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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Apr 11. 2021

코로나와 한강

1-2. 나의 일 나의 마음, 흔한 펀드매니저의 신세한탄

작년 봄날, 코스피가 1500선까지 떨어지면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인가 우려를 낳던 그 시절 나는 한강에 있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니 주변 친구들 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너 괜찮아?"


이런 우려 섞인 말들이었다.


"응, 나 한강이야."


라고 답장을 보내면, 어김없이 전화가 오곤 했다. 다시 기회는 있을 거라고. 정신 차리라고.


물론 한강 간다는 표현이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정말 정신줄을 놓을 것만 같았지만, 나는 진짜 말 그대로 한강에 갔을 뿐이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바람 쐬러 한강에 가는 거였고, 어차피 이렇게 된거 라면만 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어보자는 마음으로 한강가서 라면 먹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대표님과 함께 말이다.


(나는 라면만 먹어도 되는데, 치킨까지 먹자고 한건 대표님이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남의 나라 얘기였고, 나한테까지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매일 한강가서 라면먹고 오기를 1주일 정도 반복했을때, 대표님이 입을 여셨다.


"자, 포트폴리오를 만져볼까."


그리고 사무실로 복귀해서 포트폴리오를 마구마구 갈아엎으셨다. 신규 종목이 계속해서 편입되었다.


'그 시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기업을 산다.'


이런 펀드매니저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에는 변함이 없었고, 코로나에도 끄떡 없거나 오히려 더 좋아질 것으로 판단되는 게임, 환율 수혜, 가전제품 분야에 주로 투자하게 되었다.


대표님이 평소에 주식을 사고 팔고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증권사 상품팀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매매가 많아졌냐고 말이다.


"멘붕일때, 그냥 계속 멘붕이냐. 아니면 그냥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느냐. 그게 프로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이런 식으로 대답하셨던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멋있게 말씀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3월 결산을 하다가 다시 보니 우리 회사의 증권사 상품은 지난 1년간 엄청난 수익률을 달성했다. 코스피가 많이 오른 부분도 있지만 분명히 엄청난 성적이었다. 어딜 가든 최고로 높은 수익률 이었다.


그럼 내가 얻은 것은...?


굳이 따지자면 별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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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빚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몇억을 벌었느니 하던데, 나와는 다른 세상 얘기다.


나는 이게 직업 이다보니 주식을 직접 살수 없다든지, 대표님이 대출 받는건 절대로 용납을 안하신다든지, 같은 변명은 굳이 안하는게 맞는거 같다.


그럼에도 코로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줬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거 같다.


일단 회사가 없어지지 않았다.(솔직히 회사도 조금 상황이 좋아졌고 연봉도 올려주셨다. 다만, 내 이마가 넓어진건 결혼 전까지는 비밀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내가 시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책에서만 보던 리먼사태나 IMF 같은 상황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직 이 일을 하고 있고, 계속 이 일을 해도 된다고 시장이 허락해준 느낌이다.


물론 지난 1년간 폭락장과 폭등장을 경험했다고 갑자기 투자철학이 적립되었다든지, 이렇게만 주식하면 대박이네 라든지, 이렇게 하면 돈 벌수 있겠다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대표님이 돈 벌 생각을 버리라고 했던게 스쳐지나 간다.)


버티는 자가 살아남고, 살아남는게 이기는 거라는 멋진 표현도 아닌거 같다.


'그냥 자기 할 일을 한다.'라는게 어떤건지 옆에서 직접 느끼며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정도가 딱 적당한 거 같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게임도 공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주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대표님한테 갖고 갔다가 혼나고, 그러다가 주식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무래도 이게 내 할 일 인가보다.



엄마, 해외 여행은 언제 갈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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