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아이가 신경다양성 세계에 살기 전부터 뜨문뜨문 궁금했다. 미국에서 '차별'을 이야기한다면, 장애에 대한 차별과 인종에 대한 차별, 그 정도 차는 어떠할까. 물론 이 단어 자체를 아예 수면 위로 꺼내지 않는 세상에 산다면야 더 좋겠지만, 구태여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는 단어, '차별'에 대해 얼굴을 붉히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소위 어떤 차별이 더 기세 등등 할지 물음표가 동동 떠다녔다. 워낙 땅덩이가 넓은 나라라 동부, 서부, 남부, 지역에 따라 그 차별을 바라보는 온도도 다를 터였지만, 지극히 단순하게 편을 가르자면 어떤 쪽의 차별이 더 기운 셀 지, 미국에서 나보다 오래 머문 남편에게 종종 질문을 던지곤 했다.
미국에는
인종차별은 있어도
장애에 대한 차별은 없다던데?
내가 아이들과 미국에 체류할 계획을 밝히자, 오랜 지인이 스치듯 던진 이야기. 거주하는 곳의 지역 분위기에 따라 출신 국가나 인종에 대해 예민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에서 살금살금 눈치 봐야 했던 '장애의 유무'에 관련해서 만큼은 너그러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워낙 다양성(Diversity)으로 다져진 나라이다 보니 2025년 현시점에 <인. 종. 차. 별> 네 글자 떡하니 보일 만큼 가시적으로 눈에 잡히는 차별은 없어 보일지 모른다. 다만 사람 사는 동네다 보니 미묘하게, 야릇하게, 차별의 분위기가 느껴질 수도 있는 일상 조각들. 단, 그런 소소한 분위기마저도 장애에서 비롯된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깐 표정이 밝아진 순간이었다. 정말 아이의 장애에 대해서는 눈치 주는 사람도, 힐끗힐끗 쳐다보며 불편해하는 사람도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걸까?
미국에 체류하면서 가장 자주 다닌 단골 카페는 '콩코드 (Concord)'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도심에서 북서부로 쭉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 콩코드는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Louisa May Alcott)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더불어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가 <월든 (Walden)> 을 집필하기까지 실제 월든 폰드에 머물렀던 동네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영미문학의 본고장인 만큼, 동네 입구에만 들어서도 서정적이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폴폴 풍기는 곳이었다. 서울 시내 하나의 '구' 규모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지역이다 보니 언제 들러도 늘 조용한 느낌이었다. 젊은 층의 깔깔거리는 에너지보다는 연령대가 꽤 높은 어르신들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담담한 분위기가 자주 스쳤다. 듣기만 해도 위대한 곳인데 정작 발을 들일 때는 소박하고 자그마해서 자꾸자꾸 마음이 갔던 지역이었다.
집문을 나서면 5분 컷 이동 가능한 거리, 콩코드 위치한 카페를 참 애정했다. "애들 학교 들어가면 등교하자마자 여기 와서 글 쓸 거야!" 세기의 문인들 에너지를 잔뜩 품은 동네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들과 카페 문을 자주 두드렸다. 카페 옆라인으로는 동네 서점이 있었고, 아기옷을 파는 로드숍도 있었다. 젊은 부부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였는데, 아마 손주들 사주고 싶어 하시는 고령인구를 겨냥한 위치선점이었을까. 내가 워낙 콩코드 콩코드 노래를 부른 통에 신경다양성의 첫째고, 그저 오빠 손잡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말괄량이 둘째고, 덩달아 콩코드 중심 카페 단골이 됐다.
솔직히 좀 시끌시끌했던 탓에 카페 매너를 탑재하지 못한 날도 많았는데 늘 인자한 미소로 손 흔들어주는 미국 할아버지가 있었고, 책을 읽다가 한 번씩 '진짜 친손주 바라보듯' 넋 놓고 우리 애들을 봐주시는 할머니 그룹도 있었다. 내가 식기를 정리하기도 전에 뛰어나가버린 우리 애들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카페 출입문을 잡아주며 잠깐씩 애들과 말을 붙여주는 아저씨들도 고마웠다. 단골이 더 '특급 단골'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리 좀 와보세요
애들을 그렇게 보면 어떡해요?
마냥 편안하고 좋기만 했던 콩코드 단골카페에서 눈물바람 일으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갈 때마다 느긋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대단히 '자유로운 몸'이 되곤 했던 아이들,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탓에 불안 불안하다 했는데 결국 마을 할머니에게 제지를 당하고야 말았다. 매의 눈으로 매섭게 쳐다보던 한 미국 어르신에게 소환당했을 때의 기분이란.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데 타국의 언어 뉘앙스 끈 짧은 내 앞에서 길고 긴 영어 훈계를 시작하신 할머니의 눈빛은 날 잡았다는 듯이 강경했다. 한국이라면 주눅 들지 않았을 텐데, 타국이라서 어깨에 힘이 탁 빠졌다.
갓 받아온 내 커피는 훅훅 식어가고 그 와중에도 애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중간 출입문을 여닫고 먹지도 않을 오트밀을 만지작 거렸다가 내려두고, 진열대에 있는 애플주스를 잡았다 내려뒀다가, 자기 세상들 만났다. 네네, 우리 애들이 잘못했지요. 저희 아이가 자폐성 장애도 있어서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응? 근데 왜 나 사과하고 있지? 미국에서 아이들이 좀 정신없게 군다고 고개를 조아린 적이 없는데, 이런 기분 참 생경하잖아?
미국에서 이게 맞아?
동네 백인 할머니에게
각 잡혀 혼나는 기분
결국 최애단골카페에서
울음이 터졌다
콩코드 사랑방 같은 동네 마실카페에서 백인 할머니에게 '센' 훈계를 듣고 있자니 애들 앞에서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어찌나 민망하던지! 근데 애들 데리고 자주 카페 오는 '그 여자' 혼났다는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갑작스레 이쪽저쪽 균일하게 흩어져 계시던 어르신 그룹이 우리 애들과 내 테이블 쪽으로 슬금슬금 모여드신다. 그중 우리 엄마와 가장 비슷한 체격의 한 백인 할머니의 하얀 운동화가 내 시야에 잡혔다. 파삭 파샤샥 걸어서 결국 내 앞에서 서신다. 아까 동년배에게 덜 혼났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또 혼나보라는 신호 같아서 바짝 긴장했는데 순간 또 와락! 안아주신다.
괜찮아요,
그 나이 때 애들은
다 그런 건데
내 손주는 더 심했거든.
그 할머니가 원래 좀 그래
마음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편하게 애들 봐요
영어리스닝이 취약한데 이런 말은 또 흡수가 쫙쫙 되니 신기하지. 첫 번째 할머니에게 느닷없이 소환당해 혼날 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니 뭐라고 리액션을 해야 할지 생각의 끈까지 놓아버렸지 아니한가. 두 번째 할머니의 토닥거림에 참았던 눈물과 서러움이 울컷 밀려터져 버렸다. 한 동안 얼굴 못 본 친정엄마 생각도 나고, ‘내가 왜 내 고국도 아닌 곳에서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우며 둘째랑 혼쭐나며 지지고 볶고 있나?’ 현타가 세게 왔던 것.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전달하니! 내가 좌절했던 것만큼이나 유사한 강도로 '열받아했다'. 왜 왜?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전화해서라도 자기한테 꼭 이야기하란다. "그 사람 레이시스트야!!!"
알고 보니 그랬다. 영미문학의 본고장이다 보니 지역에 관한 자부심이 워낙 견고해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중에는 종종 다양성 지점과 대척점에 계신 분들도 은근히 계셨던 것. 그제야 느낌표가 타다닥 떠올랐다. '아, 우리 애들이 조금 정신없게 굴었어도 백인 어린이 남매였다면 화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혼나서 잔뜩 쪼그라들었던 어깨근육이 비로소 살짝 다림질된 느낌이었다.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라서, 내가 신경다양성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소환된 게 아니라면 대뜸 낯선 땅 낯선 이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오히려 좀 더 나았다.
결국 장애 아이를 품은 엄마로 혼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온 이민자 애엄마로 혼난 날이었다. 물론 우리 애들이 까르르르 웃어대고 도망 다니는 상황 속에서, 그 누구로부터도 ‘아예 안 혼날 수만 있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겠지만! 따지고 보면 혼난 요소에 '장애'는 없었다. 그래서 한결 기분이 나아진 신경다양성 아이의 애미. 미국에는 인종차별은 있어도, 장애에 대한 편견은 오히려 적다는 게 진짜일까? 틈틈이 품어왔던 물음표도 어설픈 직접 체험으로(?) 슬그머니 해결된 느낌이었다.
단골카페에서 친정엄마 같은 백인할머니에게 매달려 돌연 육아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나니 몸도 마음도 턱 하니 퍼져버렸다. 애들을 창가에 앉혀두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멍 하니 에너지를 빼고 앉아있자니, 종종 떠올렸던 비슷한 부류의 질문이 스쳐간다. 나는 ‘힘듦’은 어디에서부터 시동을 거는 걸까? 나는 장애아이의 엄마라서 힘든 걸까, 타국 땅에서 버티고 살아가기가 힘든 걸까, 애가 둘이라서 힘든 걸까, 그냥 원래 육아라는 게 다 비스무레한 결로 따가운 시선 받아가며 힘든 걸까? 지금 나는 애둘 데리고 왜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울고 있나.
다행히 내가 카페에서 울든 말든 이미 각 잡힌 단골카페루틴이 있어서 알아서 음료 챙겨 야무지게 빵력 보여주는 아가들. 아까 엄마가 혼난 탓에 놀랐을까 봐 이 카페 더 안 온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섣부른 고민되시겠다. 소환당하느라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홀짝 들이키며 훅 상처받고 훅 토닥임 받은 지난 수십 분을 차분히 정리해 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도 나도 편하게 웃으면서 외출은 종료하고 집에 갈 수 있을지, 이 단순한 고민도 때로는 이렇게 어렵다. 이 집은 식은 커피도 맛있고 크렌베리 박힌 크로와상도 최애라서 창밖 구경하며 먹다 보니 아까의 우여곡절 금방 잊힌 건 안 비밀.
좋아하는 예쁜 동네에서 펑펑 울어버린 날, 참 아이러니하게도 ‘있어서는 안 될’ 인종차별조차 장애아이 부모에게는 그나마 좀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여전히 인종차별과 장애에 대한 눈칫밥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살아가는 신경다양성 아이의 엄마는 딴 게 아니라, ‘장애’에 대한 차별만 잘 피해도 하루가 꽤나 순탄하다. 우문이지만 둘 중 하나의 차별을 받아야 한다면? 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마 그나마 (소수인 듯) 다수에 대한 차별인지, 지극히 소수를 향한 배제인지 여부에서 마음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나를 질책하는 매서운 눈빛이 장애에서 비롯된 것일 때 서러움 강도가 좀 더 레벨업 되던 걸.
그 이후로 좀처럼 그 단골 카페에 잘 들르지 못했다. 마음이 조금 더 정돈되면 운동화 끈 탄탄히 묶고 애들이랑 폴짝폴짝 뛰어 카페로 향하고 싶다. 콩코드는 온 구석구석이 영감 덩어리 같다고 했던 것처럼 길가가 너무 예쁘다. 봄날의 햇살 잔뜩 받으며 아이들과 또각또각 거닐었던 카페행이 너무 오래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