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그만두고 34가지 일상기록-17] 보스턴에서 첫 돌발변수
악몽을 꿨다. 결혼식 당일이었는데 이럴수가 이럴수가. 내가 미처 결혼식장에 확정 연락을 해두지 않은 거였다. 당장 낮에 식이 시작인데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다니, 양가 어르신들과 친구들은 내가 말해둔 식장으로 이미 출발하려고 집을 나서고 있다고 했다. 급히 결혼식장에 전화를 해서 오늘 결혼할 신부인데 자리가 있느냐고 애절하게 물었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하니 휴, 안심... 그런데 나 역시 준비를 부랴부랴 마치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5시. 엇? 나 낮에 결혼하는 거 아니었나? 그럼 사람들은 이미 낮에 다 다녀갔나.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저녁에는 식장이 문을 닫아버리면 어떡하지. 진작에 철저하게 계획을 확정했어야 했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한참을 되뇌다가 '번쩍' 눈을 뜨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결혼식장을 확정해 두지 않은 신부의 이야기'는 꿈 속의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었다. 휴, 다행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결혼한 지 8개월차에 접어든 미국 새댁이었고 결혼식은 새해가 되기 전 무사히 잘 마무리 된 터였다. 어쩜 이런 꿈이 다 있을까. 주섬주섬 새벽잠을 깨우며 단단히 결심했다. 아! 역시 정말 계획을 잘 세우는 건 중요해. 오늘도 계획대로 잘 움직여야지. 즉흥적이지 않고 최대한 정갈하게 하루를 보내줘야지.
오늘도 계획대로 잘 움직여야지
즉흥적이지 않고
최대한 정갈하게 하루를 보내줘야지
아침 6:35A.M.예기치 못했던 열차 사고. 역시 삶은 마음대로 흘러가 주지 않는다. 계획성 있는 하루를 보내고자 다짐했지만 1시간 만에 그 다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와장창 무너져내리고야 말았으니. 매일 해오던 대로 6:25A.M. 앤도버 역_Andover station 도착. 보스턴 중심가로 나가기 위해서 매일 커뮤터레일_Commuter rail을 타고 보스턴 노스스테이션_Boston North station 까지 간다. 한국에 빗대자면 하남, 성남 쯤에서 명동으로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려나. 중간 정거하는 역이 없으면 30분 정도가 걸리고 정차하는 역이 많은 경우에는 40분 정도 걸리는 열차다. 10년간 계속해 온 저녁 뉴스 <뉴스데스크> 앵커로서의 역할을 덜어내고 나서부터는 워낙에 아침잠이 없어진 터라 미국에 와서도 수업이 있든 없든, 늘 일찍 집을 나서서 공부를 하러 나가고 있다. 자그마치 5개월을 반복적으로 같은 시간대 열차를 탑승했으니 그 시간대 타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도 꽤 많이 친해졌을 정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가 승무원과 반갑게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객실에 앉았는데 사고가 터졌다. 간발의 시간차로 기차를 놓치거나 기차가 15분 정도 늦게 온 적은 있어도 중간에 '턱' 멈춰선 건 처음이었다. 동시에 숨도 '턱' 멈춰버린 난감한 순간. 내가 사고의 현장에 있다니!
출발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생긴 일. 다음 역으로 가기도 전에 '끼루룩' 소리를 내면서 거칠게 '휙' 서버렸다. 보스턴 T전철이든 통근열차든, 워낙에 가다 서다 하는 경우가 잦아서 '뭐, 옆에 더 빠른 기차가 지나가는 걸 기다려주는 건가보다' 생각했는데 뭔가 뻑뻑한 느낌이 심상치가 않다. 정차했다고 표현하기에는 워낙 난폭했고 예정되지 않은 느낌의 '멈춤'이었다. 낑낑대면서 레일 위를 구르려고 몇 차례 시도를 하시는 거 같기는 한데, 굉장히 힘겨워보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곧 이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몇몇 승무원들이 내려서 선로를 걸어다니며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고 몇 차례 차에 시동 걸듯이 부르르부르르 기차 작동에 신호를 넣어보는 것 같기는 했는데 영 움직일 기미가 없다. 침착한 척하고 있긴 했는데 손끝과 발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파르르 전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보스턴 내에서 탈선사고 소식이 꽤나 자주 보도되던 요즘이었다. Derailment accidents 기사를 신문에서 접할 때마다 "어머 어떡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모든 사고가 그렇듯, 딱히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로 레드라인_Red Line 열차에서 자주 발생하던 사고라서 '상대적으로' 덜 노후한 커뮤터레일은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했던 차였는데 왜 불길한 예감은 빗겨가는 법이 없나. 설상가상. 하필 인터넷이 안잡히는 구간에 멈춰서다니. 혹시라도 큰 일이 생겼을 때 SNS나 메시지앱으로 나의 근황을 전할수 있는 경로가 사실상 막힌 셈이었다. 구글맵조차 잡히지 않으니 속이 탔다. Andover역에서 그 다음 역 Balladvale역까지 달리는 구간만큼은 요상하게 인터넷이 안 잡힌다. 와이파이며, LTE며 뭐 아무것도 적용되지 않는 공간. "거기 누구 없어요?" 외치기도 쉽지 않은 영역.
아아, 이렇게 예기치 못한 재앙이 닥치면 모두 '하나'가 되는 법인가. 나도 모르는 새, 그 어떤 동지애가 샘솟는 느낌이 생겨났다. 미국에 살면서 한 가지 늘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뭔가 우스꽝스러운 silly한 상황이 생기면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다같이 친구가 되는 것만 같다. 무겁지 않은 '단결력'이라고나 할까. 뭔가 투쟁과 항의의 정신으로 함께 뭉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분위기로 물들어서는 서로서로 위안이 되어주는 느낌? 물론 나라 대 나라, 민족 대 민족으로 대결구도를 세울 것은 절대 아니지만서도, (그냥 문화와 분위기가 다른 것에 불과한거지만) 내 나라에서는 대부분 느끼지 못했던 상황과 분위기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상황들이 그러했었다. 늘 똘똘뭉치고 하나가 되고자 할 때는 '투쟁'을 해야만 할 때였고 무언가를 향해 항의하고 격분하며 싸워야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였기에 말이다.
"뭐 이런일이 다 있어. 인생이란" 피식피식 껄껄. 가볍게 KFC할아버지 미소를 건네며 서로 껄렁껄렁 대화를 주고받는다. 열차 사고처럼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들이 생길 때, 이를테면 말도 안되는 누군가의 실수, 서비스 불만족상황, 괴기한 날씨 등등, 다들 그냥 어이없다는 듯 가벼이 웃으면서 곁에 마주한 학생들, 아저씨와 아주머니와 두루두루 눈웃음을 주고받고 친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니마음 알지' 속마음도 자동으로 전달되는 듯.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그 껄껄행진에 무심하게 툭 동참하면 그만인 거지. 격분하거나 짜증을 부린다거나 심지어 직원에게 항의를 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정말이지 6개월 동안 단 한번도 못봤던 것 같다. 결국에 '이슈를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 과정에서 본인이 당한 억울함에 '한'을 품지 않는다. 뭐 열차타다보면 그럴수도 있지. 단,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라고 묻는다. '어떻게 나한테 기차당국 당신네들이 이럴 수가 있어?' '도대체 왜 나에게 기차사고 같은,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서정연했다. 그 누구도 상황을 불평하지 않았고 짜증내지 않았다. 조금 '불편해졌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일단 다들 향해가는 목적지, 예정된 약속들을 조정하기 위해 '전화기'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을 뿐이다. "열차 사고가 났어요. 좀 늦게 도착하겠는데 괜찮겠나요?" 울분 섞인 목소리도 화가 들어찬 톤도 아닌, 그저 그냥그런 팩트 전달. 상황 끝. 기차사고를 만났다고 해서 go crazy하지 않는거다. 무려 1시간이나 열차 객실 안에 갇혀있었음에도 !!! 익숙했던 내 동네에서라면 한 두명쯤은 시끄럽게 항의를 했을 것도 같은데 조용조용 평온했다. 예전 같았다면 성격 불같은 나 또한 당장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홈페이지 접속해서 항의글이라도 쓰고 "어떻게 이렇게나 중요한 출근 시간대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까" 개선을 촉구하는 무언가의 행동을 해야하나...생각했을 법도 한데 다들 평온하니, 나 역시 동요하지 않게되는 전염효과가 있었다. 혹시나 혹시나 열차에서 결국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가방안에 '먹거리가 있는지 여부'를 쓱 살피기는 했다. (다행이군. 초콜릿 몇 개를 가져왔으니 장시간 이 상황이 이어져도 혈당이 떨어지지는 않겠구나) 이건 굉장히 중요하니까.
미국에 와서 살면서
그 어떤 '낯섦'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처음이었다.
"빨리 가는 것보단 안전한 게 낫잖아요"
매일 마주쳐서 어느새 친숙해진 승무원 아주머니께서도 이렇게 입을 떼셨다. 불편을 초래해서 너무 미안하게 됐지만 그래도 '안전'한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고. 모두가 끄덕끄덕거렸다. 최대한 철저히 점검해보고 다시 출발하겠다고. 맞는 말이었다. 빨리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건 억울한 돌발 변수였지만 뭣보다 중요한 건 '죽지 않고 살아서' 잘 도착하는 일이니까. 어느 정도 괜찮아졌나...? 싶은 상황 속에서 승객들이 들끓으며 '빨리 안가냐'고 항의한다고 해서 안전이 확실하지 않은 채 출발을 감행해서는 결코 안 될 일. 적당히 괜찮은가 싶어서 그럭저럭 감행했던 일들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던 경우들을 한국에서는 너무 많이 지켜봐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1994) 봤던 성수대교 사고, 3학년 때 (1995) 봤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그러고도 나이가 들어 서른 살이 훌쩍 넘도록 그치지 않았던 릴레이 사고 소식들. 어린이 시절, 당시 1년에 한번은 꼭 대형사고가 터져야 하는 건가보다 하고 진지하게 믿기에 이르렀었다. 느리게 정상복구 되더라도, 아무리 긴 시간 갇혀있어야 해도 아무도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던 풍경은 다소 생경했지만 그 '낯선 풍경'덕분에 정말이지 안심되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그 어떤 '낯섦'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처음이었다.
"조금 뒤에 다음 열차가 잠깐 정차할 거니까 그 쪽 열차로 옮겨타면 돼요"
누구도 먼저 일어서려 하거나 분주히 짐을 챙기는 모습은 없었다. 의아하리라싶을 만큼 차분했고 조용했다. 모두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성격 급한 내가 가장 먼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마치고 열차 객실 출입문 앞에 줄을 섰다. (방송에 늦는 것도 아니고 정각에 출근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성격 탓이다) 늦게 다른 사람들 따라 천천히 줄을 서도 될 것을, 괜한 조바심에 후다닥. 내 뒤로 차례차례 내릴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뒤따라 열을 이어갔다. 이어서 '끼익' 소리와 함께 다음 스케줄에 맞춰 운행되고 있던 기차가 메사추세츠 어딘가 자갈밭 선로에 멈춰섰고, 나를 포함 갇혀있던 승객들이 순서에 맞춰 기차에 하나씩 옮겨탔다. 특정 역에서 기차를 옮겨타는 게 아니다보니 승하차를 해야하는 길은 그야말로 날 것의 길바닥이었고 오르내려야 하는 계단의 경사도 험했다. 누군가 혼자 서둘려고 하다가는 정말이지 다치기 십상인 딱 그런 공간. 서로서로 손을 잡아주며 천천히 안전하게 이동했다. "어쩜 이런일이 있네. 괜찮아 그래도 almost Friday잖아" 하는 가벼운 대화들이 예민할 수 있는 상황의 까칠한 공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을 뿐.
꺼이꺼이 너털웃음들이 날아드는 가운데 전원 이동완료. 사람이 꽤 많아서 시간 많이 잡아먹겠다 싶었는데, 누구하나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사실상 10분 안쪽의 시간만이 소요됐다. 가장 먼저 첫 줄에 서서 이동하려고 눈치 살피고 서둘러 걸음을 뗀 내 몸짓이 머쓱했을 정도로 모든 게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너만 바쁘냐 나도 바쁘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신경질 부리지 않아도 예기치 않았던 기차사고는 큰 말썽 없이 마무리가 되더라. 다행이면서도 신기했다. 사고가 또다른 사고와 트라우마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는 그저 단순한 '해프닝'에 머물며 끝나버렸다. 이건 가히... 기분좋은 충격이었다. 어림짐작 2백여 명은 넘을 것 같은 승객들을 태운 기차였고, 사고가 있었고, 1시간 동안 객실에 그 모두가 갇혀있었고, 그 다음 도착하는 열차에 옮겨탈 때 이미 그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까지 생각하면 500여 명 정도가 불편해야했던 상황. 그 누구도 '화를 내지 않다니' 그 누구도 '억울해하거나 한을 품지 않다니'. 분노하며 들끓는 분위기에 익숙했던 내게는 너무나 평화로웠던 '컬처쇼크' 그 어느 7월의 아침.
What if 만약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커뮤터레일_Commuter rail의 예기치 못한 열차 사고에 대해 짜증을 부리거나 난동을 부렸다면? What if 만약 그 어떤 사람이 나 회사에 늦어서 상사랑 싸우면 책임질거냐고 직원에게 보상대책부터 따져물었다면? 그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분노'했다면? What if 만약 옆자리 말쑥한 비즈니스맨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일그러진 채 '이런 망할 기차같으니라고' 하고 한 시간 내내 투덜거리고 있었다면? 와우, 진짜 상상만 해도 힘든 1시간이었을 게 뻔하다. 내가 처한 공간의 분위기, 옆 사람의 에너지는 분명히 내 기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니. 어차피 내 힘으로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들끓지 말고 침착해질 필요가 있는 것을!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나는 '화'를 내고 '성급해야만 하는' 분위기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던 게 분명했다. 가끔은 그냥 실실 웃으며 silly한 상황을 슬렁슬렁 넘겨보려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여유' 하나 더 챙길수 있다면 더 좋겠고. 멈춰선 열차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야 할 때 손잡아주던 할아버지의 손길이 어찌나 따스하던지.
다시 그날의 아침으로. 악몽에서 깨며 단단히 계획성있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했건만 예기치 않은 '변수'는 언제나 예고 없이 다가오고야 만다. 친절하게 안내해주지 않고 덥썩. 아주 거칠고 얄미운 모습으로. 미국에서 마주한 첫 사고, 돌발변수 열차사고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가치에 대해 돌아봤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연'과 '여유'에 대해서. 예기치 못한 사고 앞에서 나는 얼마나 덜 성급해질 수 있고 덜 동요할 수 있을지, 같은 상황을 대처하는 낯선 사람들의 몸짓을 바라보며 내 자세와 몸짓을 생각했다. 어쨌든 그날 아침, 이래저래 거의 3시간동아 기차에 머문셈이 되었지만 안전했으니 됐다고 위안했다. 또 한 가지, 아무리 늦어도 생방송에 늦을 걱정, 이따 뉴스를 누구에게 부탁하나 대타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신분임이 됐음에 신기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해외에서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고에 또 노출될 지 모르지 물과 초콜릿은 언제나 챙겨두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스레 적어두었다. 조금 넉넉히 챙겨다녀야지. 곁 할아버지에게 초콜릿과 물 나눔을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여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