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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May 16. 2021

열심히 일하면 안된다

1-2. 나의 일 나의 마음, 흔한 펀드매니저의 신세한탄

회사가 여의도로 이사왔다.


원래 대표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에서 공부나 하려고 하셨단다. 그래서 회사 위치도 판교.


그런데 증권사 상품이 라인업 되기 시작하면서, 미팅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판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여의도나 판교나 비용이 들어가는건 매한가지가 되었다. 여의도는 원래 비싼 동네였는데 그동안 가격이 유지된 반면 판교는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급 오르게 되었단다.


회사가 여의도로 이사오면서 어디 미팅 나가기는 참 좋아졌다. 그리고 회사가 여의도에 있다고 하면 다들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판교에 있다고 하면 꼭 왜 판교냐고 되물었는데 이제는 그런게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강서쪽에 살다보니, 판교는 1시간 넘게 지옥철을 타야했던 반면, 여의도는 30분만 지옥철을 타면 되는 어마무시한 장점이 생겨버렸다.


(게다가 나는 이제 환승도 안해도 된다, 대표님 사랑합니다. 하상욱님 못친소 잘 봤습니다.)



내가 왔다 여의도! 라고 외치며 이사를 완료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여의도는 확실히 판교랑 분위기가 뭔가 달랐다.


판교는 청바지에 씽씽카 타고 다녔는데 여의도는 정장에 구두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판교 사람들은 뭔가 활기차고 텐션도 높아 보였다.(IT업종이 잘 되고 급여도 오르다 보니 분위기가 좋긴 했나보다.)


반면 여의도 사람들은 뭔가 지쳐있어 보였다.


(주말에도 여의도에는 새똥과 담배꽁초가 널려있다. 다들 열심히 산다.)


대표님이 여의도 증권사에 다니시기도 전 얘기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여의도에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밤에는 모두 들떠있고 성과급 파티가 한창이었다고. 성과급이 연봉보다 높았었던 그런 시절이었다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IMF 이전 얘기 였던거 같다.(그렇게 많은 성과급을 받았으니 그 돈으로 뭘 했냐고 가끔씩 물어보면, 아무도 저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만큼 받을줄 알았지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 돈이면 당시 여의도에 아파트를 사고도 남았다는 말도 함께.)


요즘은 저 정도로 성과급을 많이 받는 시대는 아닌거 같다. 그나마 코로나 이후 증권사 사람들은 좀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던거 같지만 말이다.(IT사람들은 정말 나와는 먼 얘기여서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왜 옛날에는 성과급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가 있는걸까? 기본 연봉이 오르면서 성과급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이게 된걸까 아니면 성과급을 주고 싶어도 성과급을 줄 돈이 없는 걸까.


그리고 성과급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진짜 궁금한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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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표님 과거 동료 운용역 분과 성과와 관련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랬다.


열심히 일하면 안된다.


네가 아무리 근면성실 한다고 해서 저임금 국가 사람들 열 명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대표님 친구분이 질문을 던지셨고, 나는 어버버 했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잠도 안자고 일해도 저임금 국가에 비해서는 높은 시급을 받을 것이고 사람 수로 밀고 나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열심히 할게 아니라 똑똑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였는데,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맞는 말인거 같다.


그리고 이게 직장인으로서 일하는 태도에도 적용되지만 사실은 기업을 바라볼 때에도 적용된다고 하셨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샌드위치에 끼어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기술력으로는 부족하고 가격은 저임금 국가보다 비싼 애매한 위치란 얘기 말이다. 임금은 한 번 오르면 다시 내리기는 여러 사회적 장치 때문에 제한적이다. 때문에 승부를 볼 수 있는건 기술력 측면인데, 열심히, 밤을 새서가 통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얘기 같다.


역시 모든 대화 주제는 주식 얘기로 끝나는 구나 라고 생각 하려는 찰나.


세상이 변했는데 아직도 "열심히, 밤을 새서"를 강조하는 경영진이 있다면 그런 회사는 쳐다보는 것도 안 된다는 말도 같이 듣게 되었다.


오늘은 일요일. 우리 막내가 방금 출근한 모습을 보고 흐뭇해 하는 내 표정과 이미 대표님도 출근해 계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나도 똑똑하게 일해서, 성과급 받고싶다.


엄마, 나도 성과급 받아서 집 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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