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사실은 같이 떠나려고 했는데 일정이 여의치 않아 남편의 제안에 혼자 여행을 떠났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혼자는 처음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가까운 일본이니 뭐.. 괜찮겠지.’
“이랏샤이마센!”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어서 오세요.’라는 말은 여전히 나를 향한 표현인 듯 정겨웠다.
지독히도 나는 혼자인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혼자 지내온 시간들이 많았던 나에게 성인이 되고서야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끔씩 멀미 증상을 느끼곤 했다. 가족, 친척, 친구들에 파묻혀 지낼 때면 이것이 행복인 줄 알면서도, 거만한 귀찮음과 짜증이 몰려오기도 하는. 그런 나 자신이 이해가 되면서도 참 못된 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새롭게 형성되어야 하는 아이 친구들의 부모와의 관계가 부담스러웠다. 늘 웃으며 편안하게 대하는 남편과는 달리, 나에겐 그들이 내 아이 친구의 엄마, 아빠라는 인식보다, ‘예비 학부모’라는 인식이 강했다. 직장에서의 연장선 같은 느낌. 그래서 늘 조심스럽고, 다가오는 부모들을 친해지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고 그들과 나 사이에 거리를 항상 두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오랫동안 연락 못한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소식을 서로 전할 수 있는 SNS의 장점이 좋았다. 동시에 끊임없이 그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앉으나 서나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아니었을 때는 그래도 가방에 두고 조금은 사람들로부터 단절되기가 쉬웠는데, 현관문을 나서도 단절될 수 없는 초연결성 시대에 살면서 필연적으로 난 멀미 증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여행은 나에겐 ‘도피’와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갈망하며 시작한 도피.
돈가스 덮밥을 시켜 먹으려는데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코로나 이전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풍경. 혼자 먹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먹으니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한국에서는 1인용 식사 자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홀로 식당에 가서 먹을 때면 알 수 없는 눈치가 생긴다. 얼른 먹고 자리를 비워 줘야 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그런 거. ‘여긴 대부분이 다 혼자 먹고 있구나.’ 그들과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편안히 먹었다.
호텔 체크인 후 무작정 나와 오도리 공원을 지나갔다. 오도리 공원을 지나 TV타워에 갔는데 셀카 찍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와 딸로 보이는 모녀가 다가와 사진을 먼저 찍어주겠다고 한다. 뭔가 잘 찍어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잘 안되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푸훕. 역광으로 얼굴은 거무티티, 상체를 일부러 자른 것도 아닌 것처럼 나온 모습에 웃음이 튀어나왔지만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두 모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굿!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얀 거짓말을 하고 안심시켜 보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인류애,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첫날의 일정은 대부분 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여서 마음껏 걸어보았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 한잔을 시키며 여행의 느낌을 기록했다. 커피를 마시기 전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냥 온전히 커피맛을 느끼고 싶은 나만의 경건한 습관.
시나몬 가루를 잔뜩 뿌린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여행기록을 하다 문득, 맞은편 의자에 누군가 앉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오늘의 날씨, 음식, 사진 에피소드, 엄청 짰던 돈가스 덮밥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고 싶었다. 가끔은 누군가와 기억을 나누고 싶은 순간이 있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음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인간 군중 속에서 심한 멀미를 느끼며 도피하듯 온 여행 첫날부터 사람이 그리워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문득 상상을 해 보았다. “춥지?” 하며 따뜻하게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고.. 호텔로 돌아가서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올까?라는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고민과 체온을 나눌 상대가 필요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철저히 혼자였다.
모든 장소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 자유를 갈망하며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여행이었는데 왜 이러지? 혼자라는 사실 앞에서 난 또 다른 멀미 증상을 느꼈다.
쓸쓸한 마음이 드니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호텔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설까?’
잠시 고민은 되었지만 호텔로 돌아갔다 나오면 적어도 40분 이상은 걸릴 테니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스스키노에 있는 60년 전통의 칭기즈칸 전문점인 다루마 본점을 가고 싶었다. 구글맵을 켜서 찾아가면서 ‘참 세상 좋아졌구나.’ 느낀다. 2000년대 유럽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종이지도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원하는 식당 위치도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뿔싸. 그런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정도면 금방 줄이 줄어들겠지?’라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배고픔과 추위를 참아가며 선 지 1시간 50분째. 도저히 줄어들지 않는 줄이 야속하고,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꼭 먹고 말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고 있는 찰나 주인장이 나와 외친다.
“이치!”
뒤의 일본어는 잘 듣진 못했지만 혼자 온 손님을 찾는 거 같았다.
“저요! 히어~히어!”
내 앞의 긴 줄을 제치고 거의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어온 식당. 혼자가 아니라면 족히 1시간은 더 기다리지 않았을까?
식당에 들어서니 왜 그렇게 줄이 줄어들지 않았는지 단숨에 이해되었다. 다루마 본점은 가게 규모가 아주 작았다. 삼삼오오 몰려 연인과 또는 친구와 먹는 식당의 분위기가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시간을 잊혀줄 정도로 따스했다.
삿포로에 오면 맥주와 칭기즈칸은 필수라는데, 밖에서 너무 오들오들 떤 탓에 감시 맥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인하면 쌀밥과 고기지. 하얀 쌀밥에 먹는 양고기의 맛은 그동안 내가 가진 양고기에 대한 선입견을 단숨에 바꿔버리게 될 정도로 아주 맛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난 계속 기다리며 이것을 먹을 수 있었을까? 역시 혼자 오길 잘했어. 그리고 일본어를 잘 몰라서 다행이야. 저들이 설사 나에 대해 우스꽝스럽다고 흉을 본다고 하더라도 나는 못 알아들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비슷한 차림과 얼굴을 가졌지만, 언어만 다르더라도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타인을 덜 의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니 마음이 편했다. 동시에 그동안 나는 아무도 나를 몰라봐 주었으면 하는 욕구를 가진 존재여서 가끔씩 멀미 증상이 나타났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온 곳이 집이 아닌 호텔이다. 일본 스러운 방과 욕실의 크기에 놀랐다. 내가 있지만 아무도 없는 곳. 나 혼자 눕기에는 딱인 크기임에도 빈 공간의 크기가 크게만 느껴지고, 여행의 첫날에 대해 마음을 나눌 이가 없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솟구쳤다. 도피성 나의 여행이 즐거웠지만, 길을 잃은 듯하였다. 그리고 생각난 사람에게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