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서는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가기보다는, 내가 이미 살아오고 있던 삶을 다시 펼쳐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책은 자기 확신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이라는 문장을 필사하며 내가 왜 이토록 자주 책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이유를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조용히 상상해보게 만드는 마음속 장소를 하나 더 갖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달 내내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결국은 나라는 텍스트를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있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이미 나보다 훨씬 오래, 훨씬 많이 써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성찰의 이야기 속에서 글을 쓴다는 일이 결국 자신을 끝까지 데리고 가보는 일이라는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후지노 토모야의 『무조건 나부터 생각할 것』을 읽을 때는 나를 먼저 선택하겠다고, 그래서 남은 에너지로 타인을 돕겠다고 했던 오래된 다짐을 다시 떠올렸고, 그 다짐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는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임희재의 『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를 읽다가는 문득, 아주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낯선 언어와 낯선 공기 속에서 외국인 남자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삶을 은근히 꿈꾸던 시절의 나, 그때의 나는 단단해지기보다는 어딘가로 가고 싶었고, 잘 살아내기보다는 멋지게 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다정한 하루들이 쌓여 인생을 만든다는 문장을 읽으며, 그때의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의 다정함으로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용히 놓였다.
『쵸역 쇼펜하우어의 말』문장들은 여전히 매서웠고, 건강과 인간관계,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들은 피하지 않고 마주할수록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윤의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읽으며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고, 그 목록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을 조금 덜 미루며 사는 일에 더 가까웠다.
『교실의 언어』를 읽는 동안에는 늘 사용해오던 교육의 언어들이 낯설어졌고, 교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던 말들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교육자로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혜영의 『어린이의 문장』에서는 아이들의 말과 침묵 앞에서 느끼는 말캉한 감정들이 되살아났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문장을 다듬던 나의 손과 시선까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공저 『어쩌다, 행복』을 읽으며 나는 나의 행복한 순간들과 타인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았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렇게 1월에 읽은 책들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들었다. 삶을 온전하게 경험하려면 삶이라는 텍스트를 다시 읽어야 한다는 필사 문장이 이제는 문장이 아니라 나의 생활 방식처럼 느껴지고, 책과 삶의 연결이 기쁨이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 겨울의 독서 속에서 조용히 배워가고 있다.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