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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May 30. 2021

중간 없다

1-2. 나의 일 나의 마음, 흔한 펀드매니저의 신세한탄

방송에 나갔다 오세요.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롭게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날, 대표님이 다가오시더니 방송에 나가라고 하셨다.


방송 주제는 안 정해졌지만 인플레이션이나 원자재 등 시장상황 관련 얘기가 될거 같다고 하셨다.



요즘들어 K자형 양극화 얘기가 계속 들려온다.


부익부 빈익빈 얘기로 주로 꺼내는 용어 같긴 한데, 일단 나는 부자와 가난은 그대로인데 중간만 사라지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K자에는 다섯 꼭지가 있는데 왼쪽 직선 상에 위, 아래, 중간에 점을 찍을 수 있고, 위와 아래는 그대로 있는데 중간에 있는 점이 위나 아래로 움직이게 되는, 그런 형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중간에 직선들이 교차하는 점이 위로 가느냐 아래로 가느냐 정도 랄까.


중간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인플레이션이니, 원자재니 요즘 증시 상황 관련 코멘트를 해야 했는데, 나는 여전히 중간을 얘기하고 싶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올건지, 안 올건지 나도 잘 모르겠고,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래도 요청이 온건데, 뭐라도 전문가 답게 얘기는 해야하는 법. 판사가 얘가 범인인지 쟤가 범인인지 잘 모르겠으니 그냥 중간으로 하자고 할수는 없는거 아닌가.


어찌저찌 뭐라도 얘기는 해야할텐데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내게 대표님이 회의나 하자고 하시면서 인플레 관련 얘기를 꺼내셨다.


괜한 짐을 안겨줘서 미안했는지 대표님이 그래도 어디 나가서 말 할수 있는 얘기를 들려주셨다.(실은 방송에서는 대표님한테 요청한거지만, 대표님은 어디 나가서 얘기하는걸 안 좋아하셔서 나한테 넘기신건 비밀이다.)



(분명히 영구가 있는데, 영구가 없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다. 그리고 풍부한 유동성에 따라 자산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도 확대되고 있는 상황같다. 원자재도 파생상품 등으로 투자대상이 되면서 자산가격 상승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제품 단에서의 가격이 오르고 그래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형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하고 있다.


백신이 보급되고, 각종 지표들이 경기가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미국에서의 경기과열 및 금리인상 발언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는 하다.


반면 반대파 입장에서는 작년도 코로나로 인한 하락 폭이 컸던 만큼 YoY, 전년대비를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기저효과가 너무 크다는 입장을 보이는거 같다. 미국 소매판매가 예상치를 밑도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도 일부 완화된 부분도 있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하는 상황, 주의할 점은 시장은 예민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제반사항을 알고 있어도 막상 전년대비 몇 퍼센트 이런게, 막상 수치로 발표 되고 나면, 생각보다 영향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더더욱 시장 상황을 주의깊게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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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나가서 이런 느낌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나의 의견은, 잘 모르겠으니 그때 그때 잘 대처하자 정도로 요약된다.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하는 그런 어중간한 입장이랄까. 끝내 중간을 얘기하고 오려고 한 것이다.


다행이라고 할지, 정작 방송에서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얘기했다. 증권가 매도 보고서 관련 얘기를 하고 오긴 했는데, 이것도 말은 어쩌구 저쩌구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니 그때 그때 잘 대처하자 라는 식으로 대답하고 왔다.


그리고 나름 말은 끊기지 않고 했고, 미리 준비한 대본에 충실하게 진행했다. 너무 대본에 충실해서인지, 대본만 읽으며 불안한 시선처리를 보였고, 대표님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진 말이다.(가족들은 대학생이 난생 처음 발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놀렸지만, 내 멘탈은 괜찮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말을 흐리게 되는 버릇이 생긴거 같다. 하루 하루 매 시간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확신을 갖고 대담하게 말하고 다니는건 참 어려운 일인거 같다.


앞으로 새로운 이슈나 새로운 주제가 등장한다 해도, 명확한 방향성이나 확신에 찬 의견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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