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 식은땀이 흘렀다. 뭐지, 이 상쾌한 기분은? 알람이 안 울린 것 같은데.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전 7시 35분. 그리고 현재 시각 5시 25분. 세수만 하고 싸놓은 짐을 챙겨서 뛰쳐나왔다. 새벽이라 이 동네에는 택시도 별로 없고, 우버도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다. 구세주처럼 등장한 택시 기사님은 공항까지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으나 7시 반 비행기라는 이야기를 듣고선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미터기를 끄고 흥정을 하셨다. 35분 안에 도착하게끔 해줄 테니 일반 가격의 1.5배로 가자고. 새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보다는 싸겠지! 콜!
무사히 도착해 아저씨의 응원을 받으며 공항에 들어갔다.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 좋지 않다. 집에 불은 다 끄고 나왔는지 걱정하며 그렇게 두바이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걱정은 뒤로 하고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비행기에서 한 숨 푹 자고 두바이에 도착했다. 두바이 공항을 좋아한다. 쉴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하고, 내 샤워 도구를 챙겨가면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도 있다. 샤워를 하고, 쉑쉑에서 쉐이크를 사 먹은 후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좌석은 약간 열악했다. 자리도 좁고, 앞사람이 계속 자느라 식사 때도 의자를 세우지 않아 고생했다. 다행히 이전 비행에서 푹 쉬기도 했고, 두바이에서는 낮에 출발하는 터라 영화를 보며 버티던 중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학생 플로리안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비즈니스 스쿨 학생이고 시리아 난민을 위한 단체에서 일을 하기 위해 쿠알라룸프르와 다른 도시에서 3개월 동안 일하고 여행을 했다고 했다. 스페인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 지역에 살기 때문에 파리로 가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바르셀로나를 통해 집에 가는 것이었다. 스페인에 자주 온다던 그 친구는 가보면 좋을 곳, 조심해야 할 것들 (본인이 소매치기당할 뻔 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알려주며 혹시 스페인 여행 중 궁금한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홍콩에 놀러 올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내 이메일 주소도 줬다.
그렇게 긴 비행을 하던 중 플로리안이 이야기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가 착륙하면 사람들이 다 같이 박수를 쳤어. 무사히 잘 도착했단 뜻으로 말이야. 살았다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졌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 :("
입이 방정이라고. 유난히 터뷸런스도 많았던 여정에 비행기가 바르셀로나에 착륙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플로리안도 신나 했다. ㅋㅋ
바르셀로나에 밤늦게 도착해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에어비엔비로 향했다. 집주인 아나Ana가 늦은 시간에도 반겨주었다. 그리고 집은 아늑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나 홀로 스페인 여행을 시작했다.
첫 공식 일정은 가우디 투어였다.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어떤 책을 볼까 찾다가 발견한 <스페인은 가우디다>를 보았다. 스페인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 들어는 봤지만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건축가가 스페인 그 자체라니. 여행을 가기 전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곤 작가의 <스페인은 가우디다>는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안토니 가우디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그의 건축을 깊이 들여다본다. 작가는 가우디의 건축의 뿌리를 자연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기독교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중 자연주의 사상은 스페인이 로마, 이슬람의 영향권에 있던 당시의 문화유산과 자연의 교감에서 얻은 것이고, 민족주의는 카탈루냐의 민족주의, 그리고 지역적 기독교 사상은 몬세라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로마의 건축은 구축물 자체의 구조체를 강조하지만 이슬람 건축은 빛과 조각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기하학의 비례와 장식 효과에 주목했다. 스페인 건축이 여타 유럽의 건축 문화와 다른 점은 빛과 돌이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명암의 대비 효과를 다루는 기술에 있다. 가장 스페인 적이고, 가장 카탈루냐 적이고, 가장 가우디적인 건축 기술은 바쉬 캄을 점령했던 이슬람의 건축 미학에서 발전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by 김희곤
책으로 벼락치기를 한다고 해도 가우디에 대해, 그의 건축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이 리얼 트립을 통해 한국인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영국에서 온 5인 가족,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 중인 학생, 리투아니아에서 유학 중인 학생 두 명, 그리고 홍콩에서 온 나까지 모두 한국에서 살지 않는 한국인들이었다. 모두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말도 잘 통했다. 현지에 살고 계신 한국인 가이드 분을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는 가우디의 처녀작인 까사 비센스에서 시작했다. 건축주인 비센스는 타일공장을 운영했는데, 그래서 가우디는 이 건물에 최신 유행 타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가우디의 화려하고 독특한 개성이 잘 드러나면서 건축주의 개성도 함께 홍보하는 멋진 건물이었다. 까사 비센스는 대칭성과 수직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이후 가우디 건축에서 나타나는 곡선의 미와 비교해볼 수 있다.
그다음은 구엘 공원이었다. 공원 안에서 가이드 분이 설명해주신 디테일이 정말 많았다.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또 알록달록하게 붙어있는 타일과 상징적인 도마뱀 분수까지. 게다가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구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흥미로웠다.
까사 바트요는 내가 본 건물 중 가장 독특한 것이었다. 마치 팀 버튼 감독의 작품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건물을 보며, 팀 버튼 감독이 가우디에게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가우디가 활동하던 시절, 유명한 건축가는 모두 이 그라시아 거리에 자신의 건축물을 하나씩 올렸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우디가 까사 바트요를 만들며 주변 집들과의 조화도 생각해 수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 유행을 따르지 않고 신화의 스토리를 담아 만든 이 건물 안팎으로 뼈와 해골 모양이 가득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까사 밀라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마치 하나의 돌산을 깎아 만든 듯하다. 하얀 건물의 외벽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가우디는 카탈루냐의 성지인 몬세라트 암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몬세라트에 가보고 나서 그 뜻을 정말 느낄 수 있었다. 까사 밀라 옥상에 있는 굴뚝 모양에서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까사 밀라 안에는 들어가 볼 수가 없었는데, 꼭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가우디 건축은 몬세라트의 작은 환영이라 할 수 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몬세라트의 육감적인 암석 기둥은 성가족 대성당의 첨탑으로 부활했고, 천사들의 얼굴을 두르고 있는 몬세라트의 암벽은 카사 밀라의 외벽과 지붕으로 변주되었다. 구엘 성지 지하 제실의 원시적인 화강석 기둥은 거친 몬세라트의 암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by 김희곤
가우디 투어를 한 다음 날 몬세라트에 다녀왔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경험도 즐거웠지만, 올라가서 몬세라트의 암벽을 봤을 때 정말 가우디 건축물을 바로 연상할 수 있었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우디 건축이 몬세라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투어의 마지막은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멀리서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압도된다. 가우디가 31살에 이미 대성당 공사 감독직을 물려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성당의 파사드에는 옥수수처럼 생긴 탑이 보인다. 이 옥수수처럼 생긴 첨탑은 종소리가 바르셀로나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는 스피커 역할을 한다고 한다. 파사드에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성경의 내용을 조각으로 새겨두었다. 그리고 가우디 답게, 그리고 일반 성당 같지 않게도 지역의 과일이나 식물 같은 특산물들이 제단에 올려진 듯 첨탑 옆에 새겨져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해 들었다. 귓가에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해 하얀 벽에 비친 형형색색의 패턴이 비쳤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내가 가 본 그 어떤 성당보다도 환하고 밝은 곳이었다. 그리고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둥들은 잘 자란 나무처럼 하늘로 뻗어 가지를 치고 있었다. 그렇게 뻗은 가지들은 지붕을 지탱하고, 그 주위에 나뭇잎이 보이고 꽃이 보였다. 그렇게 숲 속을 걷다 보면 구역마다 다른 색이 보인다. 어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빛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한참을 서서 오디오 가이드에서 나오는 설명을 들었다. 가우디의 만년을 바친 이곳이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고 100년이 넘게 누군가에 의해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멋진 도시였다. 4일밖에 머물지 못해 아쉬웠다.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보고 듣고 말할 것도 많은 곳이라 한 편의 글에 모두 담을 수가 없어 아쉬울 정도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것은 여전히 가우디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가우디 사망 100주기가 되는 2026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공될 때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이 그 시기가 뒤로 더 밀릴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언제가 되든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는 그때,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가우디의 인생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한 가우디의 삶의 핵심은 사랑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쇠락한 몸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현실의 밑바닥을 좌절하며 걸어간 가우디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바르셀로나 민중을 사랑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외부에서 남들이 던져주는 환호와 명성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임을 가우디의 삶이 보여주었다. 가우디의 투박한 삶은 현재를 밀어내며 불안한 미래를 완성하기 바쁜 우리의 삶을 미완성의 아름다움으로 인도하고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by 김희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