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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신경다양성과 미국, 아쉬웠던 Top 5

[25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by 마이 엘리뷰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없다. 신경다양성 아이랑 5년 넘게 살아오면서 느낀 생각 한 줄. 장애 아이와 살아가기에 조금 더 너그럽고 다정한 공간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보다는 미국이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할 것 같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는 듯 느껴지는 인종차별의 장벽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이가 예민한 감각 때문에 고성을 지르거나 예사롭지 않은 짜증을 부리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면 우리의 몸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어디든, 당황스럽고 민망스럽기란 똑같았으므로.


"한국보다는 미국이 낫지 않겠어?"라는 말은 아이를 키우면서 누누이 들어왔던 단골멘트였다. 아이가 신경다양성 아이임을 확진받기 이전에도 작은 땅덩어리보다는 시야를 보다 넓힐 수 있는 대륙이 '정답'인 것처럼 여겨졌다. 아이가 영어를 배워가기에도, 신경다양성 아이가 '장애인'으로 인증받고 살아가기에도, 미국은 파라다이스인 것처럼 소개되고 권장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파라다이스식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미국은 불편하기도 아쉽기도 실망스럽기도 했다. 사진으로 담아보는 이야기 2탄.


도보 거리
상가구경 재미의 상실

첫째 아이는 해 질 녘 산책 나가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총총 걸어 미니상점이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상가로 향하는 게 매일의 루틴이었다. 상가 안에 가면? 편의점도 있고, 빵집도 있고, 김밥집도 있고, 아이스크림집도 있고, 문구점도 있고...? 노래 부르듯이 읊을 수 있는 가게가 줄줄이 들어서있었다. 무인 가게가 늘다 보니 아이랑 눈치 보지 않고 물건구경도 맘껏 하고, 키오스크를 직접 써보도록 하면서 일련의 생활필수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게 일상의 소소한 꿀잼이었다. 약 20분 정도의 동네 산책은 적당한 소화작용에 도움이 되면서도 별거 아닌 생활스킬을 익히는 데 꽤나 도움이 됐다.


미국에 와서는 도보거리 산책 풍경이 싹 바뀌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지만, 집 근처 풍경은 마치 영미문학소설에 등장할 법한 드넓은 초원뷰. 미국 경험치가 있는 지인들이 진작에 말했었지. "미국은 집집마다 인당 차 한 대 필수지 않아?" 총총 걸어 상가 가는 맛에 취해있던 아이는 적잖이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초원을 뛰어다녀도 무인편의점이 나올 리 만무하며,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이 떡하니 반겨줄 리 없으니, 제발 아무 가게나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얘들아, 여기서 아무리 뛰어봐야, 작렬하는 태양 아래 땀만 잔뜩 맺힌단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뛰어다닐래? 쫓아다니느라 급 피로해진 나도 잠깐 쉬어갈 편의점 하나가 매우 그리워져 볼멘소리로 혼잣말. 아흑, 상가 구경하던 재미가 그립다.



이거 먹여도 될까
달디단 음식들의 향연


미국 어느 식당에 가나 '당연히 키즈프렌들리'라고 말했었는데, 키즈 메뉴는 한국 정서에 많이 빗겨있다. 분명히 'Kids Menu' 카테고리에 있는데 "이걸 애들이 먹어도 되는 걸까?" 남편에게 의심스러운 눈총 쏘기 바빴던 날들. 아이들 배고프다고 하면 브런치 가게부터 찾아 들어가기 마련인데 판매하는 음료부터 빵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달아 보이는 것 투성이라 걱정이 앞섰다. 한국에선 카페마다 아기가 먹기 좋은 담백한 간식류가 제법 있었는데 미국의 키즈밀은 알쏭달쏭의 레벨. 눈으로만 봐도 '달콤 달콤'인데 아이들은 씬났지만 엄빠는 걱정된다. 둘째가 유독 유기농 당근머핀을 좋아했는데, '오가닉' 단어만 믿기에는 "와아, 이거 너무 달잖아"


미국에 머물면서 첫째 둘째 각각 페이보릿 푸드가 생겼는데, 이것도 달콤, 저것도 달콤 덩어리. 애플주스와 크라상, 시나몬파우더와 설탕 뒤범벅된 롤브레드와 기름진 오믈렛.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게 하루이틀 눈 반짝반짝 빛내며 먹어보더니 그다음부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애플주스와 크라상을 외쳐대는 아이들. 에라이, 엄마도 모르겠다. 먹어라 먹어!


한국의 위생은
따라올 강자가 없어서

미국에도 키즈카페가 있지만 '위생'의 퀄리티는 기대하면 안 되는 것. 아이들이 몰입하는 흥미의 수준이나 화기애애한 동심의 분위기는 비슷한데 유독 하나 '깨끗한 맛'이 없다. 코로나 시국 때만큼이나 멸균작업을 세밀히 하진 않더라도 다수의 아이들이 오고 갔을 장소를 좀 신경 써서 청소해줬으면 좋겠는 게 한국 엄마의 마음이 건만, 왜인지 '청소를 안 하는 것 같은' 느낌 적인 느낌이었달까!


아이들이 놀고 나오면 손세정제를 치밀하게 치덕치덕 발라주는 게 새로운 루틴으로 자리 잡았는데, 정작 놀이의 주인공 아이들은 한국의 키카든, 미국의 키카든 상관없이 그저 깔깔 모드. 그래 너희들이 좋으면 됐다.


아이의 최애
지하주차장의 부재


신경다양성 첫째는 그야말로 차 덕후다. 한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힐링장 소였더랬다. 지하 1층만 내려가도 각양각색의 차들이 빼곡히 모여있으니까. 아들이 좋아하는 B브랜드, T브랜드, M브랜드, P브랜드... 웬만해선 언제 주차장에 내려가도 빠지는 종류가 없을 정도였다. 자, 그랬던 아들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공간을 옮겨오니 집 근처 마을을 거닐다가 표정이 점점 굳어왔다. 싱글 하우스가 띄엄띄엄 위치해 있는 우리 동네는 각각의 집에 차고가 예쁘장하게 들어차 있곤 했는데, 아들이 원했던 '그 주차장'은 눈을 이리 굴려도 저리 굴려도 안 나오는 거라, 대략 난감.


마을 산책을 거듭하면서 아들은 이웃 각각의 집에 자리한 차고를 유심히 관찰하고 구경하는 것으로 타협하긴 했지만, 워너비 지하주차장의 맛은 아닌 거라 늘 시무룩했던 아들. 자, 우리 미국에서도 그 나름의 '차 덕후' 힐링거리를 차차 찾아가 나가보자고!



비싼 물가에 바들바들
한국 장보기 그리워



미국에도 대형마트는 많지만 타국살이 특유의 맛 '한인마트'의 미학을 내려놓을 수 없지. (수년 전 연재했던 연재글 ; 한인마트의 미학 참고) 어릴 때 먹던 그 까까를 내 아들 딸들도 좋아하는 데다가, 가끔 한국표 떡볶이랑, 한국 라벨 딱 붙어있는 아이스크림도 먹어줘야 하는 거라서. 근데 참 비싸다 비싸. 코로나 시국 이후로 물가가 더 '훅' 오른 느낌이다. 이거슨 느낌적인 느낌이 아닌 것이다. 몇 개 골라 담지도 않은 것 같은데 100달러 넘기는 너무 쉽고, 각 잡고 한인마트 장을 보면 400달러의 벽도 우습게 넘는다. 한 번 장 보는 데 50만 원가량이 되면 이건 아니지 않아요? 한숨만 나오는 장보기 미션.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들어오면 모든 물가가 저렴하게 다가온다면서 마음 편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요즘 핫한 '민생 소비쿠폰' 같은 게 미국에도 뿌려졌으면 좋겠다고 상상해 본다.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 세일이라도 자주 있었으면 좋겠고, 타국살이 동포들을 위해서 꼬깔콘 하나 사면 고래밥 하나 더 얹어주는 인정도 있었으면 좋겠는 거잖아. 과자 한 봉지에 6천 원 내지 7천 원도 넘어서는 잔인한 물가 앞에서, 그래도 아이들이 좋다는 콘칩만큼은 마음을 부여잡고 장바구니에 넣어두는 마음. 타국살이는 외롭고 두렵고 답답한 것인데, 신경다양성 아이의 손을 잡고 살아가는 마음에 물가 걱정까지 얹히면 때론 차갑게 시리기까지 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한숨 탁탁 털어내고 씩씩하게 살아내는 날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씩씩했으니까, 내일도 뚜벅뚜벅 걸어 나갈 거라고 묵묵히 믿어본다.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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