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사 도전기, 세 번째 이야기
미국 박사를 준비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지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말하면 그간 자그마치 3년의 시간은 흐른 듯싶다. 아기의 첫 장거리 비행과 자가격리, 어린이집 적응에 이어 아기 첫돌을 기념하는 일련의 소소한 미션들이 쉴 새 없이 이어져온 나날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나 혼자 수년을 살아낸 것 같은 느낌. 그 사이사이 미국 언론학회 AEJMC에 올해 학회를 겨냥한 리서치 페이퍼를 제출했고 대학원 석사 시절의 교수님 연구를 도왔다. 리서치 연구 초보, 실력과 경험치는 아직 ‘잘한다 못한다’ 평가할 것도 없이 ’바닥’이라고 느끼지만 논문 초록 Abstract까지 가다듬어 결국엔 Submission 버튼을 눌러내고야 말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 첫 연구를 냈잖아!”. ‘연구자의 길’에 입문한 것이니 결과가 어떻게 주어지든 ‘뿌듯한’ 마음을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부’에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박사 과정에 진입하기 위한 ‘시험공부’.
미국 대학원에 입성하려면 ‘GRE’ 점수가 있어야 한다. 아나운서 생활을 이어가며 한창 미국 석사를 준비하던 무렵엔 ‘TOEFL’ 고득점을 해보겠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토플’은 이만하면 됐어... 이제 ‘지알이’의 세계로 넘어가 볼까?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생방송 출퇴근 전후로 도서관 문턱을 넘나들던 게 3년 전 요맘때였다. 한데 운이 좋았던 걸까. ‘지알이’ 점수 제출이 필수가 아닌 것으로 전형을 바꾸는 학교들이 쏙쏙 늘어나는 게 당시로부터 이어져온 추세. 지알이의 세계에 잠시 발을 담갔었지만 아아 나의 지알이 점수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더랬습니다.
3년 전 당시, 내가 지원한 프로그램에서도 이 점수 제출은 필수가 아닌 게 되어버렸던 것. 목숨을 걸고 좋은 점수를 낼 필요가 없어지면서 나와 지알이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줄만 알았다. 이렇게 다시 시작하게 될 줄도 모르고. 대부분의 미국 박사 프로그램은 조금씩 유연하고 관대해져가고 있는 ‘석사 과정’과 달리 ‘GRE’ 점수가 필수다. 나는 점수를 내야만 한다. 되도록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고고익선은 이럴 때 쓰는 말.
한 살 된 아기를 키우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예시다. 결혼하기 전, 육아하기 전처럼 공부할 수 없다. 한국 친정 찬스에 기대 예전처럼 “고시생 모드로 공부해볼 거야”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미국 박사 준비’에 최선을 다할 거라고 쉬이 말했지만, 그런 희망사항은 just one of priorities. 아기를 낳고 난 뒤 다른 우선순위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오늘 새로운 단어를 부지런히 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유식을 자꾸 거부하는 아기의 마음 언어를 읽는 일도 중요하다. 구독해 둔 6개월 온라인 강의를 챙겨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내 아기가 어떤 새로운 옹알이를 하려는지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작업도 놓칠 수 없다. 아니 중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앞에 언급해둔 각각의 후자들은 마음이 저릴 정도로 애틋하고 절절한 ‘소중함’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아기를 키운다는 건 원하는 내 진로목표를 향해 한우물을 파는 게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럴 여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공부 좀 하겠다고 아기와의 놓칠 수 없는 순간들을 흐릿하게 소모할 순 없는 거니까.
때때로 하루 16시간 꼬박꼬박 지키며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공부 진도를 뺐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방송사들이 꽤나 긴 파업을 했던 2017년, 잠시 마이크를 내려둔 틈을 타 하루도 빼놓지 않고 16시간을 지켜가며 영어공부를 했었던 시절이었다. 나이는 서른을 넘겼는데 아파트 독서실에 새벽 1시를 넘겨 앉아 꼴등 ‘퇴근’을 하려니 마치 고3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잖아? 라고 툴툴거렸던 시절. 한껏 뾰로통해져서 심드렁한 척하면서도 흐뭇한 웃음이 났던 기억. 주말 휴일에도 스터디 카페에서 살았고 당시 남자 친구, 현 남편은 미국에서 한국에 잠시 입국해서도 날 만나러 스터디 카페 자리로 찾아와야만 했었다. 그토록 ‘매진’했고 공부에 ‘미쳐있는’ 게 가능했던 나날들. 지금은 꿈꿀 수 없는 공부의 순간들.
그땐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통 진도 나가지 않는 동영상 강의. 오답노트 따위는 만들 여유도 없는데 빨간펜만 날카롭게 찍찍 그어지는 문제집 더미를 보고 있자니 꽤나 답답했고 한편으로는 “그때만큼의 열정은 그때까지가 전부였나 보구나” 싶어 잠시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공부를 맘껏 해낼 수 없는 현재의 상황, 육아라이프가 ‘싫다’는 건 아닌데 불안하고 속상할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때처럼 해야 썩 좋은 점수가 나올까 말까인데... 이렇게 해서 뭔가 이뤄낼 수 있기나 할까. ‘엄마’ 라는 제1순위 역할을 쥐고 다른 균형을 잡아가기란 익히 들어왔듯이 쉽지 않은 일인 걸까. 그럼 어떻게 내 자아를 찾지. 내 꿈이 네임펜처럼 선명한 게 아니라 4B 연필 번지듯이 지저분하게 흐릿해져 버리기만 하면 어떡하지.
심란한 마음을 움켜쥐고 있던 사이 잠시나마 안도가 일었던 건 이글 덕분이었다. 마음이 꽤나 좋지 않아서 주말 틈틈이 부지런히 읽어 내려간 최근의 에세이 한 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지금도 무리하지 않으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려 노력한다. 엄마가 되고 당황한 것 중 하나는 일상에 변동성이 너무 커졌다는 사실이었다. 아이 상황에 따라 일정 변경을 해야 할 때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예전이라면 일주일 만에 처리했을 일에 두 배 가까이 걸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목표 일정을 느슨히 잡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에게 짜증이 옮겨갈 수 있었다. 완벽하고 헌신적인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p. 202
엄마가 되고 난 뒤 적잖이 스트레스 받았던 상황. ‘변수가 많다’는 것. 사람이란 참 간사하기도 하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에 대해 절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아이러니. 내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 또래 많은 엄마들 역시 그 변동성 속에 몸을 둥둥 내 맡기며 유연해지기를 연습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또렷이 읽어내고 나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지저분하게 엉킨 머리 가닥들이 값비싼 트리트먼트를 받진 못했을지언정, 아주 조금은 린스칠을 해 정돈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의 마법을 알고 나면 이 세상 온갖 불안함과 변화무쌍함에 힘겨웠던 투쟁이 아주 살짝은 산뜻해지는 기분. 오늘 밤도, 이 마법의 주문을 기억하며 나의 지알이 문제집을 꾸역꾸역 펼쳐보기로 마음먹는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더 좋은 곳으로 보란 듯이 나아가려면 이렇게라도 버텨봐야지. 아! 작가의 책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비 합격생은 그냥 울지만, 합격생은 울면서 공부한다 (p.67).” 아기도 울고 나도 우는 한이 있더라도 옛날의 욕심일랑 살짝 접어두고 변동성 속에서 파도 타보기, 어설프게나마 연습해보련다. 괜찮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테니까.
우연히 오늘 꽂힌 노래가 잔잔히 발랄하게 울려퍼지는 잠의 길목에서, 다시한번 마음 가다듬기. 숨 한번 고르기. When will my life begin? (라푼젤 Tangled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