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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을 벗고 맨.발.효.과

[11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머리가 어질어질한 월요일이었다. 아침 공복에 딱히 혈당이 치솟은 것도 아니요,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현기증이 나는 것도 아닐진대, 이상하리만큼 머리가 '저린'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다리를 무심히 깔고 앉아있다가 오랜 시간 후 일어나면 특유의 저릿저릿함에 한참 벽을 잡고 비틀거리곤 했던 느낌이었다. 차라리 모의고사 문제집에 푹 파묻혀 지냈던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이라면, "공부를 많이 해서 그렇구나" 셀프 칭찬이라도 해주겠는데 내가 어제저녁 짚은 활자라고는 아이들 스토리북밖에 없지 않았던가. 이리저리 휘적휘적 둘러봐도 딱히 핑계 댈 거리가 없다. 결국 한밤에 쓱쓱 돌려보던 무수히 많은 숏폼 녀석이 주범이었다. 나도 모르게 1시간을 훌쩍 넘겨 숏폼을 넘겨댄 내 손가락을 탓해야지. 어쩌겠나!


아이 등원길에 최대한 몸을 쭉쭉 펴봐도 이상하리 만큼 찌뿌듯했다. 머리를 저릿저릿하게 만든 주범이 '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갑자기 어젯밤 내내 한 몸이 되어있던 핸드폰마저 꼴도 보기 싫어졌다. 몸이 좀처럼 무겁고 풀리지 않을 때 목욕탕에 뜨뜻한 물에 푹 담그고 나면 나아지듯이, 왠지 이 상태를 '봉인해제' 하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매일 습관적으로 깨우고 터치하고 스와이프 하던 몸짓과 정반대의 무언가를 절실하고 싶어졌다. 매일 하지 않았던 몸짓으로 어제의 찌든 몸짓을 '박박' 닦아내고 싶었던 마음. 갑작스럽게 머리를 굴리다가 한 가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친정엄마를 향한 다급한 외침 "엄마, 나랑 오늘 맨발 걷기 하러 갈래?"


돌연 '맨발 걷기'라니! 디지털 기기에 찌든 몸짓과 저릿한 머리 감각을 풀려면 왠지 디지털의 d 글자 하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정반대 성질의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핸드폰이고 노트북이고, 태블릿이고, 그 어떤 스크린도 두드려 깨우고 싶지 않을 만큼 머리가 지친 날이었으니 오죽하겠다. 단지 머리만 찌들었을까. 분명히 졸렸던 것 같은데도 어두운 곳에서 밝은 빛의 숏폼자극을 쉴 새 없이 받아내느라 눈 주변 근육도 얼얼했다. 디지털기기에 목 메지 않던 세상에 했던 일련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요즘 같아선 AI 앱을 켜지만, 한 때는 '산책'을 했었지. 초록 잎사귀 보면서 걷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생겨난 화도 가라앉고 오돌토돌하게 정리되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돌멩이도 굴려보곤 했다. 그러면서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최대한 날 것의 산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본능적 결심이 '맨발 걷기'에 다다르게 된 이유.




엄마는 마음이 복잡한 날 종종 안산으로 향한다고 했다.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지하철을 타고 굽이굽이 꼭 거기로 갔다. 안산 자락길은 서울 도심 마주하는 둘레길로도 유명했는데 그곳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다는 엄마가 내심 궁금했다. 디지털에 찌든 내 몸 구석구석의 때를 벗겨내기에 '최적'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온갖 디지털 장비에 길들여진 몸짓을 하루만이라도 당차게 벗어던져보고 싶었던 마음. 맨발이 질척한 황토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지, 질감과 온도를 살피는 데 정신을 쏟다 보면 핸드폰 스크린을 쳐다볼 정신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내 몸이 쓰는 섬세한 근육과 몸 구석구석이 알게 모르게 맞닿고 있던 자연에 올곧이 몰입하고 싶었다.


황톳길을 향해 가겠다고 맘먹은 그날만큼은 늘 고집하던 하이힐을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대신 착 오랜만에 꺼내든 버건디색 운동화. 아이 둘 육아에 정신이 없어도 결혼 전부터 즐겨 신은 구두를 완전히 포기 못하겠어서 꾸역꾸역 신어왔던 터였다. 흙을 아직 정식으로 밟지도 않았는데 나를 옭아맨 하이힐에서 한 층 내려온 것만으로도 해방감 가득한 호르몬 차라락. 이날만큼은 그 어떤 스크린도 보고 싶지 않아서 - 심지어 내비게이션스크린을 보는 것마저 싫어서 - 기어코 차를 놓고 전철을 타겠다고 했다. 비상연락을 대비해 폰은 가져가긴 하겠다만, 웬만하면 스크린을 안 보겠다는 모처럼의 마음가짐에 금이 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전철 안에서 볼 종이책도 살뜰히 챙겼다. 이 정도면 갑분(갑자기 분위기) 황톳길을 걷겠다는 초보 맨발러 준비 완료!



앗, 차가워!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탓에 황토에 첫발을 내디딘 오른발에 찌릿함이 느껴졌다. 황톳길 걷겠다고 와서는 운동화 벗어내는 속도며, 두리번두리번 눈치 보며 '진짜 얼마나들 벗고 걷는지' 살피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나 맨발 걷기 초보예요' 광고하는 모양새다. 하이힐 벗고 운동화로 한 계단 내려와서는 해방감이 촤라라 전해졌는데 운동화마저 벗고 양말까지 집어던지는 게 맞는지, 이 길을 진짜 아무것도 없이 걸어낼 수 있는 건지 아리송해진다. 멈칫거리는 초보 곁에서 이미 흙밟기에 능숙한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한 마디씩 던지신다. "이거, 진짜 몸에 좋아요. 나 이거 매일 나와서 하고 있다니까"


차갑고 딱딱했던 흙도 볕이 꽤나 좋은 지대로 나가면 따끈하고 질척거렸다. 그새 싸늘해진 가을바람 탓에 황톳길 걷기엔 '최적의 타이밍이 지나버렸나 봐' 실망했던 것도 잠시, 발바닥에 제법 끈적하게 달라붙는 흙의 자태가 반가웠다. 정확히 해두자면 '반가움'이 아니라 '신기함'이겠다. 일전에 딱히 해본 적도 없으면서 질척하고 끈적하게 달라붙은 황토가 반갑다는 말이 먼저 쏟아진 건 아마도 자연을 느끼는 감각이 그리웠던 덕분일까. '그래, 흙길은 이맛이지' 감탄하는 초보 맨발러 (아니, 자주 해봤냐고요). 인생 처음 느끼는 '찐한' 생경함에 짜릿함이 번진다. 황토라면 다 같이 물컹하고 진득한 질감일 줄만 알았지, 이토록 자연이 흐르는 모양새에 따라 흙의 온도도 달랐고 발에 와닿는 느낌마저 층층이 달라질 줄이야. 어르신들은 '몸에 좋다'는 말을 마치 요즘 MZ세대가 입에 달고 사는 축약어나 유행어처럼 계속 읊어댔다. "네네, 좋은 것 같아요"


황톳길 초보에게 좋은 건 따로 있었다. 맨발 걷기가 덜 익숙한 1인은 정말 '흙'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와, 진짜 신발 벗고 걸어? 여기서?" 일상에서 살에 흙 닿을 일이 도대체 얼마나 있겠는가. 이 낯선 광경은 디지털 기기 스크린에 눈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어깨에 맨 묵직한 백팩 저 깊숙이 핸드폰을 넣어두어도 자꾸 뒤적뒤적 찾을 만큼 심심할 틈이 없었던 것. 평일 오전 11시에 늘 찾아오던 그 어떤 육아용품의 특가 알림도, 낮 2시에 뿅 나타나고 하던 아이 어린이집의 알림장 업데이트도 궁금할 틈이 없는 온도와 질감이었다. 디지털 기기에 마치 절여진 것 같던 느낌이 갈색 빛 흙 아래 차곡차곡 깔리는 느낌. 그제야 비로소 '해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많은 숏폼을 보다가 지쳐버린 머리를 또 다른 스크린 알림과 새로운 영상으로 뒤덮기 일쑤였지 않았나. 진짜 디톡스가 가능한 풍경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 놀이터 간다고 할 때도 또각또각 '하이힐'을 고수하는 엄마이곤 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흙을 파고 토닥토닥 거리는 틈에 나는 옆 벤치에 앉아 모바일 핫스팟이라도 켜서 미처 마치지 못한 업무를 찔끔찔끔 끌어들여 완료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내 일을 다 젖혀두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상징이 '하이힐'이기도 했고. 한 마디로 그 놀이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살구빛 스타킹과 굽 높은 구두였다. 애들은 흙판에서 놀고 있는데 굳이 와이파이도 없는 영역에 디지털 세상을 옮겨 심는 엄마. 아이들과 벽을 세우고 일처리 하는 모양새가 내심 찔리면 핸드폰 스크린을 두드려서 '찰칵찰칵' 인증샷을 찍는 엄마, 여기요.


어쩌면 놀이터 최악의 민폐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친구한테 흙 뿌리면 안 돼" 잔소리하면서 정작 아이들이 자연 감각을 채우는 공간에 끊임없이 재를 뿌리는 셈이었다. 가수 백아연이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라고 별것 없던 썸남에게 일침을 가했는데, 내가 그런 말 듣기 딱 좋은 엄마 아닌가.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아이들 흙 놀이하는 틈에 굳이 인터넷 신호 잡아서 일할 거면 데려가질 말지. 자연 놀이터 가서 놀자고 제안하고서 하이힐 신을 거면 그러질 말지. 인공적인 그 무언가를 가미하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의 몸짓을 내뿜어야 하는 공간에서 나는 내 것을 아무것도 놓아버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무장한 엄마였으니 얼마나 볼썽사나운가. 놀이터에 머물던 엄마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까치눈을 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친구한테 흙 뿌리면 안 돼
잔소리하면서
아이들이 자연 감각 채우는 공간에
끊임없이
재를 뿌리는 셈이었다



황토의 효능은 일일이 정독해두지 못했지만, 공부하고 걷지 않아도 '치유'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은퇴하신 지 얼마 되지 안 된 것 같은 노부부가 부창부수로 '좋다'를 번갈아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는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여정이었다.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황톳길 곁으로 펼쳐진 나뭇길의 초록초록함은 내게 와이파이 흔쾌히 내어주며 디지털 세상으로의 입장을 돕던 스타벅스의 초록빛 사이렌보다 짙었다. 발바닥에 탁탁 와닿는 밝은 갈색톤 흙은 갓 내린 드립커피만큼이나 '신선함' 그 자체로 다가왔으니 그 어떤 고급진 신상 스벅보다도 그린과 브라운의 콜라보를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황토 알갱이를 발바닥으로 살살 굴릴 땐 마치 커피 알갱이가 연상돼 흠칫 카페인 충전욕이 일었는데 모바일 기기 딱 쥐고 습관적으로 마셔대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도 날 '번뜩' 깨워주는 느낌이 산뜻했다. 이쯤 하면 누가 세세히 작정하고 곁에 앉아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거였다. 갓 은퇴하신 것 같아 보이는 노년 부부가 번갈아 '이거 정말 좋다'고 강조하지 않아도 끄덕일 만한 경지였다. 어디서든 네트워크를 잡아 핸드폰이든, 랩탑이든, 디지털 기기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던 내가 완벽하게 그것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니 발에 뭐라도 찔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세균감염되면 어떡해", "그거 굳이 왜 하는 거야" 프로걱정러였던 딸이 오늘은 잔소리 쏙 넣어두셨으니 친정 엄마의 표정도 사뭇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똑같이 딸을 낳아봐야 나 같은 딸을 이미 낳아 키운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했던가. 기분이 잿빛이 된 날, 엄마가 황톳길을 찾곤 했던 루틴도 똑같이 따라 해보고서야 끄덕일 수 있었다. 마흔 지점까지 살아보니, 어른들이 하는 어떤 조언에는 늘 '알맹이'가 있다. 라떼 잔소리라고 하기에는 늘 알차고 귀한 조언이 있기 마련인데 황톳길에 와보니 그 알맹이 천지다.


물론 그날의 맨발효과가 수십 시간 작동하지는 않았다. 황톳길에서 나와 숲길을 자박자박 걷고 난 뒤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아이 하원시키러 가는 동선을 살피고, 아침에 확인 못한 수많은 알림 릴레이를 뒤적였으며, 잠시 내려둔 업무처리를 위해 클라우드 카테고리를 터치터치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홀로 의지를 다져봐도 결국엔 디지털 기기 샤워를 완벽하게 면치 못하는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7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이힐에서 한 계단 내려와 황토 속으로 발을 집어넣었던 특유의 '쾌감'은 잔상이 꽤나 진했다. 맨발효과가 영구적일 수 없다면, 그 '빈도'를 높이는 게 똑똑한 차선이겠지. "이거 좋아요, 진짜 좋아요" 노랫말처럼 곁들이던 어르신들의 황톳길 여정에 자주 찾아가 볼 생각이다. 마음도, 뇌도, 디지털 기기가 내뿜는 수많은 콘텐츠에 가차 없이 절여진 것 같은 날엔 그 끈적한 갈색더미에 발을 담가 일시적인 해독을 꿈꿔봐야겠다. 모바일 네트워크와 반짝거리는 스크린 없이도 지루할 새 없는 공간. 자연광과 발랄한 초록빛, 경쾌한 갈색에 그 어떤 조명 좋은 카페보다 힐링 제대로 체험하는 날 것의 영역. 그렇게 하이힐을 벗고 누리는 맨.발.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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