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와 버마 시절

파고다의 도시 바간에서

by Sun

아침 햇살에 긴 그림자가 생긴 파고다들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수기로 작성된 비행기 티켓과 킨들을 손에 꼭 쥐고 창 밖을 내다보며 착륙을 기다렸다. 이 조그만 비행기는 마치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처럼 "이번 역은 바간입니다. 내리실 문은 좌측입니다. 만달레이로 가실 분은 계속 자리에 앉아 기다려주세요" 하고 말했다. 짧은 여정을 이동에 낭비하고 싶지 않아 기차나 버스 대신 비행기를 선택했다. 비행기는 양곤에서 바간까지 한 시간 정도를 날아와 나를 비롯한 일부 승객을 바간에 내려주고 곧바로 다시 이륙했다.


시골 기차역 같은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아직 체크인 하기는 이른 시간이지만, 짐을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꽉 찬 1박 2일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e-바이크(예전 중국 유학시절에는 자토바이라 불렀다)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할까, 택시를 하루 빌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예쁜 말이 끄는 꽃마차를 탄 아저씨가 다가와 물어본다.

미안해 무무, 그땐 내 생각이 짧았어

"여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난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 내 마차 타고 다니면 내가 다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래서 25달러를 내고 타기로 했다. 말 이름은 무무라고 했다. 비가 오길 바라며 그렇게 지었다는 건지, 아니면 태어날 때 비가 와서 그랬다는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이름은 무무, 영어로는 rain이야, 했다.


바간은 파고다의 도시로 유명하다. 말마따나 파고다와 사원이 정말 많았다. 무무가 데려가는 사원과 파고다마다 다른 이름이 있었는데 모두 기억하지는 못했다. 마부 아저씨에게 파고다는 어떤 의미냐고 묻자 아저씨는 "옛날엔 모든 집에서 파고다를 지었어-" 하고 말했다. 조지 오웰은 <버마시절Burmese Days>에서 그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이 버마에 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는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라 다시 인도 제국 경찰이 되어 버마에서 5년간 근무를 했다. 조지 오웰은 버마에 체류하면서 영국 제국주의에 염증을 느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버마 시절>을 썼다. 미얀마 어디서든 이 책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책을 파는 좌판에서도 <버마 시절>의 각 판본을 늘어놓고 팔았다. 우리로 따지자면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일본 제국주의를 비꼬는 소설을 쓰고, 광복 이후에 그 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책이 되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꼭 읽게 되는 책 같은 것이랄까.


버마에는 살아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쥐, 개구리 또는 다른 하등 동물로 환생한다는 불교적 믿음이 있다. 우 포 킨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이런 위험에 대비하여 계획을 미리 세워 놓았다. 즉, 만년에 선행을 많이 하여 그때까지 저지른 나쁜 짓을 벌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공덕을 쌓겠다는 계산이었다. 그 선행은 아마도 탑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 돌 세공 장식, 도금된 둥근 상단부 그리고 바람에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조그만 종으로 이루어진 탑을 세울 계획이었다.


조지 오웰 <버마 시절> 中


<버마 시절>은 192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얀마의 역사나 문화보다는 그 시절 제국주의의 부조리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 그래도 스치듯 지나가는 당시 버마인들의 생활양식이 보이기도 한다. 마부 아저씨가 씹던 붉은 입담배 꽁야나 어느 가게에서 내 얼굴에 발라주고 강매했던 미얀마의 전통 선크림이라는 타나카(Thanaka) 같은 것들 말이다.




무무가 이끄는 마차(라고 쓰고 수레라고 읽는다)를 타고 냥유에서 올드바간까지 가는 길에 누군가의 고해성사 같은 사원들과 파고다들을 들렀다. 내가 여행을 가기 두 달 전 있었던 지진으로 많은 사원과 파고다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탑 꼭대기가 무너져내려 보수공사 중인 곳도 많았다. 누군가가 선행을 쌓기 위해, 그리고 내세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쌓은 파고다들이 무너지면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몇 백 년이 된 유산도 자연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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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을 볼 곳은 Pya Tha Da라는 곳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렸다. 말 그대로 숨 막히는 풍경이었다. 모래 때문에 일어난 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그 무언가가 사원과 파고다, 나무들을 층층이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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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처럼 사진에 담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멀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말한테는 보일까 궁금했지만 무무는 길을 잘 찾았다. 숙소로 돌아와 아저씨한테 넉넉한 팁을 드렸다. 그리고 말에게 속삭였다. 이 무더운 날씨에 나까지 끌고 다니느라 고생했어. 어두운 밤에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줘서 고마워. 미안해, 무무. 고마워, 무무.




다음날 아침, 꼬끼오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5시에 일어나 로비로 내려왔다. 기구를 타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용기를 내어 e-바이크를 빌렸다. 누군가 뒤에 타는 것도 무서워하던 내가 직접 e-바이크를 운전하다니 엄청난 발전이다.


해뜨기 전 어두운 거리를 달려 Shwe San Daw pagoda로 갔다.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 그쪽을 향하는 듯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열심히 달렸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려는데 엽서를 파는 꼬마 아이가 다가왔다. 이름이 뭐냐, 엽서 하나만 사라.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일출을 보고 내려와서 사겠다고 하고 급하게 올라갔다. 계단이 무척 가팔랐는데 제일 높든 층부터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세 번째로 높은 층에 갔을 때, 더 올라가면 내려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층의 측면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해인 데도 (8분 20초 떨어져 있으니 그만큼 전에 빛나던 태양을 보는 거겠지만) 질 때와 뜰 때의 느낌이 다르다. 하늘의 색깔 때문인지 땅의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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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과 사원의 실루엣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늘이 다 밝아왔다고 생각이 들어 내려와 e-바이크에 앉았다. 출발하려 하는데 뒤에 들어온 다른 바이크 때문에 뺄 수가 없었다. 그때 엽서 파는 아이가 친구 둘을 데리고 다가왔다. 엽서를 강매 당하(여주)고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들 덕분에 무사히 출발했는데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내민 태양이 보였다. 성미 급한 내가 하늘이 다 밝아졌다고 생각하고 그냥 내려온 거다. 사실 진짜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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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풍경을 뒤로하고 갈 수가 없어 수풀로 들어갔다 e-바이크를 두 번이나 넘어뜨렸다. 사이드 미러가 흔들거려 수리비도 5000짯 물어줘야 했다. 그래도 느릿하게 움직이는 기구와 떠오르는 태양, 그리고 파고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가장 멋진 노을과 해돋이를 뒤로 하고 양곤으로 떠났다. 이번 미얀마 여행의 목적, 내 친구 K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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