무리라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이기로 했다.


마드리드 공항에 조금 먼저 도착해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도 배낭에 짐을 꾹꾹 눌러 담아 오셨다. 마드리드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차르마틴(Charmatin)역에서 사리아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은 사이 어떤 소년이 가방 근처로 다가왔다. 영화에서 톰의 가방을 훔쳐 달아나던 집시 소년의 얼굴이 겹쳐 보여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사리아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다음 날부터 걷기 시작했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고, 조개껍질을 가방에 달고 길을 나선다. 바닥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모양의 표식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외친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안전하고 즐거운 순례길 여정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나는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들, 매 끼 빠지지 않던 고추튀김


멋진 풍경을 보며 길을 걸었다. 오전 6시면 길을 나섰고, 길을 걷는 도중 카페나 식당을 보면 아침과 점심을 해결했다. 아빠는 영화 속의 톰처럼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갔고, 엄마와 나는 천천히 뒤따랐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씻은 다음 빨래를 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식당을 찾아 맥주 한 잔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하루 마무리는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톰은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아들 대니얼을 본다. 순례자 사이에서 걷고 있는 모습, 함께 밥을 먹거나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는 모습, 웃는 모습, 실망한 모습... 자신이 아들을 대신해서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니얼이 있다.


우리 가족도 가는 곳마다 내 동생을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방 하나에 내 삶을 담을 수 있었다


짐을 메고 걷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내 어깨에는 6kg,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각각 7.5, 9.5kg 씩을 매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포르토마린(Portomarin)에서 쓸데없는 짐을 다 버렸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열흘 치 인생의 무게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29km를 걸어야 했던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괜히 부모님께 짜증을 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가벼웠던 시간이었다. 매일 그저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어떤 길로 가야 할지, 혹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인생에도 이런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가장의 무게 - 지친 엄마의 가방까지 들어주는 아빠


마침내 110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그 오래된 도시에 걸어 들어가는 길이 꽤 감동스러웠다. 대성당 외벽은 수리 중이었지만 그래도 그 웅장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도시를 둘러보고, 미사에 참여했다. 영화 속 아일랜드 작가인 잭이 순례길을 걷는 내내 성당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다가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생각했다. 그다지 신실하지 않은 카톨릭인 나도 조금은 그랬으니까.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향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가 머리 위로 흔들리는 모습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테다. 우리는 성당에 동생을 위한 초를 밝혀두고 나왔다.


누군가와 긴 여정을 함께 한 신발이 순례길 표식과 남았다


순례길을 걷고 나서 나 자신을 찾았다거나 해답을 얻었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순례길 전체를 걸은 게 아니라 일부만 걸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의 책임과 부담을 가지고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고.


You don't choose a life, dad. You liv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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