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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별 Dec 08. 2024

시기와 질투

"와~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학년 학예회에 왜 그렇게까지 선생님이 지도를 해? 1등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네. 같이 비슷비슷하게 맞춰야지. 혼자만 그렇게 잘하고 싶나?"


협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보다 5살 많은 동학년 선생님이 들으란 식으로 말을 꼬아가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무슨 상황이지?'


난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비꼬는 그분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우선 파악하려고 했다. 

출처 : 픽사베이




그 해에는 학년 학예회로 반별로 1-2개의 공연 작품을 하고, 전담 교사들이 평가자가 되어 가장 잘한 학급을 선정해 주기로 했다. 우리 반은 학급회의를 통해 하고 싶은 공연을 2개 선정을 하였고 코미디 연극과 리코더 합주를 하기로 했다. 특유의 개그감을 보이던 학생들이 있어 유쾌함이 우리 반 코드라고 느끼던 아이들이 선정한 공연이라 연극은 알아서 잘해보라고 했고, 리코더는 음악 시간에 하던 한 곡을 연습하겠다고 했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아이들 스스로 삼삼오오 모여 연습을 하였다. 학예회 3일 전, 그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갑작스레 무대에 오르면 당황할 것 같아 교실에서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무대 장악력이 뛰어났고 잘했다. 입장과 퇴장을 어떤 식으로 하냐고 묻길래 입장은 오른쪽에서, 퇴장은 왼쪽으로 한다고 알려줬다. 그게 문제였다. 


상황인즉슨, 그 반 아이가 와서 우리 반 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고 장난이 아니었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게 와전이 돼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연(?)을 위해 아이들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왜 조롱을 받아야 할 일이며, 사실이 아닌 것은 바로 잡고 싶었다. 



"선생님, 저 애들 가르친 적 없어요. 아이들 공연 준비한 거 어떻게 되고 있나 궁금해서 오늘 교실에서 예행 연습 한 것밖에 없어요. "

"뭐가 없어~우리 반 아이들이 다 말해줬는데. 선생님 반 아이들 엄청 열심히 준비했다고. 선생님이 시킨 거잖아!"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건 같아요. 근데 제가 시킨 일이 아니에요. 저는 오늘 처음으로 아이들 공연 보고, 무대 어느 쪽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는 지만 알려줬어요."

"됐어. 같이 같이 비슷하게 맞춰서 해야지. 그 반만 잘하면 돼?"


더 이상 말을 해도 그녀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그리고 설사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게 비난을 받을 일인가 싶었다.  닫아버린 귀에다 대고 내 진실을 들어달라고 외쳐도 들리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심사위원으로 올라간 젊은 전담 선생님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0반인데요. "

"네, 선생님."

"부탁이 있어 전화했어요. 학예회 때 혹시 저희 반이 잘하더라도 저희 반은 순위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사실 전담선생님은 협의실에 상주하고 있던지라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학예회 당일.

우리 반 아이들은 대학로 웃찾사 뺨칠 정도로 관객들을 웃게 만들며 몰입감 있는 공연을 보여줬다. 소품도 챙겨 오고 이런 잠재력이 있는 아이들의 담임교사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결과는 나를 시기하던 그 반도 아니고, 우리 반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그 반과 우리 반이 가장 월등히 잘했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뜻하지 않게 나이가 제일 많은 남자 선생님의 반이 1등을 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심사위원으로 있는 젊은 선생님들의 불편한 마음으로 내린 최선의 결정이란 것을 안다. 결과가 그렇게 되자 그분은 급작스레 나의 편(?)에 서서 심사위원으로 있는 전담 선생님들의 험담을 했다. 누가 봐도 우리 반과 선생님 반이 잘했는데 기준을 모르겠다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어느 조직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교직에 있다 보면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시기와 질투는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시기란, 타인에게 초점을 맞춰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반면, 질투란, 나 자신에 초첨을 맞춰 이웃이 지닌 것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질투를 통해 내가 그것을 향해 노력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것을 목표로 삼아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기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타인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남을 깎아내리거나 스스로 좌절하는 방식으로 귀결되기가 쉽다. 


그분의 마음은 질투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분이 나에게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었다면 그분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성장시켜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사실이 아닌 것을 우기며 나를 깎아내리려고 하였고 다른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며 결국 스스로 좌절을 맛보았다. 


직장에서 시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굳이 내가 옳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그들은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은 비교조차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시기하지 않지만, 늘 자신과 비슷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깎아내리려고 혈안이 되어 시기한다. 


그러니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그 정도의 수준을 갖췄거나 좀 더 나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나를 향한 날 선 말들도 일일이 대응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시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좌절하고 무너질 것이기에 우아하게 기다리면 된다. 


시기와 질투. 

같이 쓰이는 단어이지만 분명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출처 : 픽사베이


@지혜롭게, 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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