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가치

노력하는 자

by 멍구



누구나 당연히 알던 상식들이 있다. 하지만 왜 저것이 상식일까?라는 의문을 이야기해본 적 있는가?라고 당연한 듯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상식은 기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일까? 그런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또 다수가 정하여서 다수의 말에 따라서 정해진 것일까? 그러면 소수의 의견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의문의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불합리가 보일 때가 있다. 그렇게 보일 때면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한번 더 던진다. 그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원인을 알고 탐구해보고 싶은 것이 크기 때문이다. 탐구욕을 불태워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이것이 시작이 아닐까?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중에 하나가 아닐까?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방향이 맞지 않아 쓸데없는 것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운이 좋아 당연한 듯 문제를 쉽게 해결할 때도 있다. 분명히 후자가 더욱더 좋아 보인다. 그것이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노력에는 쓸데없는 것이 없다. 이것만큼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된다. 그래야만 노력의 가치를 진정으로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런 믿음이 없다면 사는 것이 답답하지 않을까? 아니면 초라하지 않을까? 어쩌면 결과만이 보여주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과정보다는 결과, 결과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경쟁들, 그렇게 이기는 것이 전부인 세상, 이것이 과연 아름다울까? 1등은 기억된다. 2등도 기억된다. 3등은 잊혀진다. 4등은? 5등, 6등, 7등 모든 것들이 등수로 매겨져 잊히지도 않고 그냥 모르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모르는 것이 되어버린 것들은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패배자로 남겨진다.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쓸데없이 사는 것이었을까? 결과만이 말해주는 세상을 사는 것이 다수를 위한 것일까?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소수의 의견을 존중을 해야 한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고 그렇게 자본주의와 맞물려 이상하게 돌아갔다. 다수를 가진 자들이 정답이고 다수를 가지려면 자본을 바탕으로 결과를 내면 된다. 사람 위에 자본이 있게 되어 부패의 시작을 걷는다. 아니 욕심이 욕망으로, 욕망은 부패로, 부패는 사회를 내려앉게 한다.


그래서 나는 노력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누구나 노력한다. 그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고 개인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방향이 틀렸다고 해서 노력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교육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군가가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그 사람이 노력하는 데 실수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운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누구나 노력을 한다.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많은 것을 발견해나가고 발전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이라는 직업은 정말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을 이루어 내고 각자의 노력이 헛되게 보이지 않게 하며 개인의 가치를 더욱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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