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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Jan 01. 2020

저는 뭘하면 될까요

1-1. 매일 소설쓰는 사람들, 펀드매니저

자유가 너무 크면 불안도 커진다.


회사는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퇴근시간도 자유로워서 11시 정도에 퇴근하는 일도 많았다. 밤 11시 말이다.


출근은 했다. 내 자리도 있다. 컴퓨터도 나름 성능이 좋다. 그런데 나는 뭘해야 하는걸까.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와서 할일을 준다면 좋겠지만 아무도 내가 뭘 해야할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은 알아서 찾아서 해야한다. 대표님께 여쭤보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신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만한 것이 팀에서의 역할이다.


경험상 펀드운용이 팀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었다. 대표님이 증권사에서 운용을 하시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팀 내 역할을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로 나누어 설명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명확하게 직무나 책임을 따지는 역할 구분이 아니라 나는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 한번 쯤 고려해볼만 하다고 하셨다.


1. 더하기(+)역할


의사결정권자나 팀장의 뷰를 정리하고 기업을 발굴한다. 기업탐방, 전화를 하고 발굴한 기업의 실적정리나 보고서 등을 작성한다. 팀장의 생각과 판단에 살을 붙이고 펀드를 만들어가는 역할이다. 주로 팀장과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이 역할을 하게 되는데 팀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과장님은 대표님 지인 회사의 운용역이다. 그는 시키지 않은 업무도 미리 처리해놓는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인물이다. 이미 처리했습니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도 하고싶지만,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다.


2. 빼기(-)역할


펀드 내의 기존 종목을 빼고 새로운 종목을 꽂아놓는 사람이다. 펀드 안에는 돈이 무한하지가 않다. 더 좋은 투자 아이디어나 기업이 나오면 기존 종목 중에 어떤 기업은 편출 되거나 포트폴리오 비중이 조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특히 포트폴리오 내 종목들에 우선순위를 메기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내 마음 속의 꼴찌가 있어야 적시적인 종목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팀장과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이 주로 이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회사 운용역 박과장님은 얼굴에 자신감이라고 써있는 사람이다. 가끔 대화를 지켜보다 보면 지금 싸우고 있는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건 아닌데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도 하고싶지만, 감히 대표님 종목에 딴지를 걸수는 없다.


3. 나누기(÷)역할


팀내에서 발굴한 기업들을 적절히 분배해서 여러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20개의 투자가능 기업이 있으면 10개씩 나눠서 2개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품기획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좋은 기업을 많이 발굴하면 전략별로 나누어 좋은 상품을 여러개 만들 수 있다. 한 전략에 너무 몰입하는 경우보다는 다른 전략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이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회사 운용역 김대리님을 보면 통통 튀는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한다. 요즘에는 말이죠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도 하고싶지만, 회사에서 내가 가장 올드하다.


4. 곱하기(×)역할


아예 새로운 영역을 만드는 사람이다. 기존 전략과 투자철학이 응용되어 새로운 판을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국내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던 전략을 해외 주식시장에 대입해서 해외주식형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 역할은 대단해 보인다. 판을 새로 짠다니 말이다. 이 역할은 천재가 하는 역할인거 같다.


우리 회사의 그 천재는 안경을 꼈고 굉장히 날씬하며 약간 일본 만화에 나오는 전교 1등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고 우리 회사의 일본주식형 상품 일등공신이다. 대화를 한번만 나눠보면 아 이 사람 천재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저는 잘 모르는데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도 하고싶지만, 천재로 살면 어떤 기분일지가 더 궁금하다.



정리를 하다보니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더 헷갈린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이전에 어떤 역할이든 일단 해야 할거 같다. 회사가 언제까지고 기다려주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여러가지 역할 중 나는 어떤 역할을 맡게될까.


엄마, 나 뭐라도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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