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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체험 안 가는 게 좋겠어요"

[10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첫째가 만 2세 때 일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에서는 격주로 숲체험을 나갔다. 본격 '숲 유치원'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관은 아니었지만 다달이 지역 부근에 위치한 숲 놀이터로 견학을 나가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으로 진단받기 전이었지만, 아이의 언어나 자조기술 발달이 또래들에 비해 느리다 보니 지시 수행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한 마디로 '느린 아이'. 성장 발달이 느리다고 해서 어린이집에 입소하지 못하거나 뚜렷한 분리 차별을 받는 부분은 없지만, 사실상 엄마로서는 늘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느린 아이 챙겨주신다고 선생님들 손이 한 번이라도 더 가겠구나 싶어서 늘 고맙고 미안했다. 첫 숲체험에 간다는 공지가 뜨고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얘가 숲체험을 나갈 수 있을까?'


어머님, 죄송하지만
숲체험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잠깐 바깥놀이 할 때도
이탈이 잦아서요
'안전'상 걱정이 많이 되네요


'띠링'. 숲체험을 사흘 앞둔 날 담임 선생님이 보내온 알림장이 울렸다. '이따 하원할 때 잠깐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요.' 평소보다 다소 늦은 시간에 도착한 키즈노트인 데다 '뵙고 드릴 말씀' 여섯 글자에 괜히 긴장했다. 느린 아이를 키워가는 마음은 그렇다. '우리 아이가 다쳤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앞서 '같은 반 친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었나', '지시수행이 꼬여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나' 하는 마음부터 덜컥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언어치료나 짝수업을 통해 사회성 훈련을 계속해 덧댄다 한들, 사회적인 상황에서 상호작용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큼직한 이슈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기는 날들이었으니까.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이람.


"어머님, 죄송하지만 OO 이는 숲체험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깐 바깥놀이 할 때도 이탈이 잦아서요." 워킹맘이니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실 테고, 숲체험에 안 대신 원에는 남아서 자유놀이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씀이었다. 숲체험 예행연습 삼아 아파트 단지며, 상가며 바깥 활동을 했었는데 우리 집 느린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 손 잡는 것도 싫어하고, 바깥공기 쐬는 것에 심취하여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뜀박질을 즐겼던 모양. 잠깐씩 동네 한 바퀴 도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해 보겠는데 이 상태로 숲에 데려간다고 생각하니 선생님도 적잖이 숨이 막히셨던 모양이다. 만 2세 친구들 한 학급, 7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이었는데 워낙 연령이 어린 축에 속해 여전히 담임선생님의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 그룹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한숨은 이해할 만했다. "네네, 그렇게 할게요."



숲체험에 가기로 예정돼 있던 날. 별 다른 준비물을 챙길 게 없어서 엄마로서는 간편했다. 끈 달린 물통을 주문했다가 미리 '안 가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신 담임 선생님 덕분에 주문취소를 누를 수 있었고, 벌레퇴치 스프레이도 다시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체험은 안 가도 동생반 친구들이랑 원에 잔류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친절한(?) 배려 덕분에 나는 불편할 게 없었다. 돌봄을 부탁할 다른 식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나는 일하러 나갔다 오는 동선에서 똑같이 등하원 시간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큰 불만도 없었다. 숲체험에 나갔다 온 친구들도 원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고 했고 약 2시간 남짓만 따로 실내활동을 하며 보내는 거니, 아이도 편안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인 나도 밖에 한번 데려나가면 소리에 예민하고, 환경요소에 흥분할 때가 많아서 '신경다양성 아이'라고 본격 인증받기 전부터도 힘든 순간이 많았으니, 가족 아닌 남들은 오죽하겠나! 되려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자동차도 어린이집에 많은데 같은 반 친구들 없으면 혼자 독점하고 놀 수 있으니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씁쓸한 웃음도 지었다. 우리 아이만 타의로 참가하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가도, 이렇게 되뇌려 애썼다. '같은 걸 반복하는 데 워낙 익숙하고 편안해하는 아이잖아. 자연 변수 많은 숲에 가면 오히려 애도 피곤할 거야. 잘 된 일이야.'




예상해두지 못했던 건 아이와 친구의 표정이었다. 등원길에 만난 같은 반 친구 한둘이 끈 달린 물통에 챙 넓은 모자를 멋스럽게 장착했는데, 아이가 색다른 모자가 재밌었는지 "모자? 모자?" 한껏 톤을 높여서 외쳤다. "응, 그래. 친구 모자 진짜 멋있다" 연신 같은 단어만 반복해 대는 아이의 말에 성급히 대화를 받아쳤다. 그러자,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엄마에게 말을 거는 반 친구의 한 마디. "엄마, OO이는 왜 모자 안 썼어요?"


간단한 문장은 척척 구사해 내는 '옛날 한국 나이' 네 살 친구들이 신기하고 기특하면서도, 덩달아 당황하는 친구 엄마에게는 '뭐라고 얘기해 주나' 1초 망설였다. '아이가 지시수행이 잘 안 돼서 숲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대서 안 보내기로 했어요.', '아이가 발달이 느려서 숲체험은 아무래도 무리인가 봐요.' 이렇다 할 답변을 못 찾고 뱅뱅 돌다가 결국 모든 탓을 아이에게 돌리기로 한다. "아,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OO 이는 안 가기로 했어요."


누가 봐도 숲에 나간다고 착장을 더한 친구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있었다. 운동화 끈도 유독 더 단단하게 묶고 나온 것 같아 발끝부터 힘이 톡톡히 들어가 있었고, 챙 넓은 모자가 얼굴을 반쯤 가려도 그 속에서 새어 나오는 미소 한 줄기가 싱그러웠다. '안 가기로 한'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말없이 해죽해죽 웃으면서도 시들시들해 보였다. 같은 반 친구들 아무도 없을 유희실에서 늘 가지고 놀던 자동차만 2시간 내내 굴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그제야 나도 마음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안 가기로 했어요
느린 아이는 매번
컨디션 별로인 아이로 남겨지곤 했다


"오늘 보조 선생님이랑 원에 남아 잘 놀았어요" 점심시간에 찍힌 알림장 사진에서 아들은 예상대로 아무도 독점하지 않은 자동차 장난감을 신나게도 굴리고 있었다. 아이는 무탈히 공간에 머물러있었고 덕분에 나는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지만 아이 얼굴에는 '웃음'이 부재했다. 선생님은 손잡기와 질서 지키기가 아직 미숙해서 야외 활동이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한번 더 설명을 덧붙였다. 과연 무엇이 '안전한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고 곱씹게 되는 날이었다. 자의가 아닌 일로 야외활동을 포기해야 했던 날은 꽤나 고독했다. 아이도 늘 들려오는 친구들의 까르르 소리가 없어서 외로웠을 거고, 나 역시 아이의 숲체험 도전에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적적했다.


우천 시 자체 취소된 것과 겨울철 혹한기를 제외하고는 그 뒤로도 여덟 차례쯤은 숲체험이 진행됐다. 그때마다 느린 아이는 매번 당연하다는 듯이 '컨디션 별로인 아이'로 남겨지곤 했다. 평소에 하는 바깥놀이에서 손잡기나 질서 지키기가 나아지면 숲에 같이 가도록 해보겠다고 전해 들었지만 그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원에 잔류하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발달이 느리면 으레껏 자연을 맘껏 즐기고픈 마음도 주머니에 넣어두어야 하나보다 마음을 접는데 익숙해져 갔다.



그땐 몰랐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숲을 좋아하는 아이였을 줄은. "숲체험 안 보내는 게 좋겠다"는 권고 혹은 주의를 들은 뒤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집 느린 아이는 그야말로 자연주의 보이. 좋아하는 점핑 키즈카페와 자연놀이터를 고르라고 선택지를 주면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이 있는 쪽을 택하는 아이일 거라고 상상도 안 했더랬다. 자동차에 푹 빠져 있어서 자동차 옆 라인만 봐도 온갖 자동차 브랜드와 세부 라인까지 정확하게 읊어대는 아이니까 '차'와 관련된 장소가 아니고서야 어딜 가나 겉돌 게 뻔하다고만 짐짓 판단해 두었던 거다. 신경다양성의 첫째 아이와 비장애 형제인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숲길을 거닐 때면 아이들은 그 어떤 순간보다 많이 웃는다.


루틴이 꼬이거나 감각적으로 유독 예민한 날이면 오후 늦게라도 아이 둘을 꾸역꾸역 데리고 자연 놀이터로 나간다. 자연 놀이터라는 게 거창해 보이지만 별게 아니고, 우레탄 표면이 아닌 흙을 밟을 수 있는 놀이터. 그리고 그곳에 다다르기까지 강아지풀이나 민들레홀씨를 만지작 거리며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시간을 훌훌 보낼 수 있는 곳. 의도치 않게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 날이든, 시각청각적 감각이 너무 화려한 몰에 오래 머물다가 온 날이든, 이쪽저쪽 잔뜩 예민해져 있기 마련인데 한 단계 업 되어있는 감각과잉 상태가 살살 낮춰지는 효과가 있달까.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들이댈 준비는 안되어있지만 6년 차 신경다양성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눈빛과 몸짓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공간에 가야, 신경다양성 아이가 편안해질 수 있는지, 아이의 발달을 위해 어떤 공간이 정말 '안전'한 건지.


어떤 공간에 가야
신경다양성 아이가 편안해질 수 있는지
아이 발달을 위해 어떤 공간이
정말 '안전'한 건지

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선생님께 말씀드려보고 싶다. 발달이 느리고 지시수행률도 평균치 아래지만 숲에 한번 도전할 기회를 달라고. 아이가 숲에서 대열을 이탈할까 봐 '안전'이 걱정되신다면, 하루 엄마 선생님으로 따라갈 기회를 달라고. 아이가 분리되어 혼자 유희실에 남아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는 단 한 번이라도 함께 자연을 느낄 기회를 주는 게 더 '안전'한 것 아닐지 꼭 되묻고 싶다.


그땐 나도 미처 몰랐다. 신경다양성 엄마로 땅땅 도장 찍기 전 초보 거북맘이라 새로운 공간으로의 도전은 영영 겁먹고 뒤로 내빼야 하는 영역인 줄만 알았다. 숲체험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비장애 형제인 둘째가 오빠만큼 자라나면 언젠가는 참가할 수 있겠구나 짐짓 기대했다. 장애 오빠, 비장애 동생 둘이 나란히 손잡고 숲길을 누리는 모습을 뒤따를 때마다 정기적으로 원에 잔류해야 했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자연 속에 느린 아이가 끼지 못한 이유. 컨디션이 안 좋은 적이 없는데 '컨디션' 따위를 운운하며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합의해 버린 어른들.


도심 속 어느 곳에서의 산책보다도 장애, 비장애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은 무한 편안해진다. 점핑 키즈카페에서 쉼 없이 흐르는 케이팝에도 환장하는 애들이지만 실은 무해한 새소리에서 찐 힐링하고 있는 걸 테지. 주말만 되면 번쩍번쩍 오락기기 있는 키카도 가고 싶어 하지만, 신나게 놀고 나서도 마무리는 흙 만지고 풀 만지면서 유해한 감각을 씻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마치 1차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굳이 끝끝내 2차 3차까지 회식 루틴 길게 가져가는 부장님 같잖아.



무해한 새소리에
찐 힐링하는 걸 테지
흙 만지고 풀 만지면서
유해한 감각을
씻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의 신체 구석구석 자연과 맞닿는 면적이 늘수록 편안해하니, 자꾸 길어지는 아이들의 놀이 루틴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아니, 2년 전에 이미 타의로 숲체험을 거절당했으니 자연을 한번 느끼고 싶다는 아이의 에너지를 거절할 명분도 없다. 그렇게 오늘도 핸드폰과 TV 전원을 끄고 운동화를 챙겨 신는다.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유독 그 격차가 최소화되는 지점이 바로 자연이라고 믿는다. 풀을 쓰다듬는 손길, 나무를 보고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눈빛에는 성장발달의 차가 없다. 유일하게 아이 둘이 하나가 되는 지점. 신경다양성 아이와 신경다양성 아이를 오빠로 둔 아이가 치유하는 공간. 덕분에 엄마도 덤으로 힐링하는 공간. "얘들아, 내일은 숲체험을 가는 게 좋겠어."

"얘들아, 내일은 숲체험에 가는 게 좋겠어"
이렇게 좋아하는 줄 미처 몰랐잖아. 자연 속에서는 표정과 몸짓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아이들. 덩달아 나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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