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협의실에 갔더니 그 여학생만 덩그러니 홀로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좋은 일로 불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경진(가명)아, 선생님이 너 엄청 신경 쓰시더라.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너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건 잊지 마."
"네, 선생님."
세상 차분한 얼굴. 그 너머로 보이는 애처로운 절규와 아련함이 느껴지는 미소.
그 미소 위로는 사인펜으로 짙게 그려진 아이라이너가 우습다. 우스운 모습이라는 걸 이 아이는 알까?
아니면 본인의 아름다움을 극으로 치닫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 무렵 여학생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걱정이 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싸이월드를 알게 되었는데 야한 옷차림과 검은색 아이라이너를 짙게 했다고. 몇 번의 가출인지 모를 정도로 가출 횟수가 많고, 겨우 찾아서 데리고 온 것이었는데 사인펜으로 짙게 아이라이너를 그린 모습으로 학교를 온 것이다. 그런데 맞은 흔적이 있는 것 같은데 6학년 여자 아이라 남자 교사인 자기가 확인할 수도 없고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다.
삐쩍 마른 몸. 눈썹 위 일자 앞머리를 가득 내려 이마는 보이지 않고, 칼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
그게 내가 기억하는 경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다음날 경진이는 가출을 했고 등교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학년 협의를 하고 있는데 경진이의 담임 선생님 폰으로 전화가 왔다.
"네? 어디시라고요? 경남이요?"
통화를 마친 선생님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상황은 이랬다.
경진이가 서울이 아닌 경상남도 어느 지역 경찰서에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속여 대학생 남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는데, 대학생 남자가 아무래도 너무 어려 보여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 것이다. 아이의 보호자인 부모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같이 살고 있는 아빠는 경진이가 때릴까 봐 너무 무섭다고 해서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연락했는데 자기는 재혼할 것이기에 자꾸 전남편 아이일로 전화하지 말라며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데려갈 사람이 없어서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빠에게 맞을까 봐 연락을 못하고,
엄마는 찾아갈 때마다 찾아오지 말라고 거부를 하니,
이 아이는 어디에 마음을 놓아야 했을까?
그냥 있어도 아름다운 존재인데...
그 아이는 자신의 다친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꾸미고 얼른 어른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서울에서 경남까지 달려가 찾아온 경진이는 다음 날 학교에 왔다. 여전히 예쁜 미소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눈웃음치는 그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경진아, 너는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해. 너네 선생님 너 찾는다고 달려갈 때 멋있으시더라. 선생님도 걱정했고. 이렇게 널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학교는 졸업해야지. 해야 하는 거야."
"네, 선생님."
그렇게 경진이는 초등학교를 무사히 마쳐 졸업을 시켰다.
잘 살길 바랬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가출과 품행 문제로 결국 진학한 중학교에서 퇴학처리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금쯤 어른이 되어있을 그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그냥 살아가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제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없는 부모들에게는 국가에서 강제 부모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철저히 감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이 귀한 아이들이 귀한 존재로 자라며 귀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