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를 임신하기 전부터 뉴욕지사로 발령 이야기가 나왔지만 미룰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미뤘다. (신랑의 업무가 외화를 다루는 일이기에, 해외살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어디든 감사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뉴욕보다는 런던이었다. 이유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금융맨 엘라파, '가성비 떨어지는 유럽여행을 왜 가? 나 빼고 가.’라고 노래를 불렀기에. 반대로 미대언니 엘라맘, ‘당신이 유럽여행을 싫어한다면 엘라와 둘이서라도 다녀올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주재원 시기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1순위는 엘라가 초2-초4, 2순위는 5-7세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고 '런던'으로 주재원 발령이 났다. 엘라 한국 나이 네 살 후반기, 막연하게 마음에 품고 있었던 생각이 이루어지는 날도 오는구나.
본격적으로 짐 싸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신랑 왈
“어제 회식을 갔다 왔는데… 우리를 너무 부러워하는 거야. 특히 당신을…”
“왜?”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에 틀림없다며… 자기는 다시 태어난다면 주재원 와이프로 태어나고 싶다고….”
"아... 그래? 한 달 내내 이삿짐 사고파는 것을 보셔야 하는데..."
(런던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필요 없는 것들은 팔거나 주거나 버리거나의 연속이었다.)
당신이 아니었어도 미국에서 살 기회는 충분히 있었는데, 내가 선택을 안 했을 뿐이건만...
(미국 대학원을 지원해놓고 기다리던 찰나, 고등학교 미술교사가 되는 바람에 합격을 포기했었다.)
평소에도 생색을 낼 때면 기분이 떨떠름했는데 그 생색에 날개를 달아준 회사 사람들.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내 표정은 얼.음이었다.
엘라의 유년기를 런던에서 보낸다는 것은 설레기도 했지만 '의지할 사람 한 명도 없는 곳에서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동시에 밀려왔다. 좋기도 했지만, 신랑 덕분에 마냥 좋겠다는 말은 내심 싫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행복하기도 했지만, 불행하기도 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주재원 와이프가 되었는데,
중간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암 환자’가 되었을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던 찰리 채플린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