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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24. 2022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책 읽기 프로젝트 50 #11


교과서에서 본 <황소> 그림. 그게 내가 아는 이중섭의 전부였다. 그의 그림 속 강인한 소만큼이나 강렬한 그의 흑백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게 전부였다. 그가 어느 시대를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책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그의 생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었다. 고작 40년 남짓, 그 시간 동안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니,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작품 활동에만 일생을 바친 게 아닐까,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괴팍하고 예술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돌보지 않는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책을 펼치고 나온 출판사의 짧은 소개 글에서 예상치 못한 내용이 나왔다. 이중섭의 애칭은 ‘아고리'이고, 그의 부인인 이남덕(마사코) 여사의 애칭은 ‘발가락 군’이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 근거 없이 만들어졌던 이중섭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이 책은 1953년에서 1955년까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그의 그림들이 담겨 있다. 예술가로서 이중섭의 삶,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중섭의 모습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일본인 아내에게 쓴 편지인 만큼 모두 일본어로 쓰였는데, 고 박재삼 시인이 번역했다.


첫 장의 제목은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이다. 아이가 둘이 있는 부부가 이렇게나 귀엽고 간지러운 말로 편지를 시작한다니, 7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놀랍지 않은가? 편지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향한 사랑이 늘 담겨있다. 편지는 항상 남덕을 만나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그리고 떨어져 있어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그리운지 이야기하고 있다. 늘 포옹과 뽀뽀를 보낸다는 말로 마무리하지만, 늘 행복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이 또 인생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지만, 그들의 삶이 가난으로 힘들었던 것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은 종이가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없고, 또 돈을 떼어먹은 사람을 쫓아 법적 절차를 밟느라 바쁘고, 추운 겨울 방에 불을 땔 수 없어 외투를 껴입고 자야 했던 이야기도 군데군데 볼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오.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본들 결코 우리 생각대로 조건이 좋아지는 건 아닐거요. 또 무슨 다른 사정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마음이 정해지거든 용감하게(어물어물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태도요. p.67


지금처럼 카톡이나 영상통화는 물론 전화도 걸 수 없는 상태에서 편지는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살아갈 힘을 주는 원동력이었다. 다음 달에는 동경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소품전이 끝나면 갈 수 있을 거라고 늘 희망을 주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자신의 작품에 늘 한글 풀어쓰기로 서명을 했던 이중섭은 항상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어려운 기회로 잠시 동경에 있는 가족들 곁으로 갔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림 아래 당당하게 적힌 한글 서명은 그의 의지였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으로 자처하오.  p.99


편지글과 그림 뒤에는 고 이경성 미술평론가의 ‘이중섭 예술론', 그리고 고 구상 시인이 전하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이중섭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말하는 그는 순수하고 비극적인 삶을 산 천재다. 이경성 미술평론가에 의하면 그의 작품은 아주 한국적이며, 야수파적 요소, 비극적 요소 그리고 향토적 요소를 갖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합판, 담뱃갑 은종이에 그린 그림들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예술에 대한 그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배갑, 은종이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제주도∙통영∙진주∙대구∙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p232-233 구상 시인의 글


이 책을 읽은 뒤 이중섭의 그림을 다시 본다면, 특히 가족과 아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본다면 ‘아고리'와 ‘발가락 군', 그리고 태현, 태성 두 아이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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