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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Jan 13. 2020

직업을 지켜라

1-1. 매일 소설쓰는 사람들, 펀드매니저

대표님은 나무의 기운이 강하시네요.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기자님이 사무실에 놀러오셨다. 성기자님은 내가 20대 중반 때 처음 만나게 된 분인데 꽤나 유명하신 분이다.(굉장한 미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자님은 우리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고는 갑자기 사주팔자를 봐주겠다고 하셨다. 요즘은 핸드폰 앱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어느정도 사주풀이는 다 된다고 하셨다. 초면에 갑자기 사주풀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회사 사람들 모두 눈이 초롱초롱해졌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나무의 기운이 강하다고 하셨고, 나와 다른 직원들은 불의 기운이, 최대리님은 물의 기운이 강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회사 사람들 간의 궁합은 나름 좋은 궁합이라고 하셨다. 불이 두명이나 있고 나무와 만나서 나무가 좋은 감이 되어 불이 활활 타오를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님 표정은 좋았던거 같다.


최대리님은 물 속에 금이 있는, 물에 잠긴 도끼의 형상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무가 자라도록 물을 주면서도 언제든지 베어버리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무를 베면 다시 감이 되어 불이 활활 타오를 것이니 크게보면 좋은 것이라고 하셨다. 대표님은 도끼에 베이고 감이 되는데 정말 좋은 거냐고 묻고 싶은 표정이셨던거 같다.



이후 대표님은 종종 다른 회사 사람들 사주를 봐주셨다. 기자님이 쓰셨던 그 앱을 참고하셨는데, 왜 상대방이 잠시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웠을 때만 그 앱을 키시는지 묻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밥을 얻어 먹어도 되는거냐고도 묻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주를 보기 위해 복비를 주고 전문가에게 풀이를 맡겼다. 그런데 요즘에는 굳이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앱으로 쉽게 사주를 볼 수 있게 된거 같다. 기술의 발전이 정보공유를 쉽게 만들었고 그 정보를 팔아서 돈을 벌던 사람들의 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 월스트리트 펀드매니저들과 원숭이의 수익률 대결은 꽤나 유명한 얘기같다. 원숭이가 무작위로 고른 종목들 수익률이 더 높았다는 얘기 말이다. 그나마 원숭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요즘에는 기계가 펀드매니저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말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이런 애들이랑 싸우라니, 무섭기만 하다.)


문과라서 죄송하지만 나도 주워들은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얘기는 이렇다. 로보, 알고리즘, AI 등 다양한 말이 있지만 그 근원은 통계와 회귀분석이다. 어떠한 사회 현상이라는 결과가 어떠한 원인에 기인했는지 파악하고, 그 원인이 되는 사건을 기반으로 미래 결과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는 원인은 정말 다양하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 환율 또는 유가가 올랐다든지 떨어졌다든지 등등 말이다. 수많은 데이터들을 모아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면 이 기업은 주가가 오른다는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면 알고리즘이 만들어진다.


수많은 알고리즘이 만들어지면 원인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컴퓨터가 알아서 주식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그리고 AI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기존에 정해둔 원인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스스로 원인과 결과를 계속해서 분석하고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딥러닝까지 가능해진다.


알아서 배우고, 알아서 매매해서, 알아서 수익을 낸다니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와는 먼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대표님 친구분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대표님을 소개시켜주셨고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업을 하고 계신 입장에서 보면 로보어드바이저 만으로는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고 하셨다. 주식시장이 좋을 때야 로보어드바이저의 실적예측도 비교적 예상했던대로 흘러가고 기존에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이 나름 잘 먹힌다고 하셨다. 반면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예측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하이브리드 로보어드바이저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종 신호나 기업리스트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최종 판단은 펀드매니저가 하는 식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대표님은 사주팔자를 볼 때 단순히 앱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앱에 나오는 정보들은 조언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대표님은 앱을 참고하여, 상대방이 살아왔던 길, 상대방의 평소 행동방식, 성격 등을 종합 고려해서 사주풀이를 하셨다. 그래서 앱에서 나오는 결과가 같아도 대표님의 사주풀이는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 대표님은 우리도 하이브리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하셨고 전략이름을 짓기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반인반수, 반인반봇, 이것은 사람인가 로봇인가 등등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나는 사람과 로보가 협업한다는 의미의 콜라보와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우리회사 색깔을 고려해서 '콜라보밸류'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모두가 좋다고 했고 대표님은 나를 보며 이름을 네가 지었으니 자문역 이름은 너로 넣겠다고 하셨다.


대표님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제 너는 충분하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럼 저는 사람역할을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로보역할을 하면 되는 건가요 농담을 던지려 했으나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기에,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내 이름으로 된 상품이 오픈되었다.


엄마, 로보랑 친하게 지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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