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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Jan 22. 2020

주가가 아닌 가치만으로 판단한다

2-1. 소설의 주인공을 찾아서, 주식발굴

나는 오타쿠 입니다.


이 말을 당당하게 말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나이 들어서 애니메이션 본다고 하면 뭔가 한심해 보일까봐 어디 가서 얘기도 못했던거 같다. 그런데 대표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셔서 신작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할 수 있었다. 세계관, 미래관, 주인공의 철학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토론했다. 역시 공부는 같이해야 재밌는 거 같다.


덕밍아웃 이라는 말도 있던데 이제 애니메이션 많이 본다고 욕하는 사람은 딱히 없는 거 같다. 애니메이션의 성지 일본에서는 20년 불황 동안 유일하게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오타쿠 산업이었다. 오타쿠들도 긍지를 갖을만 하다.


내가 일본주식형 상품에 처음 추천한 기업도 바로 반다이남코홀딩스라는 기업이었다. 원피스, 드래곤볼, 건담에 투자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혼자산다 심형탁, 잘생긴 사람이 덕밍아웃 해줘서 고맙다.)


대표님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산업 중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굉장히 좋게 보셨다고 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산업이 과거 가족의 역할까지도 대신해주는 상황이라고 말이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산업으로 그 가치를 아직 숫자화 하기도 힘든 거 같다.


그런데 대표님이 처음 제이와이피에 투자하셨을 때 PBR이 3배 였다고 한다.


주식을 책으로 배우던 시절 나는 저평가 라는 말이 단순히 주가가 낮은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가치투자자 라면 남들은 관심이 하나도 없는 기업을 사서 10년 기다리고 수익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회사를 청산할 때 주주가 받을 수 있는 가치인 청산가치를 뜻하기도 한다. 반면 PER은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이익 대비 주가를 의미한다. PBR 또는 PER이 낮다는 것은 보유하고 있는 것 보다 주가가 싸다 또는 돈을 버는 것 보다 주가가 싸다 라고 풀이된다. 좋은걸 싸게 산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나는 낮은 PER과 낮은 PBR 주식이 무작정 좋은 건줄 알았다. PBR 1배 이하인 기업들에 관심을 갖곤 했다. 조선업, 건설업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기업들을 추천하면 항상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올드하냐고 한 소리 듣기 십상이었다.


대표님은 주가가 아닌 가치만으로 판단한다고 하셨다. 이 말은 주가가 떨어져도 가치가 있다면 안 팔 수 있다는 말임과 동시에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더라도 더 큰 가치가 있다면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평생 투자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한다는 측면에서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안 팔 수 있다는 점은 바로 납득이 되었다. 그러나 주가가 올랐는데도 살 수 있다는 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싼게 좋은 거고 비싼건 안 좋은 거라는 고정 관념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줄 것이라고 판단 된다면 단순히 주가가 비싸다고 못 살건 아니라고 하셨다. 싸다는 것이 단순히 가격, 주가 만으로 판단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산업마다 기준이 되는 PER PBR이 다르다. 절대적으로 비싸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가격비교가 보다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공장이나 건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시설투자가 불필요하다. PBR이 제조업 대비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돈을 못버는 경우가 많다. PER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제이와이피는 PBR 6배까지 주가가 올랐다. 두배 이상 주가가 오른 것이다. 비싸다고 생각했던게 더 비싸졌고 과거 비싸다고 생각했던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졌다.


단순히 싸다고 사면 안 되는 거구나 깨닫게 되었지만 그래도 싼 주식에 대한 애착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요즘도 PBR 0.5 이런 기업들을 보면 괜히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중에 듣게 된 얘기인데 어려서부터 풍족하게 산 사람들은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한다. 가격이 비싼 것들도 항상 선택지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 가격요소 보다도 진짜 좋은 것을 선택하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반면 어려서부터 비싼건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던 사람들은 선택의 폭이 좁고 시야도 좁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어쩌면 부자로 태어난 사람이 주식도 더 잘 할 수 있는 건싶어지면서 괜히 우울해졌다. 언제까지고 좁은 선택지에 머무리지 않기 위해서 고정관념을 깨야 겠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표님이 물티슈를 차에 가득 싣고 오셨다. 다섯 박스는 되어 보였다. 이게 뭐냐는 물음에 1+1의 함정에 빠지셨다고 했다.


싼게 싼 것이 아니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하나 더 생기는 기쁨에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회사에는 쓰지도 않는 물티슈가 가득하다. 쌓여있는 물티슈를 보다보니 대표님은 내 연봉도 싸서 좋다고 하셨던거 같은데, 애써 기억을 꺼내려 하지는 않았다.


엄마, 나도 집에서는 비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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