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 주재원 가정은 한 명이 먼저 출국해서 집을 구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나머지 한 명이 아이와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엘라파 지인은 그렇게 집을 구했더니 ‘와이프가 집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아이 학교도 멀어서 이사를 또 하게 되더라고. 내가 너라면 같이 들어오는 것을 선택할 거야.’라고 한다. 아이 학교 문제를 포함해 일장일단이 있으므로, 엘라네는 세 식구 함께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기로.
열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다. 해외 이삿짐은 도착하기까지 두 달이 걸리므로 그 기간 동안 지낼 이민가방 여러 개와 함께.
인천공항에서는 친절한 콜밴 기사님이 부정주차를 잠깐 해 가면서 수하물 보내는 것을 도와주셨는데, 외딴곳에 우리 셋만 있다. 어린 엘라도 장시간 비행 후라 유모차에 타고 있어 엘라파 혼자서 여러 개 쌓인 캐리어 운반 카트를 낑낑 밀며 공항을 빠져나온다.
빅토리아 스타일의 런던 에어비앤비에 도착. 그 기쁨도 잠시 전기레인지가 안 된다. 주인에게 요청했더니 이틀 후에 고쳐 준다고. 그렇게 수리공이 다녀갔는데 기가 막히게 또 안 되네.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런던식으로는 오래된 물건을 고쳐 쓰다 보면 이런 경우가 흔하다. 파리식으로라면 이틀 후가 뭐람? 고쳐주면 땡큐지.)
원래도 예민한 엘라였는데 런던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결벽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화장실에서 비누로 손을 씻을 때 거품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백만 번을 문지른다. (물거품을 비누거품으로 착각한 것 같은데 아무리 설명해줘도 소용이 없다.)
에어비앤비에서야 혼자서 계속 씻어도 상관이 없지만, 외출을 했는데 카페 화장실은 한 칸이다?
그런데 엘라는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하우스 투어, 학교투어로 외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다?
밖에서는 은근슬쩍 노크를 하니 참다못해 강제로 우는 애를 끌어안고 나온다.
끝없이 줄이 이어져있고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설명이 안 된다. ‘미안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척하지만,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마음은 작아졌다.
(‘그럼 손을 씻기지 말지.’하겠지만, 소변을 보고 나서 휴지로 소중이를 닦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승전 ‘결벽증 환자’였다.)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상태. 인내심 그릇은 점점 바닥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엄마니까’ 엘라의 짜증을 다 받아주고 적응시키다 보니 시간은 잘도 간다. (그 많은 캐리어를 들고 세 번이나 이사를 했으니.)
참고로 엘라파는 여행 가서도 이사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혐오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사를 피했을 텐데 런던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내일이 이삿날이라 짐 다 싸고, 우버까지 예약해놓았는데 밤 11시에 따르르르릉
“공사가 덜 되었어. 내일 이사는 힘들 것 같아.”
“뭐라고???”
“Wait!(기다려)”
“(예의를 지키며) 따다다다다다다다다.”
“Wait!(기다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따다다다다다다.”
“(노래하듯) 웰컴투런던.”
그래 여기까지는 오케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아프다. 심한 편두통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몸은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생각나는 건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이 먹고 싶다.’ 정도. 세 번이나 이민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단을 나른 엘라파도 몸이 축났기에 혼자서 엘라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 한국에서 챙겨 온 비상약을 먹었지만 소.용.없.다.
반나절 이상을 쉬다 보니 몸이 좀 회복이 되는 것 같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며칠 전에 먹은 따뜻한 토마토 수프가 내 몸을 회복해줄 것 같은 기분.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버스에서 돌아오는 길, 구토를 참지 못해 급히 내린다. 대낮에 런던 길거리에 혼자 토를 하고 치운다. 또 토하고 치운다. (반복)
분명,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엘라파에게 위로를 받았음에도 대낮의 혼자서 여러 번 토했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타국에서 엄마는 절대로 아프면 안 돼.
아니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야.’
그게 코로나19 상황에 강박증으로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