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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우 Jan 02. 2020

돈을 벌어

1-1. 매일 소설쓰는 사람들, 펀드매니저

어느날 대표님이 이모티콘을 선물해주셨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이다, 자본주의는 곰도 낳는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는 화려하게 주식을 고르고, 그 주식은 쭉쭉 올라서 고객들 계좌는 두둑해지고, 대표님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고생많았다고 말씀해주시고, 나를 위해 준비된 케이크가 나오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이런 그림을 절대로 꿈꾸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회사에 돈을 벌어온 첫 경험은 보험금이었다.


기업탐방을 마치고 대표님과 차를 타고 복귀하던 길, 뒤에서 쿵 소리가 나면서 내 몸은 앞으로 쏠리게 되었다. 택시가 뒤에서 받은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목을 붙잡고, 허리를 구부리며 차 밖으로 나왔다. 일단 어디가 아픈지 모르니 다 아픈거 같이 말이다. 대표님은 그런 나를 보고 어디 다쳤냐고 물으셨고, 나는 원래 이렇게 하는거라고 대답했다.


택시기사님도 당황하셨는지 죄송하다고 말하며 합의금 얘기를 꺼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다행히 다들 다친데는 없는거 같습니다. 대표님은 허허 웃으며 산골 도사님으로 빙의되셨고, 괜찮고만 하시며 다시 차에 타시려고 했다.


아니 대표님, 우리가 그 중요하지 않은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나는 보험사를 불러야한다고 얘기를 꺼냈다. 이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던 나는 당장은 몸이 괜찮아도 혹시 모르는 것이라서 병원도 가야하고, 보험사에서 합의금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통사고 당사자들끼리 말하는 것보다 보험사를 부르는 것이 가장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표님은 정말 주식 외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다. 설마 보험사가 합의금을 지불한다는 사실도 모르실까 의심도 들었으나 묻지 않았다.


결국 보험사를 불렀고, 무난히 일을 처리하고 병원에 다녀왔다. 다음날 역시나 보험사에서 합의전화가 왔고 거기서 제시한대로 합의했다. 예전에는 좀 더 받았던거 같은데, 뭔가 보험사와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대표님한테 보이기는 뭐했다. 괜히 돈타령 하면 두세시간 정도 혼날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최초로 회사에 돈을 벌어온 직원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다들 공부만 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나도 더하기(+)역할을 하게되었다. 뭐든간에 통장에 돈이 들어오긴 했다.



제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그걸로 돈을 벌면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인거 같다. 돈을 못벌면 좋아서 시작했던 일도 힘들고 재미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단 먹고는 살아야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펀드매니저가 돈을 버는 방식은 명확하다. 펀드운용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수수료체계는 주로 성과수수료와 기본수수료로 나뉜다. 성과수수료란 고객계좌 잔고가 늘어난 만큼 일정부분을 수수료로 수취하는 것이다. 즉 번 만큼 받겠다는 것이다. 반면, 기본수수료는 성과에 상관없이 연간 일정 수수료를 수취한다. 성과수수료와 기본수수료를 혼합한 수수료체계도 있다.


우리 회사는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를 기본적으로 지향한다. 오래 기다려야 성과가 난다는 기본 철학 때문인지 우리는 성과수수료를 잘 받지 않았다. 주식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데 올 한해 많이 올랐다고 수수료를 많이 받아버리면 다음에 떨어졌을 때 무슨 낯으로 고객을 보느냐는 대표님의 기본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결국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수익률을 계속내야 하고, 고객 돈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돈은 벌게 된다고 하셨다.


고객이 부자가 되고, 회사도 부자가 되고, 나도 부자가 된다. 말은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우리회사에는 영업인력도 없다. 우리의 일상은 공부하고 기업탐방 다니고, 주식관련 얘기를 하고, 그것이 전부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어디 회장님을 만나서 돈을 맡기시라고 접대를 한다든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돈 벌 수 있는 건가요?


라는 질문에 대표님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며 공부나 하러 가자고 하셨다. 그럼 저 이모티콘은 왜 보내셨지 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카카오 기업탐방을 잡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엄마, 나 돈 벌수는 있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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