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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05. 2022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책 읽기 프로젝트 50 #13


처음 소년법정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인터넷에서 본 한 영상 때문이었다. ‘호통판사'가 법정에 선 소년에게 “안돼! 안 바꿔줘. 돌아가!”하고 외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때 한 생각은 아마도 ‘속 시원하다'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폭력에서 시작해서 더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또 그에 응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소년범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년범은 성인 범죄자보다 형량이나 처분도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범죄 사실과 그에 대한 처분만 봤을 때는 그 아이가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면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도 했다.


최근에 <소년심판>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았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扮)이 법정에서 만나는 소년들의 이야기 따라간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만든 이 드라마는 소년법과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제는 ‘알 것 다 아는' 아이들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못하거나 가벼운 처분 후에 다시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인가? 촉법소년을 폐지해야 한다거나, 교화보다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크다.


저자인 천종호 판사는 처음에 언급한 ‘호통판사' 영상을 통해 유명해졌다. 소년들에게 단호한 판결을 내리고 법정 안에서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훈계를 하기도 하는 등 엄격하지만 마음 따뜻한 판사로 알려져 있다. 천종호 판사는 이 책에서 자신이 재판을 담당했던 아이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소년범을 대하는 부모, 보호자, 법, 사회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눈다. 특히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소년범들에게 내려지는 형량이 성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설명을 한다.


형사미성년자에 대한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형벌에 있어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형벌에 있어 미성년자를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한다면, 나머지 법 영역에서도 동등한 취급을 해야 합니다. 불이익을 당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이익을 얻는 부분에 있어서는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민주주의나 법치주의에 근본적으로 위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p.141


미성년자는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아직 책임을 질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여기면서 처벌만 같은 수위로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인의 의무와 권리를 미성년자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미성년자는 아직 투표권도 없고, 운전면허도 특정 나이 전까지는 딸 수 없으며,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무조건 가벼운 처벌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이나 학교, 혹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국가가 나서 비행을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면, 국가 자신의 임무인 ‘정의’의 실현을 태만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역할이 국가의 ‘배분적 정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의의 문제는 사회적 가치를 각자의 몫에 따라 분배하고(분배), 분배된 몫에 대해서는 독점적, 배타적으로 누리게 하며(향유), 누림에 있어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바로잡고(시정), 분배되는 몫의 격차가 큰 경우에는 몫의 격차를 줄여주는(재분배) 것입니다. p.131


피해자의 입장에서 ‘작은' 범죄는 없을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보호처분이 끝나고 다시 사회의 혐오 속에 내던져질 때,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국가에서 이 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에서도 죗값을 치른 후에는 혐오의 눈길 대신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처우에 관해 두 가지 방안이 현실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첫째, 소년법을 존속시키되 개정하여 소년범에 대한 유기징역형의 상한을 높이고, 둘째, 형법을 개정하여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어 범죄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것입니다. p.148


무엇이 최선인지는 직접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도록 국가적, 사회적 정비를 해두어야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더 긴 소년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비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이런 딱딱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종호 판사와 아이들과의 에피소드에는 전에 받아보지 못한 친절을 받고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스스로 비행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 등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고, 주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전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우리가 보던 차가운 뉴스의 이면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으로 소년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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