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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Feb 16. 2020

성적표 이리 내

2-1. 소설의 주인공을 찾아서, 주식발굴

실적시즌이라서 바쁘네.


어느날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대학시절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를 만났다. 술도 나름 자주 먹고 자주 붙어다녔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보니 연락이 끊겼었다.


친구는 멋진 수트를 쫙 빼입고 있었다. 친구는 대형증권사에 다닌다고 했다. 명함을 주고 받고 회사로 복귀한 이후 술 한잔 하자고 연락을 했다. 친구는 실적시즌이라서 바쁘다는 답변만 남겼다. 내 복장이 너무 추리해서 그런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나에게 대표님은 원래 실적시즌에는 바쁜게 정상이라고 하셨다.




(문제적 남자에 나온 박지선씨의 성적표, 나는 학생 때로 돌아간다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할거 같지는 않다.)


실적시즌이란 기업들이 그동안의 실적을 발표하고 시장에서 채점을 받는 시기를 말한다. 기업이 얼마나 돈을 벌었고 얼마를 비용으로 써서 얼마의 이익이 남았다는 것을 발표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분기별로 발표하기 때문에 1년에 4번 실적시즌이 도래한다.


실적시즌이 정말 바쁜 이유 중에 하나는 실적을 예측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실적이 잘 나왔다는 개념은 없다. 상대적으로 잘 나오고 못 나오고가 있는 것인데, 경쟁사 대비 실적, 전년 대비 실적도 중요하다. 그런데 어닝서프라이즈, 어닝쇼크 등의 표현이 붙는 경우는 대개 예상 대비 실적에 대한 얘기다.


증권사 보고서들을 보면 종종 분기실적이나 연간실적들을 예측해 놓는다. 이러한 예측들이 모여 컨센서스라는 것을 형성한다. 그래서 컨센 대비 몇 프로 성장해서 어닝서프라이즈가 나왔다 등의 얘기가 나오게 된다.


물론 펀드매니저들도 자기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실적을 예측하곤 한다. 컨센서스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니까 말이다.


대표님은 비교적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스타일로 보였다. 단기적인 실적이야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고, 계획보다 비용을 많이 썼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때문에 남들은 실적시즌에 매일 야근하면서 실적을 예측하고 실적발표일 매매도 많이 하는 반면 우리 회사는 평온했다. 물론 실적시즌이 아니여도 매일 밤 늦게 까지 공부하던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던 어느날 TJ미디어 실적을 예측해오라고 하셨다. 우리가 노래방에 가면 자주 마주하게 되는 그 TJ미디어 말이다.


실적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실적예측 안해도 되는거 아니였냐고 물었다.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의 첫 실적예측이 시작되었다.



우선 매출이다. 기업이 총 얼마 벌었냐의 문제인데 간단하게 보면 가격(P) 곱하기 수량(Q)이다. 다만 어떤 물건을 파느냐 어떤 서비스를 파느냐에 따라 가격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그래서 주로 쪼개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TJ미디어의 경우 상품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래방에 들어가는 반주기, 음원, 앰프 등 상품별로 판매되어 온 개수를 정리하고 이번 분기 어느정도 팔렸을까 예측해서 상품가격을 곱하고 쭉 더하면 예상 매출이 나온다. 얼마나 잘 팔렸나 등은 뉴스기사를 보기도 하고 기업탐방을 다니면서 분위기를 본다.


당시 TJ미디어는 신제품 출시가 지연되고 있었고 매출성장을 견인하던 코인노래방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매출성장이 멈췄다고 봐야 했으므로 좋지 않은 실적이 예상되었다.


다음은 영업이익이다. 매출에서 비용을 빼면 된다. 물건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 상품을 사오는데 들어간 비용 등이 우선 들어간다. 여기에 사람을 많이 뽑았으면 인건비가 더 많이 들어서 이익은 줄었을 것이고, 광고를 많이 했으면 판매관리비가 증가해서 이익이 줄었을 것이고 말이다.


TJ미디어의 경우 특별히 광고를 하지도 인력구성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었다. 매출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나면 영업이익은 크게 변동이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자비용, 세금 등을 빼면 당기순이익이 나오는데 큰 이슈가 없는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을 예측하면 기업실적의 좋고 나쁨을 어느정도 잡을 수 있다.


당시 TJ미디어는 해외사업에서 비용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은 뽑았는데 매출이 늘지 않으니 영업이익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번 분기 실적 안 좋은데요? 실적예측을 마치고 대표님께 종목편출 의견을 냈다.


응 그러니까 투자하는거야. 대표님은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투자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적예측 열심히 해서 실적이 좋지 않을 기업은 편출하고 실적이 좋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으나, 이게 아는 것에 투자한다는 맥락인건가 생각하고 넘어갔다.


주가도 안 보고, 실적도 안 본다. 가치투자에서 가치란 좀 더 고차원적 인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성적표도 안 보시는 거냐고 차마 묻지는 못했다.


엄마, 내 통장잔고는 예측이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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