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우 Jan 15. 2020

나는 펀드매니저입니다

1-1. 매일 소설쓰는 사람들, 펀드매니저

저는 펀드매니저입니다.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와 돈 많이 버시겠네요, 어디에 투자해야하나요 등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기본적으로 돈은 많이 벌겠구나 이런 느낌을 주나보다.


입사 초기에 나는 내 직업이 펀드매니저라고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


어느날 모임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 나는 또 습관처럼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래서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저는 주식을 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고 자신을 치과의사라고 소개한 한 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런식으로 말하면 저는 이빨 청소 하는 사람입니다. 재밌게 받아쳐주신 덕분에 사람들도 웃었고 분위기도 살릴 수 있었다. 나도 겉으로는 웃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던거 같다. 왜인지 내가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아직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일까, 돈 잘 벌것이라는 반응과 달리 별볼일 없는 통장잔고 때문이었을까, 혹은 펀드매니저가 이런 것도 모르냐고 창피를 당할까봐 두려워서였을까. 펀드매니저라고 떳떳하게 말하는게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MBC 나는 가수다, 이렇게 떳떳하게 자기 직업을 말하는 건 멋진 일인거 같다.)


요즘은 유튜브 주식 방송이 참 많은거 같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산업과 기업을 분석하고 틈틈이 공부해서 영상을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분석내용 수준이 높은 경우도 많았다.


나는 이 일을 직업으로 하는데 어쩌나 싶었으나 스스로 위안으로 삼은 것은 나는 아직 어리고 연차도 많이 쌓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무엇이든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니까 말이다.


내 이름으로 된 상품이 생겼고 성과를 내야하는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고 그런 내 모습을 알아차리셨는지 대표님은 변호사 얘기를 들려주셨다. 참고로 대표님은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하셔서인지 법조계 얘기를 종종 하셨다.


1년차 변호사도 변호사는 변호사다. 사람들은 그 변호사가 1년차이니까 별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라는 등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를 변호사로서 생각하고 대하고 반응할 것이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갓 경찰이 된 신입 경찰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난생 처음 순찰을 나갔다. 하필 그날 눈 앞에서 시민이 도움을 청한다. 신입이니까, 난생 처음이니까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1일차 경찰도 경찰이다.


잘하지 못하면 어쩌죠? 괜찮다고, 못해도 상관없다고 라는 말을 기대한건 아니였지만 나는 어린 질문을 해버렸다.


잘 못하면 업을 떠나야지. 


대표님은 명쾌한 답을 주셨다. 이는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한두번은 용서가 될지 몰라도 자의든 타의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하셨다. 본인이 아무리 업을 계속 하고 싶다해도 말이다. 그래서 업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다. 설사 업을 떠나게 되더라도 아쉬움이 없기 위해서 말이다.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겠다고 다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잘 할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얼마나 배부른 고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상품이 오픈될 때만 해도 설마 내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이 있을까 생각했으나 진짜 가입하는 고객이 생겨났다. 주식관련 앱에도 상품이 올라가게 되었다. 앱에는 내 사진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사진이 마음에 안든다.


눈 앞에 도둑이 나타났다. 나는 경찰이다. 불안하다 등등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단 도둑부터 잡아야 할것 아닌가.


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생겼다. 나는 펀드매니저이다. 일단 수익률부터 올려야겠다.


엄마, 나 사진 다시 찍을까...?

작가의 이전글 직업을 지켜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