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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다양성 아이 '동생'도 키웁니다

[23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by 마이 엘리뷰

신경다양성 아이와 함께해온 지 63개월. 신경다양성 아이의 '동생'도 키워오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별남'이 도드라지는 아이를 키워가는 것은 어렵고 무겁지 않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림잡아 이런 추측을 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징후를 느꼈을 때 등골이 서늘했던 마음부터, 진짜 '진단'에 이르던의 눈물 뒤범벅된 착찹한 마음까지 장난 아니었겠다고. 그런데 아이와 걸어가는 독특한 일상도 차츰 습관이 되면 드라마틱한 기분이 일상을 많이 뒤덮진 않는다. 아이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을 때의 초기 먹먹함이야 그렇다 쳐도, 나의 신경다양성 베이비는 가끔 너무 웃기고, 경쾌하고 발랄해서 힐링이 될 때가 있으니까. 치료가 꾸준히 필요한 아이인데 되려 주변은 치유가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건 뭘까. 내게 아이가 둘이라는 사실. 신경다양성 아이의 동생은 신경다양성이 아니다. 말을 꼬아서 돌려돌려 했는데, 개인적으로 '정상발달'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되도록 안 쓰려 하다보니 이것 참 표현이 모호하고 어렵다. 정상 대 비정상 카테고리가 어색해서 독특함 대 평범함이라고 타협해보련다. 동생은 평범한 세 살 아이다. 갓 36개월을 넘겼는데 오빠보다 일찍이 수다쟁이가 되었고, 어린이집에 다닐수록 오빠를 제법 가르치려고 들기도 하니 하루하루 놀랍다.



"오빠야, 걱정마! 내가 도와줄게", "오빠야, 이리와봐. 여기 앉아봐. 그렇지. 엄마가 이거 하라고 했잖아". 오빠 손을 붙들고 다니면서 이리와봐라, 저리비켜라, 다부진 명령어도 가지각색이다. 첫째만 키웠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 것이다. 이 나이만 되어도 이렇게 꼬마어른이 되는구나. 이렇게 재잘재잘 수다가 가능해지는구나.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둘째는 어느새 오빠바라기이자, 오빠경호원, 보안관이 되어가고 있었더랬다.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를 함께 키우는 일, 정말이지 딜레마가 많다. 넘사벽 육아 1위가 바로 이것 아닐까 싶은데 경험하는 부모가 소수일테니 아마 넘사벽 레벨이라는 소문조차 나긴 쉽지 않을 거다. 최근 소셜미디어 숏폼 미디어를 보다보면 어떤 맘이 최강1인자인지 장난스럽게 겨루는 콘텐츠가 있다. 그 안에는 명랑하고 여리여리한 자매맘도 있고, 씩씩한 발걸음 남부럽지 않은 아들맘도 등장한다. 물론 아들셋맘이 등장하면 다른 육아맘들은 게임 끝이다. (윽, 너무 웃프잖아!!!)


아들 하나 딸 하나 골고루 키우는 밸런스 좋은 남매맘의 삶의 질이야 말로 상급에 속할 것도 같은데, 아들 하나 딸 하나지만, 그 중 한 명이 장애진단을 받았고, 세상은 '자폐'라는 단어로 지칭하며, 일상에서 자폐스펙트럼 세계를 매순간 경험하면서도 '과연 자폐스펙트럼의 세상은 어떨 것인가' 상상하는 데 그치고마는 한계 확실한 남매맘이라면 이건 데프콘 발령 수준의 긴박한 육아 최고치 찍지 않을까.


오빠는
도대체 왜 저러는거야?
오빠 좀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해봐


지금은 오빠바라기인데 세 살 배기 동생이 조금 더 자라났을 시기를 자주 상상한다. 키즈카페든, 박물관이든, 도서관이든, 지금은 둘 데려다만 놔도 '서로 좋아 죽는' 찰떡 관계라서 "어찌 저리 좋을까!" 감탄 내뿜는다. 다만 그 언젠가 오빠의 신경다양성을 조금 더 인지 하게 되는 날이 찾아오면, 동생은 어떤 마음일까 감히 생각해본다. 찰떡 관계가 갑자기 바윗돌같이 텁텁해지고 딱딱해지지는 않더라도, 둘째의 머릿속에 '왜?', '하필'이라는 단어가 동동 떠나니는 건 아닐지!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고, 잘못한 게 없지만 우리 오빠는 좀 특이하고 가끔 이상하다는 것,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불편해하기도 하고 때때로 피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가끔은 그런 류의 감정에 '화가나기도' 할 것 같다.


휴일에 둘째가 아파서 남매를 끌고 급 응급실을 간 적이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둘째가 원인 모를 구토를 했는데, 이런저런 정황이 겹쳐서 단순 배탈이나 장염인지, 혹은 다른 이슈인지 판단이 안 섰던 상황이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일단 엑스레이를 찍자고 하셨는데, 첫째가 더 난리였다. 놀러가려고 나왔다가 병원에 오니 동선이 꼬여서 난리였고, 엄마가 정신없이 분주하니 불안이 슬슬 올라온 것. 당시 둘째가 두돌남짓이라 내가 납복을 입고 아이를 안고 찍거나 살살달래며 잡고 찍었어야 했는데, 방사선 실에 들어가려니 첫째는 엄마 안떨어지겠다며 그야말로 생난리를 쳤다. 결국 아픈 동생은 낯선 선생님들에게 억지로 잡힌 채 꺼이꺼이 울며 엑스레이를 찍었고, 첫째는 동생을 홀로 방사선실 떠나보내고 엄마의 팔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더랬다. 이럴 때 동생의 마음, 이게 수년 반복될까봐 나는 벌써부터 조마조마하고 저릿하다. 손이 모자랄 때 오빠한테 손이 먼저가는 일이 제법 많다.


엄마 오빠랑 병원갈 건데
얼른 갔다올게
할머니랑 공부하고 있어


신경다양성은 말 그대로 '다양성'의 하나지만, 그럼에도 치료를 꾸준히 받는 첫째. 맥락에 맞는 발화능력을 키우려면 적어도 주2-3회는 꾸준히 치료실에 다니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동생은 할머니와 둘도 없는 베스트프렌드가 된다. 할머니품에 밀어넣고 여차저차 첫째만 데리고 라이드를 나간다는 이야기. 오빠 수업간다고 하면 딸도 따라가겠다고 할까봐, "병원에 간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병원에 갈건데 같이 갈거야?" 물으면 당연히 안 가겠다고, 집에 있겠다고 할 거니까.


"엄마는 오빠만 데리고 다니잖아!” 그 언젠가 따지거나 얼굴 붉히며 눈물 뚝뚝 서운함 토로하면 어떡하지? 미래의 걱정을 먼저 사서할 필요는 없는 거지만, 그럼에도 딸의 마음을 예습하게 되는 날엔 마음이 얼얼하다. "엄마는 오빠 데리고 가야해. 나는 할머니랑 있을게." 똑부러지게 자기상황을 먼저 정리해주는 둘째 마음씨가 서툰 문장에 뜨문뜨문 담기면 내가 더 울 것 같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도, 입국장에서도 예민한 첫째를 챙기는 게 우선순위가 된다. 얘가 난리나면 일이 더 커지니까, 주변 시선이 더 쏠리니까 손을 잡아도 신경다양성 아이부터 덥석 잡고, 젤리 하나를 나눠도 오빠부터 쥐어준다. 내 둘째 아가도 엄마 손 잡고 싶을텐데, 나서거나 조르지 않는다. 오빠를 챙겨야 하는 엄마를 먼저 알아주니 저러다 쌓이고 쌓이면 서운함 폭발하지 않을까 내심 그 터지지 않은, 폭발력 가득 쟁인 포탄에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동생아, 내딸아, 진짜 괜찮은 거야?



우리에게는 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습니다.
세상은 그 아이에게 너무 빠르고
때로는 너무 낯설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장애형제를 돌보느라 늘 바빳고
나는 우리는 스스로 괜찮은 척을 하며 자랐습니다

ㅡ비장애형제 모임 <나는> 전시회 초대장 중 ㅡ


소셜미디어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비장애 형제그룹을 위한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모임 <나는>은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형제를 둔 20대, 30대 청년들의 모임이란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있었는데, 그 초대장 글귀가 마치 둘째의 미래 마음을 읽는 것 같아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더랬다.


아이 둘 다 그 어떤 경계 없이 귀하고 소중할진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손을 먼저 뻗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런 오빠 혹은 언니, 누나, 동생과 오래도록 함께한 비장애 형제는 기꺼이 양보하고 스스로를 알아서 토닥이는 마음 근육이 생긴다. 어린 시절 응급실 에피소드쯤이야 금방 별거 아니란 식으로 잊힐지도 모르지만 늘 뒤에 남겨진 채 다른 손에 맡겨졌던 그 분위기는 오래도록 남아서 분노나 우울로 자라나진 않을까, 이걸 어떻게 해소시켜줘야 할까, 늘 고민한다. 어렵다 정말!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 @nanun_teatime



장애와 비장애아이를 함께 키우다보면, 신경다양성과 평범한 아이를 둘다 데리고 다니다보면, 자폐스펙트럼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동시에 육아하다보면 딜레마의 늪이 점점 꾸덕지고 질척해진다. 어쩔 도리는 없지만 그럴듯한 도리를 찾고 싶은 욕심만 는다. 장애아이도 챙겨야 하는데, 남은 아이도 마음이 부디 괜찮았으면 좋겠다. 이게 가능해?




비장애형제모임을 만든 그 누군가의 마음. 그 그룹에 참여하며 전시를 열고 책을 집필해가는 마음. 둘째가 자라나면 그 마음에 동참해가겠지. "엄마, 솔직히 그 때 엑스레이 찍을 때 날 잡아줬어야지", "아니, 하루쯤은 오빠 수업은 할머니랑 보내고 엄마가 나랑 있어줬었어야지" 말로 토해내지 못한 소소한 서러움, 오빠가 원망스럽다가도 꼭 끌어안아주는 애증, 날잡고 하루쯤은 1박2일 모녀 여행 떠나서 '다받아줘야겠다'고도 살금살금 결심해본다. 그때만큼은 둘째가 하고 싶은 것, 둘째가 먼저할 수 있도록, 맘껏 엄마 독차지 하라고 몸도 마음도 내줘야겠다.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 @nanun_teatime


장애 아이를 키우지만 비장애 형제도 키우는 마음. 신경다양성 아이와 함께 걷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함께 그 여정 이해하며 손잡고 있다는 것. 양 손에 각각 '참 다른 아이'를 쥐고 걷는 것은 어제도 어렵고 오늘도 어렵다. 내일도 어렵겠지만, 이렇게 풀어내다보면 나도 둘째도 괜찮아지는 루틴이 생겨나겠지.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우지만, 신경다양성 아이의 평범한 동생도 키우고 있습니다.


왼쪽이 신경다양성 오빠의 것 vs 오른쪽이 동생의 것. 두 아이가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 다르지만, 오늘도 그 ‘다름’을 쓰다듬고 키워간다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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