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요리사!

나를 위한 나만의 요리사

by Sun


아빠의 삶에서 먹는다는 일은 참 중요하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잘 차려 먹는 것과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걸 늘 강조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엄마가 아빠보다 더 바빴기 때문에 아빠가 식사 준비를 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관심이었을까.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아빠는 삼촌과 함께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때는 어려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양식과 제과제빵과 같은 수업을 들으셨던 것 같다. 주말이면 아빠는 학원에서 배운 새로운 음식을 해주셨다. 함박 스테이크부터 피스타치오를 입은 치킨 드럼스틱에 브라우니까지. 그 전에는 먹어본 적이 없거나 혹은 집에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음식들이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즈음에는 아빠가 밥을 해주는 주말 시간을 꽤나 기다렸다.


엄마도 뭐든 쉽게 뚝딱 만들어냈다. 가끔 티비 요리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레시피를 보면 나와 동생과 함께 만들어보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요리가 하나 있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볶음밥을 밀전병에 싸서 먹는 러시아 음식 이랬는데. 그걸 보고 엄마가 후다닥 만들어줘서 동생과 함께 맛있게 먹고, 그 뒤로도 종종 만들어 먹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나 살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느라 전자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기술을 습득한 것 이외에는 요리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당시 아빠가 꽤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요리학교를 가라! 바로 니 능력이 되는 걸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때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요리사가 된다면? 요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처럼, 또 엄마처럼. 그 바람과는 다르게 대학을 가고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요리와는 많이 멀어졌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중국과 홍콩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자 자취를 하면서 나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게 너무 귀찮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아주 간단한걸 휘리릭 해 먹거나, 사 먹는 게 비용절감이나 편의성 면에서 모두 나았다.


이런 생활패턴에 변화가 생겼으니, 바로 2020년 1월 시작된 팬데믹. 중국 우한이 봉쇄되자 바로 홍콩에서도 락다운이 시작됐다. 회사는 그 주부터 바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마스크나 일부 생필품 사재기도 있었다. 홍콩에서도 확진자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밖에 돌아다니기가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루 세끼를 다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유튜브에서 종종 보던 채널들이 유용해지는 순간이었다. 집밥 백선생, 국가비 채널 등을 시작으로 쉬운 요리 팁을 공유해주는 영상을 찾아보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가 길어질수록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점심, 그리고 느긋하게 만들어 먹는 저녁 메뉴까지 고민하다 보니 요리가 느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간장계란밥 같은 요리라 할 수 없는 간편한 음식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밖에서 만나 밥을 먹기가 어려워 친구나 동료들을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해 먹었다.



15분 만에 만드는 연어 스테이크는 재택근무 점심메뉴로 딱이다. 단짠단짠 소스에 브뤼셀 스프라우트, 방울토마토, 감자와 연어를 함께 조리해 먹으면 정말 행복하다. 소고기를 레드와인에 재워서 만드는 비프 브루기뇽은 만드는데 반나절이 들지만 그만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 와인 한 잔에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인 비프 브루기뇽은 완벽한 저녁 메뉴다. 주말에는 크러스트 없는 키쉬Crustless Quiche를 만들어 커피와 먹으면 브런치 카페도 그립지 않다.


설에는 한국에 못 가는 친구들과 함께 떡국(feat. 만두)도 끓여 먹었다. 사골곰탕 육수에 떡과 만두를 넣은 초간편 떡국이었지만 정성스레 지단을 부치고 소고기 고명까지 준비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도 못 보고, 한국에 다녀온지도 오래됐지만 떡국으로 명절 느낌을 내고 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으로 재래시장에서 해산물을 사보기도 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내게 아빠가 해줬던 바지락 술찜. 조개는 어떻게 해감하고 손질해야 하는지, 어떤 술로 찌는 게 맛있는지(ㅋㅋㅋ) 아빠한테 전수받은 레시피로 만든 바지락 술찜을 먹은 동료들도 엄지 척!


음식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던가. 파전을 먹으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재첩국을 먹으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양꼬치를 먹으면 대학 동기들이 생각이 나고 마라탕을 먹으면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언니, 동생들이 생각난다. 내가 만들어가는 음식에는 어떤 추억이 깃들까? 맛이 좋으면 좋은 대로, 부족하면 또 부족한 대로 추억이 되겠지.


오늘 나는 나를 위한 나만의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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