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가명)이가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눈물 한 방울을 큰 눈망울에 달린 채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오락기가 사라졌어요."
자그마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만났던 2학년 아이들은 감히 지구별에 사는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생명체들이었다. 나를 "야"라 부르던 그곳에서 내가 그래도 버텼던 것은 내가 이런 아이들을 1년 동안 맡을 수 있었던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나날들이 연속이었던. 그 모든 시간들은 농밀하였다.
깊고 그윽했으며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설레고 행복했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을 시기하는 악마가 존재하는 걸까?
도준이가 학교에 몰래 갖고 온 오락기가 사라졌다. 시골 마을이라 오락기가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었는데 그것을 몹시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값비싼 물건은 되도록 학교로 갖고 오지 말라고. 자랑하고 싶고, 친구와 나누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친구나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고 지도한다. 아마 그런 선생님의 말씀은 따르고 싶은데, 귀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자랑은 하고 싶어서 도준이는 엄마 몰래 가방에 담아 갖고 왔나 보다.
"도준아, 혹시 선생님 몰래 전체에게 보여줬니?"
"아니요, 명재(가명)에게만 보여줬어요."
"명재에게만?"
"네. 명재에게만 몰래 가방 안에 넣은 채로 보여줬어요."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누가 봐도 사건의 주동자가 명재로 좁혀지고 있었다. 1, 2학년 저학년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그냥 순수해서 남의 물건을 갖고 가지 말아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갖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갖고 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훔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예뻐서, 그냥 몇 시간 간직하고 싶어서 갖고 가는 경우가 있다. (빈도가 잦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처음이라면 허락 없이 물건을 갖고 가면 안 되는 거라고 옳고 그름을 알려주면 된다.)
명재를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불러 물어보았다.
"명재야, 혹시 도준이 오락기 봤니?"
"아니요."
도준이의 오락기를 본 사람은 명재밖에 없었다고 한 도준이의 말이 거짓말인가? 이럴 때 교사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야 한다. 대상이 아이들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명재야, 사실은 도준이가 오락기를 가져왔었대. 근데 그것을 본 사람은 명재밖에 없었대. 혹시 도준이가 명재에게 오락기 보여줬어?"
"아. 네.."
"그렇구나. 명재야, 그럼 그 오락기를 본 사람은 너밖에 없는 건 맞아?"
"네."
"그럼 혹시 명재가 갖고 싶어서 갖고 간 걸까?"
"아니요."
"선생님은 명재를 믿어. 선생님에게 진실된 말을 할 거라고. 도준이는 그것을 가져간 친구를 혼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 물건을 찾고 싶대. 그래서 선생님도 혼낼 생각도 없고. 그냥 찾아주었으면 좋겠어서. 혹시 명재가 갖고 갔니?"
"아니요."
오락기를 자기만 본 것은 맞지만 자기가 갖고 간 것은 아니다. 당장 가방이라도 뒤져보고 싶었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 날 도준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제 도준이가 오락기를 몰래 학교로 가져갔더라고요. 집에서 오락기를 안 하길래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잃어버렸다고. 도준이가 갖고 간 게 가장 큰 잘못인데요. 선생님, 그게 저희도 큰 마음을 먹고 사 준 거.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려요. 도준이는 어제 크게 혼났어요. 도준이 말에 의하면 명재에게만 보여줬고 그다음에 사라졌다고 해요. 아마도 명재가 갖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확인하면 안 될까요? 명재네 사정을 알아서 명재네 집에는 전화를 제가 못 드리겠어요."
도준이 엄마의 연락을 받은 뒤에 더욱 심증이 갔지만, 문제는 명재를 어떻게 설득할까 하는 문제였다. 명재 집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것이 뻔하고, 전화 연결이 된다 하더라도 명재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명재의 얼굴은 자주 씻지 않아 꾀죄죄한 편이었고, 검은색 까까머리 위엔 하얀 비듬이 보이곤 했다. 너무 심한 날에는 학교에서 씻어주고 로션을 발라주곤 했다. 부모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하는 편이었고, 학교에서 전화를 해도 부모와 연락이 잘 안 되었다. 부모와 연락이 닿은 날에는 그 다음날 엄청 혼났다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명재야, 선생님은 명재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용기 있는 거야. 그런 용기를 보여주면 선생님도, 도준이도 명재에게 고마워할 거야. 명재가 그 오락기 갖고 갔어?"
"아니요."
아니라고 잡아떼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지?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 가방을 검사할 것을 그랬나 후회도 되었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방과후 보충수업. 명재는 기초학력이 잡히지 않아 방과 후 교실에 남겨 부족한 공부를 시켰다. 간식을 줘가며 한 문제, 한 문제 풀어가면서 칭찬도 해주고 하이파이브도 해 주었다.
"우와~ 명재야. 이 어려운 걸 풀었다니! 진짜 대단하다! 여기 달콤한 초콜릿!"
"히히. 떤땡님(선생님), 기분 댑따(진짜) 좋아요. 우리 집에도 초콜릿 있는 데 갖다 줄까요?"
"오~진짜? 감동인걸! 그럼 명재야, 그 초콜릿 갖고 오면서 도준이 오락기도 용기 있게 갖고 올래?"
"네!"
"(........으잉?)"
하하하. 그리고 명재는 집으로 달려가서 가나 초콜릿과 도준이의 오락기를 가져왔다. 그렇게 가져가지 않았다고 발뺌하던 땅콩 명재는 나의 칭찬과 초콜릿 하나에 홀딱 넘어가서 용기있게(?) 도준이의 오락기를 가져왔다. 허탈하면서도 가져오란 선생님의 말에 순수하게 "네!" 하며 가져온 아이의 모습을 보며 늦게라도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신께 기도를 드렸다.
들통날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차분히 기다려줬고, 아이는 기다림에 응답하듯 기적처럼 훔쳐간 물건을 가져왔다. 그리고 도준이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찾았으니 되었다고. 다시는 값비싼 물건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도록 아이를 지도하겠다고 하셨다.
5년 차.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고, 또한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고백한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아름다웠던 지구별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나의 아픔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다짐할 수 있는 교육적 의지가 생겼다.
정해진 방법과 빠른 방법보다 나만의 교육 철학을 지켜내며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명재는 올바르게 살고 있을까? 성인이 되어있을 그 아이가 어디선가 건강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