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하듯, 교실을 지나가는 시간

읽히지 않던 문장들이 읽히는 날

by 몌별


"선생님, 12월이 되니 슬퍼요."


갑자기 우리반 건우가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평소에도 감성적인 아이라 무슨 슬픈 일이 있는 걸까,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 아이의 말 뒤에 난 온갖 상념들로 가득해졌다.




"응? 왜 슬퍼?"


"12월이 되면 곧 다음해가 오고, 3학년이 되면 선생님이랑 헤어지잖아요. 전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거든요."


"맞아요!"


"아니거든! 선생님이 내년에 3학년 할 수도 있거든!"


"그래요? 맞아요?"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얘기하다가, 이내 웃음이 터진다.

꺄르르 꺄르르. 뭐가 그렇게 웃긴지.

피히히. 참 귀여운 녀석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 있었다.

저학년 아이들과의 하루는 늘 ‘설명’으로 시작했다가 끊임없는 질문 폭탄에 대한 답으로 끝났다.




"지금 가위질 해도 되요? 선생님 이거 잘라요?"


"전 이 부분 빨간색으로 칠할 거에요. 그래도 되요?"


"이름은 연필로 써요?"






처음 저학년을 맡았을 때는, 솔직히....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가 맞나 싶었다.

마음 한 켠엔 지구인이 아닐거야.. 지구별이라는 세계에 사는 외계인일거야...

감정의 변화도 너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고, 어느 시점이 웃긴 포인트인지

다들 웃는데 나 혼자 웃지 못하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답답한 지구인을 구제하기 위해 조금 더 ‘상위 단계’의 외계인 친구가 등장해 통역을 해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친구의 말도, 통역의 말도 모두 한국어라는 게 미스테리하다.






지구별 외계인들의 3월의 삶은 신비롭다.


수업 시간에 기분이 좋다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추는 아이.

급식 시간에 친구가 물통을 가져다줬다고 슬프다며 우는 아이.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아이.

준비물이나 숙제를 못해온 게 부모님이 챙겨주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아이.

콧구멍이 터질 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넣고 있던 아이.

암호보다 더 어려운 신기한 맞춤법의 세계가 있는 아이.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을 검사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느새 나는 아이들의 글을

힘주지 않고 읽고 있었다.



암호보다 더 어려웠던 저학년의 신기한 맞춤법.



처음에는 한 문장을 해석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정된 어휘로 마음을 최대치로 표현하려는 꼬마 작가들의 은유를 이해하려면,

나 역시 저학년 전용 감성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술술 읽힌다.

아이들의 맞춤법 세계가 조금씩 일반 세계와 이어지고,

문장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애써 발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들의 문장은 자라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란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글에는 여전히 서툰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전보다 훨씬 또렷하다.



예전에는 해독이 필요했던 문장들이

이제는 읽는 순간, 곧바로 마음으로 닿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이 백 미터 달리기인지,

아니면 숨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마라톤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다만 분명해진 게 하나 있다.

아이들보다 앞서가려 애쓰지 않겠다는 것.

조금 느린 아이를 보며 마음부터 바빠지지 말 것.

아이들의 속도를 재느라 내가 숨 가쁜 사람이 되지는 말 것.



오늘 이해하지 못한 문장은 내일 다시 읽어도 되고,

지금 멈춰 서 있는 아이는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내가 할 일은

끌어당기는 것도, 재촉하는 것도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온몸으로 애쓰고 있는 것을

격려해주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아마 이 겨울이 지나면 아이들은 또 한 뼘쯤 자라 있을 테지....?


@지혜롭게, 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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